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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Aug 31. 2024

우두커니 서서 발만 동동 구르다

 가속력이 붙은 어느 모양새에도 제지를 해줄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것은 하늘에 별이 떠 있다는 말과 같은 이야기로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물체에 한정된 이야기다. 삶에 혹은 미래에 대한 열정과 열망에 가속력이 붙으면 제지할 브레이크가 없다. 스스로 정제하고 스스로 검열해야만 자신을 컨트롤할 수도, 자신의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도 있지만…. 우린 모두 알지 않는가?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돈을 벌 때에도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을 할 때에도 그것이 성과를 발휘하면 처음에 어떠한 이유로 그것을 실행했는지보다도 그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시간과 과도한 열정으로 우리는 과로를 선물 받는다. 때로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훈장처럼 여기어 대단한 것처럼 포장할 때도 많지만 사실상 훈장이 아닌 자국 없는 스크레치이다. 나 역시 나의 과로와 나의 노력은 그저 훈장으로 생각하며 준비 안 된 여행자처럼 스스로를 '나그네'라 칭하며 아는 것 하나 없이 그저 걸었다. 요즘은 걷기만 해도 돈을 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지만 인생엔 그러한 애플리케이션이 없다. 적은 쉼도 농땡이가 되고 적은 안정감은 큰 불안감을 안고 오는 것 같다. 그것들은 마치 서로 이끄는 존재들처럼 항상 붙어있다.


 그렇다면 속도를 점점 내는 내 계획과 목적 또한 그러한 것일까? 그저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 선택한 나의 또 다른 핑곗거리가 아닐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그 현실의 모든 조건을 무시한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절대 끝나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가 점점 구축을 완료해 가고 있다. 물론 나만의 세계가 있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만드는 것이 어떠한 에너지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내면의 싸움이 잦은 나에겐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건축가는 불안이었다.


 물론 내가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 나는 창조적 자유와 열정을 쫓아가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은 그 자유를 제한하고 때로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로, 경제적인 불안정성이 삶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예술을 창조하는 행위 자체는 돈을 위한 것이 아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수입이 필수적이었다. 많은 예술가가 예술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부업을 찾거나 경제적 지원을 의지하게 된다. 이는 종종 예술적 열정을 좇는 시간을 빼앗기거나, 창의적인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결과를 낳곤 한다. 결국 예술 활동과 생계유지를 위한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괴리는 사회적 인정과 관련이 있다. 예술가로서의 삶은 사회로부터의 인정을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이 인정은 매우 제한적이거나 심지어 부재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은 때로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거나, 특정한 사회적 규범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당할 수 있다. 자기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 하지만, 사회는 때로 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상업적 가치가 없는 작품이라며 무시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사회적 인정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괴리감을 경험하게 된다.


 내면적 갈등도 괴리를 느끼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창조적인 과정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며, 이는 자주 혼란과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자기 작품에 대한 의문과 불안은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끝없는 자기 성찰 속에서 더 나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이는 종종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위로 이어지곤 했다.


 이러한 괴리감은 살아가는 현실과 꿈꾸는 이상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창조적 자유와 자기표현을 갈망하지만, 현실은 그 자유를 제약하고, 종종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려 한다. 이러한 괴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수용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괴리감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고통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과정에서 느끼는 괴리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상적인 예술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이 쉽지 않음을 알지만, 그런데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은 결국 내가 그리는 비전이 그 어떤 현실적인 어려움보다도 소중하다는 믿음이다.


 그럼에도, 그날따라 매일 보던 흰 캔버스 앞에 앉아 있던 내가 비참했다. 새로운 것을 그려야 할 것만 같은데 이상하게 현실의 월세, 통신비, 세금 등 생각할 것들로 가득했기에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 있는 내가 참으로 작아 보였다. 우주는 넓고 인간은 먼지와 같다고 말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러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 그날따라 유독 먼지와 같았다. 생각을 멈출 순 없고 메모장이 필요했던 나는 처음으로 가장 비싼 메모장인 캔버스에 당장 낼 돈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별로 큰 글씨체로 쓴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캔버스에 공간이 부족하다. 이어서 이내 다른 공책마저 손에 쥐고 다시금 써 내려갔다. 한 달간 내가 벌어야 할 수익과 그 구조에 관해서 말이다. 그 당시 나는 퇴사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에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예술만을 고집했고 일하는 것에 그다지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물질적 욕심에서 벗어나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을 찾기 시작했지만 가치가 가까워질수록 살아가야 할 값이 더 가까이 왔다.


 이상과 현실은 내 두 팔을 양쪽으로 당기어 끊어지지 않는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그 둘 다 나이기에 난 어느 쪽 하나 응원할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기를 반복했다. 정말 웃긴 것은 눈물도 한쪽에서만 자연스레 흘렀고, 다른 쪽은 그저 고여있었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그러한 것을 말하거나 표출하기는 싫었기에 더욱 웃으려 노력했고,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는 이를테면 모나리자 같았다.


 어릴 적 나는 나름대로 공부를 잘했고, 안정적인 꿈을 갖는 것을 원했지만 지금의 나는 위태롭기만 했다. 스스로 키워드를 만들려 펜을 잡고 써 내려갔지만 나를 표현할 키워드는 조용한, 도전적인, 위태로운 등 어릴 적 내가 꿈꾼 나의 미래는 없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이 삶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것에도 쉽게 감동하거나 감사함을 느끼거나 하지 못했던 내가 작은 것에 감동하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것을 이득과 손해로 나눈다면 지금 이 삶에 나는 더욱 큰 인간적 이득을 얻었고, 물질적 손해를 입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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