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맞지 않는 사람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신 어느 한 날의 새벽에, 나는 휘적거리며 견고한 그의 방으로 쳐들어 갔다.
선선하고 쾌적한 월넛 향이 나는 그의 싱글 침대에 비집고 들어가, 나는 너무 외롭고 섹스가 하고 싶다고 울먹이며 말했던 것 같다.
규칙적인 일상의 무너짐에 매우 민감한 그이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순순히, 나의 아랫도리에 그 과학적인 손가락을 적당한 각도로 위치시켰다.
그의 손가락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틀림없는 적절한 강약과 속도로 나를 오르가슴의 길로 안내했지만, 마침내 그날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5년 동안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수면제들이 내게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내게 점점 잘 되지 않아 미안하다고 말했고, 우리는 그렇게 비좁은 침대에서 어깨가 결리도록 온몸을 웅크린 채 동침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여느 때처럼, 서로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인사를 하고, 저녁에는 소파 위에서 그의 허벅지에 내 머리를 괴인 채 누워, 각자 좋아하는 책을 읽었지만, 거기까지.
매일 밤 10시 반, 어김없이 그는 그가 끓인 보리차 한잔을 내 방에 가져다주고, 온도와 습도가 적절한 지를 체크한 뒤, 등을 꺼주며 잘 자라 인사하고 문을 닫아준다.
그렇게 일정하게 주어진 서로의 방만큼의 거리와 시간을 두고, 우리는 마침내 최적의 상태에 안착했다.
이혼 서류를 내던지며 싸움과 섹스 거부, 섹스 거부와 싸움으로 질주하던 시간들은 그를 수그러들게 했고, 나의 성욕 또한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하지만 서늘한 그의 눈빛에서 졸아드는 심장을 부여잡던 그 시간들보다, 나의 숨을 잔잔하고 고르게 해주는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의 잔잔함에 머무를 수 있는 이 시간에 차라리 안도했다.
그는 독도와 같다. 섬에 사는 그의 온도는 나와 맞지 않는다.
얼음송곳. 내가 그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그 송곳은 늘 차갑게 나를 찔렀다. 나는 처음에 100도의 물처럼 들끓는 애정을 원했었지만, 점차 따뜻하고 적정한 딱 보리차만큼의 관심을 바랐다. 그러나 보리차는 그와 함께한 15년의 삶 속에서 서서히 식어갔다.
나는 보리차가 다시 데워지기를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되었다.
2015년부터 2020년 사이에는 남편의 가스 라이팅에 회사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이 보태졌다. 내게는 회사에도 집에도 늘 나를 야단치는 부장이 존재했다. 나는 집이나 회사에서나 늘 보고를 하고, 승인을 받으면서 무시와 비난의 폭언을 들어야만 했다.
소리치는 남자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때도 나는 그것을 전부 나 자신의 잘못으로 수렴했다.
내가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쓰러져 회사를 무단결근 한 뒤, 이후 몇 달이 지나서야 남편이 회사에 전화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통화를 했던 부장은 남편이 마치 부장 자신을 살인자나 된 듯 취급하며 부르르 떨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것도 남편의 일종의 애정표현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어떤 소유. 자기 영역의 침범에 대한 모욕감의 표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부장은 서로를 험담하고 미워했지만 나는 그것이 마치 ‘동족 혐오’처럼 느껴졌다.
서로는 가해자가 아니라는 듯이 행동했지만 내게는 둘 다 같았다.
‘그 무엇도 폭력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나는 그때 왜 그들에게 그렇게 소리치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