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모질이'들에게 보내는 갈채

-프레드릭 샌디스, <사랑의 그림자 (Love's shadow)

by 조용진

살면서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이 있다. 이를테면, 질투라고나 할까.

남들이 알아챌까 봐 쿨한 척, 무심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온갖 ‘척, 척, 척’은 다 해보았지만, 무심하게도 내 표정은 언제나 나를 돕지 않았다. 감추고 싶은 속내를 얼굴이 먼저 까발리곤 했다.


'네가 한번 같이 살아보시든가'

못나고, 추하기까지 한 이 감정이 속에서 꿈틀거리며 춤을 출 때면 나는 당혹스러워 몸서리를 쳤다. 특히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때—예를 들어 남편이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구는 꼴을 볼 때—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산업혁명 시절의 증기기관차처럼 질투를 넘어서, 광기에 가까운 살기를 얼굴 가득 뿜어내곤 했다.

“어머~ 저런 분이랑 사시다니, 복도 많으셔라.” 나를 제일 미치게 하는 말이다. 웃으며 “아유, 그렇게 봐주시다니,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긴 했다. 하지만, 속으론 ‘네가 한번 같이 살아보시든가. 속이 얼마나 뒤집어지는지..’ 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입꼬리를 꼭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내게는 늘 무심하던 남편이 또 교회의 누군가에게 알량한 친절이라도 베풀었나 보다. 남편은 철저히 ‘남의 편’이었다. 남의 일엔 유난히 따뜻했고, 관심도 많았다. 그에 비해, 가족과 집안일엔 놀라울 만큼 무심했다.

그가 믿는 신은 ‘사랑’이 미덕이라 했지만, 정작 그가 가진 사랑은 김집사님 , 박권사님에게 다 퍼주고, 그나마 개미 털만큼 남은 것조차 집에 오기 전, 교회 주차장 즈음에서 흘리고 온 게 분명했다.


카페에서 만난 그녀

커피 한 잔 마시러 들른 평범한 동네 카페에서, 뜻밖에 나를 닮은 ‘모지리’를 만났다.(한 가지, ‘모지리’의 바른 표기는 ‘모질이’이나 여기서는 입말이 주는 어감을 살려 ‘모지리’로 표기했다.)

품위 있게 차려입었지만,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간 듯한 여인. 대리석처럼 창백한 얼굴, 입가엔 푸른 꽃 한 송이.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슬픔, 분노, 질투...

익숙했다. 너무 익숙했다. 질투를 씹어 삼키느라 꽃을 문 그 표정, 감정에 치이면서도 끝까지 품위를 지키려 애쓰는 그 애잔함까지. 아… 그녀는, 예전의 나였다.

그제야 그림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의 그림자 – Love’s Shadow〉. 제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누가 그렸나 싶어 작가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프레드릭 샌디스(Frederick Sandys ,1829~1904). 19세기 영국 화가로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여인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데 능한 화가지만,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은 ‘틀에 박힌 여신’ 같은 미인은 아니었다. 눈과 입가에는 말로 다하지 못한 감정들이 고여 있었다. 냉소, 집착, 분노, 배신, 교만 등. 그는 여성을 그저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샌디스는 여성을 감정의 주체로, 서사의 중심으로 그려낸 화가였다.

Love's_Shadow_-_Anthony_Frederick_Augustus_Sandys.jpg 프레드릭 샌더스 , <사랑의 그림자> , 1867, 캔버스에 유채. 40.6x32.5cm , 개인소장


'남의 편'은 그걸 몰랐다.

결혼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너 아니면 안 돼. 진짜야. 나 진심이야.”하며 숨 막히게 매달리던 사람이었다. 그의 순수하고 진실된 눈동자에 현혹된 나는, ‘그렇게까지 날 원한다면… 그래, 까짓것, 봐준다’며 바보처럼 나의 소중한 네 번째 손가락을 내어주었다. 나는 평생, 그렇게 그에게 ‘귀한 사람’의 자리에서 흔한 동화의 마지막처럼 ‘Happily ever after’로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너 아니면 안 되었던’ 나의 자리는 반지를 끼고 난 후 어느샌가 ‘두 번째 줄’로 밀려났다.

“너는 부족한 게 없잖아. 그리고 넌 네가 다 알아서 잘하잖아.”

그에게 나는 일 잘하는 ‘누나 같은 아내’ 혹은 강철여인,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었나 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 모든 강한 척이 사실은 나를 지키려는 방어기제였다는 걸. 가만 생각해 보면, 남편이 눈썰미가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연기를 너무 잘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래서 사람은 재능을 잘못 쓰면 피곤해지나 보다.) 센 척은 자신 있었지만, 사실 나는 유리 멘탈의 허당이었다. 남편은 그걸 몰랐다. 그는 늘 내 껍데기만 안고 살았던 셈이다.


그녀의 입술은 마음의 단서

그림 속 여인의 이름은 배우로도 활동했던 메리 엠마 존슨, 프레드릭 샌디스의 오랜 연인이었다. 그녀는 샌디스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사랑의 얼굴이 되었지만, 정작 ‘공식적인 아내’가 되진 못했다. 화가는 캔버스 안에서는 슬픔과 갈망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그러나 현실의 사랑 앞에서는 꽤나 복잡한 사람이었다. 연인으로서 다정했고 열정적이었지만, 그 열정은 꼭 한 사람만을 향하지 않았다. 메리는 평생 그의 사랑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이 다른 여인에게 기웃거리는 걸 알면서도, 못 본 척, 안 들은 척, 때로는 기도까지 하며 견뎌냈다. 그녀는 왜 연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까? 사랑이 깊어서였을까?

푸른 제비꽃이 그녀의 입술에 물려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꽃말로는 ‘사랑’과 ‘헌신’을 뜻한다고 한다. 그녀는 분명 사랑과 헌신을 물고 있지만, 그 입술의 긴장감은 질투, 배신, 그리고 슬픔의 흔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는 그림자처럼 그의 곁에 머물렀다. 결국 그녀는 진짜 ‘사랑의 그림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내겐 늘 무심하던 남편이 ‘나 아닌 누군가’에게 감동의 배려라도 베풀었던 날엔 나는 광기의 화신이 되었다. 이유 없는 착함에, 이유 있는 분노로 응수했다. 등짝 스매싱도 망설이지 않았다. 교회에서 은혜받고 집에 돌아와서는 왕왕 울며 이젠 그만 살자고 했던 날들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남편은 내 눈물에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았다.(“아, 또 시작이구나…” 하는 눈빛도 봤다.)

피가 뜨거웠던 그 시절. 그땐 그게 다 사랑인 줄 알았다. 내가 옳고, 내가 더 상처받았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감정에 김이 빠지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건 ‘사랑’이 아니라, “왜 나부터 챙겨주지 않았어?”라는 서툰 존재 확인이었다는 걸.

그 시절의 나는 서운함과 억울함에 휘둘려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자존심이 뒤틀렸고 감정은 늘 한 발 먼저 폭주했다. 그러면서도 ‘괜찮은 척’은 또 왜 그리 잘했는지.

그렇게 나는 감정에 치이고, 자존심에 부딪히며, 모지리처럼 아까운 젊음을 흘려보냈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나 역시 그 그림자 안에 있었다. 질투는 늘 참았고, 서운함은 늘 삼켰다. 비록 속이 요동칠 때면 남편의 등을 세게 때리긴 했지만.(물론, 폭력은 지양되어야 한다. 암요. 그래야죠! ) 그녀의 제비꽃이 내 속에서도 피어 있었나 보다.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꽃을 씹는 대신, 가끔 꽃을 받는다. 세월에 머리가 다 희어버린 남편은 오늘도 내게 묻는다. “오늘, 나 없이 힘든 건 없었어?”

그는 이제 진짜 내 편이 되었다. ‘남의 편’이 아닌, 진짜 ‘남편’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돌아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뭐, 그냥 웃으며 통 크게 넘기기로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질투와 광기의 시절들을 돌아보며, 그림 속 여인을 다시 바라본다. 입에 제비꽃을 문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 질투와 분노로 사랑과 헌신을 한 번에 말아먹었던 오래 전의 내가 떠올랐다. 자존심은 또 왜 그리 쓸데없이 많았던지. 차라리 개나 줘버릴 걸 그랬다.

말은 못 하고, 입술만 깨물며 ‘괜찮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던 시절...

이젠 안다. 그 여인은 나였고,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을 ‘살짝 비웃어줄’ 정도의 여유가 생긴, 우아하게 숙성된 ‘모지리’라는 것을.

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당신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그 마음… 얼마나 지긋지긋했는지. 나도, 그 사랑의 그림자에서 한참을 살았거든요.’




<함께 듣는 음악>

질투를 씹어 삼킨 그녀를 위한 아리아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Vissi d’arte〉


질투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랑과 헌신을 뜻하는 푸른 제비꽃을 문채, 올라오는 서러움을 꾹꾹 눌러 담았지요.

그 모습은 마치, “나는 오직 사랑으로 살았고, 예술로 노래했을 뿐인데...”라고 절규하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마지막 아리아를 닮았습니다.

“Vissi d’arte, vissi d’amore...”

(“나는 예술을 위해 살았고, 사랑을 위해 살았어요…”)


*

이 노래, 누가 들으면 연인에게 바치는 사랑 고백이라 착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이 곡은, 눈물 대신 품위를 택한 여인의 노래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무너지는 순간에도 사랑했던 기억만은 곱게 간직하고자 했던 그녀의 품격이 선율을 따라 조용히 번집니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그림 속 그녀와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마치 그림 속 메리처럼. 입술엔 제비꽃, 마음속엔 태풍. 꽃을 문 게 아니라, 사실은 감정을 꾹 눌러 삼키고 있는 중이죠.

“나 괜찮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속은 이미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어디까지나 ‘우아한 모지리’로 남기 위한 최후의 자존심일지도 모릅니다.


*

그런데 이 절규의 작곡가, 지오아코모 푸치니. 알고 보면 그림 속 여인을 울린 화가 프레드릭 샌디스 못지않게 사랑 많은(?) 남자였지요.

평생 한 명의 동반자와 살았지만, 마음은 여러 곳에 나눠주는 재능(?)을 보였고, 그 바람에 진짜 ‘사랑의 그림자’를 여러 명 만들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오죽하면 오페라보다 그의 연애사가 더 드라마틱하다고 했을까요.)

푸치니의 화려한 사생활이 겹쳐져서일까요? 〈Vissi d’arte〉는 그저 슬픈 아리아가 아니라, 사랑과 질투, 자존심과 상처 사이에서 어떻게든 버티는 한 여자의 우아한 절규처럼 들려옵니다.


*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 노래는 온갖 도도한 척은 다 해봤지만, 속은 폐허가 되었던 그 시절의 우리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비록 이제는 질투라면 진저리가 나지만, 이 아리아를 듣고 있으면 험난했던 질투의 세월을 지나쳐온 나에게 왠지 모를 위로가 됩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질투에 허우적대던 그 시절. 말 대신 꽃을 씹던 메리와 나를 위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괜찮아…” 하며 제비꽃을 꾹 문 채 조신하게 삐져 있는 또 다른 메리들을 위해, 이 곡을 바칩니다. ‘우아한 모지리들의 송가’를요.

https://youtu.be/NLR3lSrqlww?si=uYir2Hdj7k-p_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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