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우리의 일상은 한층 더 가까워져 있었다. 그녀는 내게 더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었다. 그리고 많은 날들 동안 그녀와 함께 그녀의 집 앞을 오고 갔다. 나는 이제 그녀를 괴롭혀 왔던 과거의 상처의 깊이를 조금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가 만나온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우린 서로 많은 것을 공감했고 이해했으며, 다양한 것을 경험했고 미래를 계획했다. 단 한 가지, 나의 과거만 빼고.
어느 무더운 여름날, 우린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러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역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만한 게 없었다. 빨대로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속이 뻥 뚫리는 듯했다. 우리의 대화는 이제 과거보다는 좀 더 미래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당장은 오늘 저녁에 무얼 할지부터 조금 더 멀리 가면 여름휴가 계획도 세웠다. 그리고 더 멀리 가면, 우리의 미래도 함께 그렸다. 그러다 보니 슬슬 내 과거도 밝힐 때가 왔음을 스스로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이따금 나의 과거를 궁금해했다. 그때마다 대강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이젠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마침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와 함께 있는 가족을 보고는 내게 말했다.
"오빠는 나중에 아기 낳으면 아들이 좋아? 딸이 좋아?"
"글쎄...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래? 난 아들이 좋은 것 같은데."
"사실 여유가 되면 아들 하나, 딸 하나씩 있으면 좋지."
그렇게 문득 그녀와의 결혼 이후에 자식 계획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오빠도 나처럼 외동이잖아. 나는 어쩔 수 없었지만... 오빠는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안 해봤어?"
"그냥... 난 혼자가 좋던데..."
이번에도 얼버무리려다가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그녀에게 진지한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
"사실... 우리 집도 둘을 낳을 형편은 아니었어."
그녀는 나의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를 감지하고는 웃고 있던 미소를 거두었다. 나는 드디어 내 과거를 솔직하게 그녀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내가 서울 사람이 아니라, 천안에 시골에서 태어났다고 말했었지? 우리 부모님은 둘 다 천안 사람이라고... 엄마는 너무 어렸을 때 나를 낳았고, 시골 친할머니 집에 나를 맡겨놓고는 아빠를 따라서 서울로 올라가셨어.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나의 고백을 들어주었다.
"세 살 때까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 언젠가 부모님이 시골집에 나를 보러 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을 때 내가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 불고 했대.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는 아직 서울에서 자리를 완전히 잡지는 못했지만, 단칸방이라도 셋이서 함께 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날로 부모님은 날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셨대."
"그랬구나...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녀는 내 얘기를 듣고는 울먹울먹 했다.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었다.
"엄마는 어린 날 돌보셨고, 아빠는 밖에 나가서 막 일을 하셨어. 우리 부모님은 사실 시골에서 학교도 잘 못 다녀서 배운 기술도 없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물어볼 데도 없었지. 그렇게 근근이 생활하다가 아빠는 없는 자본에 친척들 돈까지 끌어모아서 자양강장제 사업을 하셨어. 박카스 알지? 어린 시절에 그런 것들이 가득한 박스가 있는 창고에서 놀았던 게 기억나. 아마도 중간 유통을 하면서 작은 거래처에 납품하는 일을 하신 것 같아. 그래도 초반엔 장사가 좀 잘 돼서 먹고살만했었고, 밑에 직원들도 세, 네 명 정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사무실과 나의 놀이터였던 창고 문을 닫으시더라고.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인 것 같아. 그 나이에도 우리 집이 망했다는 알 수 있었지. 1층에서 반지하방으로 이사했고, 아빠는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셔서 엄마랑 싸웠어. 집에 안 들어오는 날들이 오히려 나한텐 안심이 되는 날이었지. 하교하고 집에 돌아가면 압류 경고장과 여러 가지 청구서들이 문 앞에 놓여 있었고, 엄마는 친척들에게 울면서 전화하며 돈을 더 빌리셨어. 그러곤 일터로 나가셨지. 뒤늦게 알았지만, IMF 외환위기로 한순간에 사업이 무너지고 우리 집은 빚더미에 앉게 된 거였어."
나의 과거를 듣고 있던 그녀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오히려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본인 인생도 쉽지 않았지만, 내 인생도 불쌍해 보였던 듯싶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우리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남자가 입대 날짜가 나와서 여자친구에게 통보하는 듯한 분위기라 생각할 터였다. 더 말해도 될지 살짝 고민하다가, 이렇게 된 바에 그냥 계속 얘기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아빠랑 엄마는 은행과 친척들 빚을 갚기 위해 부단히 일하셨어. 아빠가 유일하게 배운 기술은 운전밖에 없어서 의류 공장에서 나온 옷들을 가게에 배달하는 일을 했었고, 엄마는 작은 중소기업 공장에서 생산직을 하셨어. 그래도 도저히 가계를 다시 일으킬 수는 없더라고. 난 중학교 때는 급식비가 밀리기도 했었고,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나를 장학생으로 추천해 주셔서 다행히 학자금은 안 들었지. 대학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아니라 대학을 안 가려다가 아빠가 대학은 꼭 가야 한다며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애쓰셨어. 하지만 턱없이 부족했지. 그래도 정부에서 마침 학자금 대출을 해줘서 빚을 앉고 대학 생활을 시작했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로 학자금과 생활비를 보탰지. 술집, 노래방, PC방, 교재 포장, 백화점 주차 안내, 인터넷 카페 홍보 등 다양한 일들을 했어. 우리 세 가족은 참 열심히 살았지만, 한 번의 뼈아픈 실패가 평생 우리를 괴롭혔던 거야. 그러고 나서는 대학 졸업 후에 곧바로 취업을 하게 되었고, 학자금 대출을 갚으면서 부모님 용돈도 드릴 수 있게 되었지. 개인 파산신청으로 은행 빚은 탕감되었고, 친척들 빚은 부모님이 일하신 돈을 모아서 다 갚을 수 있었어. 그래서 이제야 숨통이 조금 트이게 된 것 같아."
내 모든 얘기를 마쳤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녀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가만히 눈물만 닦아주었다. 사실 다 털어놓고 나니 후련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녀는 겨우 입을 떼며 말했다.
"오빠도 정말... 힘들었겠다..."
나의 과거를 공감해 줘서 고마웠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날들에도 나름 즐길 수 있는 것들은 즐겼고, 여러 경험들이 자산으로 남아있어서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러한 내 반응에 그녀도 함께 웃어주었다. 그러곤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참, 우리... 누가 더 흙수저인지 경쟁하는 것 같아. 오빠나 나나 참 불쌍한 인생이다. 그렇지?"
"우리보다 심한 사람들 많지 뭘... 아직 우리 부모님 젊고 건강하시고, 일도 하시니까...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해 난."
"그래... 우리 둘은 이제 어쩌지? 우리 둘이서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난 내 손을 감싸 쥔 그녀의 손을 맞잡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할 수 있어. 우리 진지하게 미래를 계획해 보자. 하지만 이건 내 마음일 뿐이고, 만약 함께 하기 힘들 것 같다면... 일단 집에 가서 고민해 보고 나한테 알려줘. 힘들다고 말해도 원망하지 않을게...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하니까..."
그녀는 다시 눈물을 그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만난 뒤 처음으로 해가 떠있는 밝은 오후에 그녀를 집에 혼자 보냈다. 나도 씁쓸하지만 후련한 마음으로 우리 가족이 사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하늘은 푸르렀고 행인들은 왁자지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