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다.
< 요양원에서 어머니가 보낸 편지 >
사랑하는 아들에게~
내가 요양원에 입소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구나!
몹시 무덥던 8월 6일 오후 요양원에 입소한 그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는 아들을 많이 원망했다. 잠자는 곳도 낯설어 힘들고 사람을 잘 못 사귀는 성격이라 적응하기 힘든 요양원에 왜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을까? 하는 마음에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다. 잘 지내던 집을 두고 내가 왜 여기로 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가신 네 아버지가 몹시 보고 싶었다. 나 혼자 두고 혼자 가신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요양원 생활의 모든 것이 불편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아들과 며느리가 매주 주말에 찾아와 주는 덕분에 아들, 며느리 얼굴 보는 낙(樂)으로 버티고 지내왔다. 처음 한 달 동안에는 면회 오는 아들과 며느리를 볼 때마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말이 하고 싶었지만 버티고 버티고 참았다.
내가 그렇게 얘기하면 "아들과 며느리가 얼마나 마음 아플까!", 생각하니 도저히 입이 안 떨어졌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힘들게 버티든 한 달이 지나고 나니 내 주변의 할머니들도 다 들 그렇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마음의 위안을 삼게 되었다.
여기서도 사니깐 살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삶도 삶의 일부분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불편하지만 이곳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 자식들을 위한 방법’이라는 생각 하니 요양원에서의 삶도 긍정적인 면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기 시작했다. 참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들, 며느리가 자주 방문해 주는 덕분에 요양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더 관심도 가져주고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해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너희들이 면회 왔을 때 미국에 사는 막내딸, 그리고 서울에 사는 작은 아들과 영상 통화하는 게 나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모두 같이 '섬마을 선생님', '용두산 엘레지' 노래를 부르는 것도 나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점점 더 많아지고 기억이 희미해지니 나의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동서와도 가끔 영상 통화를 하고 싶구나. 다음에 오면 이분들에게 미리 연락하여 영상 통화 한번 하였으면 좋겠다. 부탁한다.
요즘은 요양원에서 하루도 심심하지 않게 다양한 프로그램과 외부 활동 그리고 물리치료까지 해주어서 집에서보다 더 편안한 것 같다. 만일 내가 아직도 요양원에서 견디기 힘들었다면 일요일 만났을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집에 가고 싶다고 했을 것인데 요즘은 요양원에서 지내다 주말마다 아들, 며느리 얼굴 보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어 가고 주말이 기다려진다.
이번 주는 또 맛있는 어떤 음식을 가지고 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멀리 있는 가족과 영상 통화 할 것을 생각하니 한 주일이 금방 지나가는 것 같다. 이제 내 걱정은 잊고 마음 편하게 지내라. 그동안 네 아버지 돌아가신 후 나에게 너무 많이 걱정해 주고 신경을 써준걸 잘 알고 있다. 정말 고마웠다. 이제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도 했으니 좋아하는 여행도 마음대로 다니고 며느리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재미나게 살아라.
한평생이 참 빠른 것 같다. 엊그제 새해인 듯하더니 벌써 연말이다. 잠깐 졸다 잠에서 깬 것 같은데 내 나이도 구순을 향해 달려가니 남은 인생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정신이 조금 맑을 때 몇 가지 부탁하고자 한다.
부디 가족들에게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 남편이 되어라. 모름지기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가족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하였다. 네 아버지는 그러하지 못했지만, 너는 가족에게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라. 세상에서 나를 사랑하는 제일 큰 방법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다. 나도 한평생 많은 사람으로부터 배신도 당하고 이용도 당한 것 같은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용서하기로 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다.
내 아들로 태어나 주어서 정말 고맙다.
내 아들과 함께한 이번 생(生)은 너무 행복했다.
다음 생(生)에는 내가 네 딸로 태어나 효도하고
나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아 보았으면 좋겠다.
2024.12.15.(일요일) 요양원에서 사랑하는 엄마가….
치매가 심한 어머니가 편지를 쓸 리가 없다. 한글을 쓰기도 힘들어하시고 자판으로 타이핑을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어머니가 편지를 쓴다면 이런 내용으로 쓸 것 같다.
매주 일요일 어머니를 뵙기 위해 요양원에 다녀온다.
오늘 일요일도 어김없이 요양원에 다녀왔다. 요양원에 가면 면회하거나 외출해서 같이 식사하고 차를 마신다. 면회나 외출을 하면 제일 많이 하는 일은 멀리서 사는 가족과 영상 통화하는 일, 그리고 섬마을 선생님, 용두산 엘레지, 동백 아가씨 노래 부르는 일, 가족을 위한 영상 메시지 만드는 일 이렇게 3가지이다.
거동이 불편하시고 치매가 심한 어머니는 오전에 했던 일을 오후에 기억 못 하시지만 다행히 아직 아들의 얼굴은 알아보신다. 언젠가는 아들의 얼굴을 잊어버리시겠지….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실 줄 모르시는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 표현보다는 늘 자식 걱정이 먼저이시다.
사랑합니다.
헌신적인 어머니를 만나 이렇게 인생 멋지게 잘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