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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01. 2024

감성 따윈 집어치우고

 작업을 할 때의 미묘한 떨림과 섬세한 느낌들은 현실의 벽에선 부질없다. 현실은 미묘한 떨림과 섬세한 느낌을 느낄 여력이 없으니 그러한 것들도 결국 사치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일찍 출근길에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 여긴 적이 많다. 분명 조는 사람들도 혹은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들도 때론 그냥 어딘가 모르게 찌들어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예술을 하겠다 선언한 나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그들과 다른 방향으로 아침에 밖을 나갔던 나날들이 많다. 난 스스로 위로하며 저들보다 난 하고 싶은 걸 하잖아 라는 말을 읊조리며 현실을 외면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돈을 잘 벌 때는 돈 나갈 곳이 없고, 잘 벌지 못할 때에는 돈 나갈 일만 가득하다. 특히 경조사가 갑자기 왜 이리나 많은지... 분명히 가야 함을 알고는 있지만 돈이 나의 발목을 잡아챈다. 우습게도 그러한 상황이 생길 때면 난 그냥 주변인을 정리할까 생각했다. 우습고 비참하고 지극히 개인주의적 생각이었고,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만들었다. '고작 돈 때문에...'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당시 나에겐 작업을 위해 나갈 돈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기에 그러한 생각하는 내가 창피한 것인지 몰랐다.


 간신히 붙들고 있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의 말 한마디에 끈이 끊어지듯 바닥으로 추락했다.

 타인은 나에게 "너 정말 행복해 보이지 않아. 고되 보여, 네가 어쩌다 이렇게 됐냐."라는 말과 함께 나와의 연을 종료함을 일렀다. 예술을 하려면 주변에 가족, 친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던 유명 예술가의 말이 떠올랐지만, 정이 많은 성격을 지니고 있던 나에게 그 첫 번째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와 몇 날을 우울감에 지냈다.

더욱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피하게 되고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연락이 오면 미안하다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물론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착각이지만 더 이상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사과하는 것을 택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여러 날이 지나고 내 주변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엔 광고 연락만 수두룩... 생일엔 플랫폼에 가입해 그 신상정보 때문에 상단에 뜨는 배너의 축하뿐이었다. 돈과 함께 주변이 사라졌다. 이대로라면 예술을 떠나 내 삶도 실패한 인생으로 각인되어 스스로 버틸 힘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고, 그깟 감성을 잠시라도 집어치우기로 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지만 돈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신진작가인 내가 예술만으로 돈을 벌 수 없기에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아주 이성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플랫폼에 가입을 했다. 이력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냥 경제적 수입을 낼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술활동과 연결 지을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플랫폼 검색창에 '예술', '미술' 등 과 같이 검색했지만 나오는 거라곤 10개 미만의 채용 글과 심지어 채용기간이 다 지난 것들로 가득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상주로 일하는 것이 예술활동에 크게 지장을 줄 것 같아 프리랜서(비상주)로 일할 곳들을 찾았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낼 수 있는지 체크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었지만 그것만큼 행복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나의 포트폴리오를 좋게 봐주게 되었고, 수익을 만들기 위해 프리랜서 영상편집자가 되어야 했다. 광고 영상, 바이럴 영상 같은 영상들이 필요했던 업체가 가격경쟁에서 승리한 나에게 외주 문의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첫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고, 불안과 우울 속에 있던 나에게 새로운 설렘과 긴장을 주었다.


 영상 편집자로서 처음 외주를 받는다는 것은 마치 새로 태어난 나비가 처음 날개를 펴는 순간과 같았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재미 삼아 만들어 놓은 영상들은 기술과 열정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방식은 다르지만 그토록 원하던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기업에 도움이 되는 작업물을 드러낼 기회를 얻은 것이지만, 동시에 그 무게와 책임감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첫 외주를 앞둔 그때, 나는 두려움과 설렘이라는 두 감정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두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지 모른다. 외주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작업은 아니었으며, 클라이언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상 편집은 한 장면 한 장면,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결과물이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실수를 하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나를 긴장시키곤 한다. 때로 이것들은 금전적 배상으로 이어지기에 날 선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두려움의 반대편에는 설렘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동안의 예술을 하며 예술성을 그나마 길러놓았던 내가 실전에서 빛을 발할 기회라는 점에서 나는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설렘은 내가 선택한 이 수익구조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모르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 첫 외주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그것이 내가 꿈꾸던 일을 유지할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흥분시켰다.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며 그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나의 창의력을 발휘해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나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였다.


 이 두 감정은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를 더욱 집중하게 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제일 나를 집중하게 하고 원동력이 되는 것은 금융치료였지만 말이다.

 나름의 두려움은 내가 더 철저하게 준비하게 만들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설렘은 내가 이 일을 즐기고, 우울을 던져내고 객관적인 열정을 다해 작업에 임하게 했다.


 결국 첫 외주는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자, 나 자신을 시험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 과정을 통해 더욱 안정화할 곳이고, 앞으로도 많은 도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오늘 느꼈던 두려움과 설렘을 기억하며, 그 감정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었음을 상기할 것이다.


 지금의 두려움은 언젠가 자부심으로 변할 것이고, 설렘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첫 외주는 나에게, 작업에게 큰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항상 되새기며, 나는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첫 발을 내디뎠다.

 아주 냉정히 더 이상 중요한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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