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자신이 미술 작가로서 더 나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왔다. 그 압박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아마도 나 자신이 정해둔 목표와 타인들의 기대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빠르게 성공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주변의 작가들이 내놓는 작품들, 그들이 얻는 찬사와 인정, 주변에서의 기대와 소음들…. 그것들은 더 빨리, 더 잘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해야만 했던 이유였다. 그러한 자극들을 이용할 줄 몰랐던 나는 점점 더 단단하고 아픈 채찍으로 완성해 나갔다.
'잘해야만 해. 꼭 그래야만 해.'라는 말은 스스로를 얽매이는 나 자신만의 말이었다. 마치 아침에 눈을 떠 하
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루틴과도 같은 것이다. 비록 그러한 생각들에 잠겨 눈뜨는 아침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어느덧 나는 스스로에 갇혀 몸과 마음도 움츠러들고 사람의 시선을 쳐다볼 용기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숭고한 것이라는 착각에 살았다. 나날이 거듭할수록 그러한 자신의 외침이 아프게만 느껴졌고, 마음을 정비할 시간도 없이 상처 난 대로 허물어진 대로 굳어지는 것을 발견했지만 애써 다음 목표를 향해 외면했다.
작업을 할 때면 언제나 두 잔의 커피와 함께 시간이 나를 쫓아오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시작했다. 마치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어떤 기회가 눈앞에 놓여 있고, 그것을 놓치면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나를 지배했다. 이 마음속의 긴장은 작업의 속도를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작품의 질에 대한 회의도 함께 끌어올렸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예술적 완성도였지만, 성급한 마음에 그 완성도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성급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예술적 열정은 이 성급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는 이 열망은 내 작품 속에 담으로 했으며, 그 속도와 강렬함이 나를 독특한 예술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이 열망이 내 안의 균형을 잃게 만들지는 않을지 염려스럽다.
이 성급함이 단순히 나의 성격일까, 아니면 내가 사는 시대와 환경이 나에게 심어준 감정일까? 때로는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너무 빠르게 결과를 내도록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미술관에서 한 번의 전시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처럼, 한 번의 기회에 인생이 좌우된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 왔다.
내가 아는 예술은 원래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시간을 들여 숙성해야 하는 와인처럼, 천천히 자라나는 나무처럼, 서서히 빛을 발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그 느린 과정을 참아내기 힘들었다. 항상 더 나은 작품을, 더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압도할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지를 말이다. 그것이 정녕 건강과 관련이 되어 있어도 나는 대가를 치를 각오를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내 수입은 점점 줄어가고 작은 소비마저 사치로 여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조급함은 나에게 어떠한 생각할 거리를 주기도 싫었던 것인지. 나의 이런 현실조차도 볼 수 없도록 성급하게 다가온다. 마치 그것은 '내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며 혹은 답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붓을 잡고 작업실로 들어가야만 했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어디에서 잃어버린 줄 모르는 것처럼…. 내 안의 불안과 성급함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나를 강인지 늪인지 모르는 더 멀리 있는 앞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