전통적 한자어와 일본식 한자어: 일본식 한자어의 의미 분화 22
한국어의 ‘고려하다(考慮―)’, ‘참작하다(參酌―)’, ‘감안하다【勘案―】’는 모두 “무엇인가를 헤아려 판단하거나 결정하다”, 또는 “어떤 판단을 내리거나 결정하는 데 여러 가지 요소들을 반영하다”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 단어들은 쓰이는 맥락과 범위, 판단의 성격은 조금씩 다르다. 또 ‘고려하다(考慮―)’와 ‘참작하다(參酌―)’는 한중일이 함께 쓰는 전통적 한자어이고, 감안하다【勘案―】라는 말은 일본식 한자어여서 중국어에서는 쓰지 않는다. 일본어에서는 세 단어가 모두 쓰이지만 한국어처럼 그 쓰임이 미묘하게 갈라지는 것 같지는 않다.
‘고려하다(考慮―)’는 중국어나 일본어에서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전통적 한자어이다. “날씨 변수를 고려하여 행사를 실내로 옮기다”, “수입을 고려해 지출 규모를 정하다”,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해 수업 내용을 조정하다”처럼 ‘판단·결정·계획을 세울 때 관련 요소를 생각에 넣어 두다’는 의미로, 일상생활 언어부터 행정·학술 분야까지 폭넓게 쓰인다. 그러나 ‘고려하다’는 어떤 요소를 ‘판단 과정에 포함하다/넣다’라는 의미일 뿐,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거나 수치를 계산해 반영한다는 뉘앙스는 약하다.
참작하다(參酌―)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정도(程度)‧길이/기간(期間)‧분량(分量)이나 양형(量刑) 등을 조절하거나 조정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말은 한자 ‘參(참여할 참, 여러 가지를 합하다) + 酌(따를 작, 헤아려 양을 조절하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전통적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단순히 포함하는 것을 넘어, ‘비교(比較)·가감(加減)·조절(調節)’이라는 뉘앙스를 갖는다. 본래 ‘참작(參酌)’은 상대방의 주량(酒量)을 헤아려 술을 알맞게 따라주는 것인데, 법률 용어로는 ‘범죄 행위에 대해 인정상 정서나 상황을 참고하여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 언어에서도 쓰지만, “정상 참작〘情狀參酌〙(-하다); 정상을 참작하다”.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없다”, “초범이고 반성의 뜻을 보인 점을 참작하여 형량을 감경했다”, “지역별 편차를 참작해 지원 기준을 마련했다.”처럼 특히 판단의 형평성·타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주 쓰인다. 여기서 ‘정상(情狀), 초범(初犯), 반성(反省)’ 등은 판단의 결과를 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참작하다(參酌―)는 ‘어떠어떠한 요인들을 고려하여 판단 값을 조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감안하다【勘案―】는 ‘勘(헤아릴/살필 감, 조사하다) + 案(안 안, 안건/기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일본식 한자어로, 중국어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주로 공식적·행정적·기술적 판단에서 쓰이며, 여러 사정·자료·수치를 면밀하게 조사(調査)·검토【檢討】한 뒤 판단에 반영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최근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공공요금 인상을 최소화했다”, “도시 구조와 교통량을 감안하여 노선을 개편했다”처럼 감안은 단순한 고려가 아니라 전문적·정책적 판단의 근거로 삼는 행위다. 이처럼 ‘감안하다【勘案―】’는 ‘정책적·분석적 판단’의 의미를 포함하는 의미로, 특히 행정·경제·정책 문서에서, 수치나 구조적 조건을 판단의 근거로 삼을 때 쓰인다.
요컨대 한국어에서 ‘고려하다’는 일반적 개념으로 쓰이고, ‘참작하다와 감안하다’는 고려하다의 구체적 하위 개념으로 구체적 실천 방식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즉 ‘고려하다(考慮―)’는 포괄적·일반적으로 ‘어떤 요소(들)를 포함하여 생각하다’의 뜻이고, ‘참작하다(參酌―)’는 사정을 비교·조정하여 판단을 조절하다(형평성·조정 중심)는 뜻으로 쓰이며, ‘감안하다【勘案―】’는 여러 가지 자료·상황을 검토하여 객관적 기준에 반영하다(분석·계산 중심)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학생들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여 장학금을 지급했다”는 단순히 사정을 생각에 넣어 판단에 반영했다는 의미(중립)지만, “학생들의 경제적 사정을 참작하여 장학금을 차등 지급했다”는 학생들의 경제적 사정을 근거로 비율·금액 등을 조정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제적 사정과 가계 소득 통계를 감안하여 장학금 기준을 정했다”는 통계 자료 등 객관적 자료를 분석하여 정책 기준을 세웠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이런 이유로 일상 대화나 신문 기사에는 ‘고려하다’가 가장 넓게 사용되지만, “피고인의 반성 정도를 참작하여…”처럼 법원이나 재판의 판결문에서는 ‘참작하다’가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에, “국제 유가 변동을 감안하여…”처럼 정책·경제 보고서에는 ‘감안하다’의 사용 빈도가 높다.
현대 한국어에서 ‘고려하다–참작하다–감안하다’는 비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실제로는 쓰이는 맥락은 물론, 판단의 깊이·정도·성격이 서로 다르다. ‘고려하다(考慮―)’는 가장 넓고 중립적인 표현에, ‘참작하다(參酌―)’는 판단 결과를 조정하는 행위에, 감안하다【勘案―】는 정책적·분석적 판단에 어울린다. 따라서 글쓰기나 번역에서 이 차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의미의 정밀도가 높아지고 문장의 의미도 더욱 분명해진다.
고려(考虑)(-하다) [고려] n. 주의해서 생각하거나 살피고 헤아리는 일.
㊥ 考虑[kǎolǜ], ㊐ 考慮(こうりょ), Ⓔ consideration
예) 고려해야 할 점. 환경을 고려하다. 고려 사항(考虑事項) 考虑事项[kăolǜ shìxiàng], ㊐ 考慮事項(こうりょじこう): 고려해야 할 일. 또는 고려해야 할 점. 중점 고려 사항 重点考虑事项。zhòngdian kǎolù shìxiàng.
고려하다(考虑+_하다)(-을)[고려‥]~고려하여/고려해 vt. 주의해서 생각하거나 살피고 헤아리다. =머리에 두다; 염두(念頭)에 두다.
㊥ 考虑[kǎolǜ], ㊐ 考慮(こうりょ)する; 頭(あたま)に置(お)く。Ⓔ consider; take into account
예) 교통 문제를 고려하다. 국내외 환경을 고려하다. 국제 관계를 고려하다. 아래 사항을 고려해 주세요. 请考虑以下事项。qĭng kăolǜ yĭxià shìxiàng. 중국 여행에서 고려해야 할 점. 환경을 고려하다.
참작하다(參酌+_하다)(-을) [‧자카‧]~참작하여/참작해 vt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알맞게 결정하다.
㊥ 参酌[cānzhuó]; 斟酌[zhēnzhuó], 参考[cānkǎo], ㊐ 参酌(さんしゃく)する; 斟酌(しんしゃく)する; 酌量(しゃくりょう)する. Ⓔ take into consideration; factor in
예) 정상 참작〘情狀參酌〙(-하다); 정상을 참작하다. 斟酌情况[zhēnzhuó qíngkuàng], ㊐ 情状酌量(じょうじょうしゃくりょう); 情状を酌量する。
감안하다【勘案+_하다】(-을) [가만‥]~가만하여/감안해서 vt. 어떠한 사정을 참고하여 생각하다. ≒고려하다(考慮―). <참> 참작하다(參酌―): 여러 사정을 참고하여 알맞게 헤아리다. 예) 정상(情狀)을 참작하다.
㊥ 鉴于[jiànyú], 考虑[kǎolǜ], 考虑到[kǎolǜdào], ㊐ 勘案(かんあん)する. Ⓔ account for; in view of
예) 고령인 점을 감안하다. =고령인 점을 고려하다. 어려운 사정을 감안하다. 소요 시간을 감안하다. 예외적 상황인 점을 감안하다. =예외적 상황인 것을 고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