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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운 Apr 06. 2022

죽고 싶은 마음은 접어 둡니다.

나는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았고,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던 전혀 하지 않던, 빨리 알아차리든 혹은 늦어지든 간에, 치유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였다.


나는 나의 트라우마를 인생에서 약간 늦게 알아차린 편인 것 같고, 남들보다 조금 늦은 사춘기를 겪고 혹독한 시련의 과정을 지나쳐야만 했다.


자주 소스라치게 놀라고, 간혹 부르르 떨었다. 분노하고 소리치고, 어리석고 철없어 보이는 행동을 부끄러움도 잊은 채 한 적도 있다. 그 당시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내가 종종 길길이 날뛰거나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아마도 상당히 의아함 또는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지나치리 만큼 감정 소모를 했고, 그것이 나를 갉아 매는 줄도 몰랐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나의 피해받은 감정을 쏟아내느라 휘몰아치듯 격정적이었고, 읽는 사람마저도 당혹함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동정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적잖이 당황하여 내 심리상태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상당한 우려를 비추었을 정도였다.

(특히 상당히 내적 자아가 성숙한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거나 돌려 말하면서 지적하고는 했는데, 이렇게 쓰는 것은 절대 그 사람들이 미워서 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자아가 충만한 이들이 나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돕지도 않을 거면서 내버려 두는 것에 대한 철없는 질투와 원망이 조금은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 자아의 성숙기를 한 차례 겪고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를 통해 말한 '낙타- 사자 -아이'에 이르는 저 너머 초인의 세계로 건너가는 자까지는 되지 못했을 지라도, 나는 어쨌든 미성숙한 자아의 세계에서 한 단계는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찾았고 엄마, 남편, 회사 부장으로 이어졌던 가스 라이팅을 통해 나 자신을 하대하고 부정하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아직 약간의 불안은 남아있어 또다시 쓰러지고 마음 한 구석이 바스러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게 도와주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것뿐이다.


물론  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고, 한 번의 성숙기를 거쳐 다시 유년기로 퇴행하게 될 수도, 스스로를 다시 암흑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려는 내면의 불안한 자아가 펼치는 시나리오나 나 자체를 부정하는 쇼로 인해 멋대로 인생이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원하던 상으로 현재를 그려가고 있다. 늘 꿈과 같은 환상의 현실 속에서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근래에 내 성격은 INFJ에서 ENFJ로 바뀌어 가고 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진짜 성격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을 찾게 된 것인지, 혹은 현실감 결여라는 내 성격유형의 치명적 결함에서 비롯되어 주변에 나타난 인물 관계도의 변화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인지 또한 알 수 없다. 중년의 혼란스러운 관계의 소용돌이 속에 나를 또 스스로 빠뜨리면서, 나는 무엇을 위하고 무엇을 향해 가는지 도통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라는 인간을 믿고 더 이상 인생의 끈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토록 내가 평생 동안 갈구했던 것.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라 믿었던 것. 내가 나 자신을 찾는데 무엇보다 도움이 되는 것, 나 자신에 대한 사랑. 그것이 중년의 내게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매 인생 순간 속의 나라는 인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공개적인 곳에 내놓고도 단순한 일기에 머무르게 될지 몰라 부끄러운 일이지만, 파도같이 밀어닥치고 쏟아져 내렸던 매 순간의 아픈 상처와, 극복했던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사는 지극히 본능적인 삶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하려 노력해도 밀물처럼 어느 순간 쏟아져 내리는 인생의 다양한 사건들 피할 수 없었던 벼락이나 혜성 충돌 같은 것이다.


혹자는 만에 하나 일어나기도 힘든 자연재해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고 자신할지도 모르며, 혹은 그런 사건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내 감정은 자연재해와는 다르게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부정도 변명도 하지 않겠다. 몇 번이고 반복하지만, 나는 단지 잊지 않기 위해서 쓰는 것일 뿐이다.


삼십 대의 나는 내게 참으로 모질었다

자책, 가해, 외로움, 피해의식... 점점이 짙은 색으로 점철된 아픔들은 내 안의 구석구석을 덧칠해서 나라는 본질을 흐리게 만들었다.


남편이 차 안에서 내게 소리를 쳤던 어느 날, 나는 대시보드에 내 머리를 찧어가며 자해를 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내게 소리치는 일이 생긴다면 칼로 내 손목을 그어버리겠다는 결심을 수없이도 했었다.


이전에 나는 우울한 상태를 즐겨서, 일부러 더 우울한 자세를 하고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나를 자꾸만 우울의 나락으로 던졌다.


이제는 우울한 날이 오면 허리를 펴고 거울의 나를 바라본다.


‘이만하면 썩 괜찮은 인생이잖아?’

나 자신을 향해 웃고 정말 그런 인생이기를 바란다


나는 인생의 사건들을 극복하는 것으로 인해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이 단단함을 느낀다. 바쁘지만 나의 일상에 필요한,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그 모든 것을 소화해 나가고 있고 나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삶 속에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바르고 굳건히 서서 스스로가 나 자신을 지탱하고 있음을 느낀다.


끝을 향해 가지만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채로 나는 현실과 꿈의 경계 그 어디쯤 인가의 사이에서 나의 손을 잡은 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때때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면 단어들이 문장 구름이 되어 모인다. 그런데 그것을 붙잡으려고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해체되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때가 많아 아쉽다.


언젠가는 나를 치유하는 글을 끝내고 타인을 치유해 줄 글을 쓸 수 있게 되겠지.

읽어주는 사람이 적더라도 그중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울림이 되기를 고대한다.


그런 글을 쓰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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