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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Sep 25. 2024

보다

너와 눈을 마주 보고 싶어

여자 집사는 원래 고양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어.

우리 눈이 무섭고 표독스러워 보여서라나 뭐라나.

밤중에 플래시를 터뜨려 찍어서 눈만 하얗게 나온 사진을 보면 전설의 고향에서 사람을 홀리는 여우 생각도 났다더라.

이런 말을 들으면 콧방귀만 나와.

자기네들도 카메라가 보정 안 해주면 눈만 시뻘겋게 나오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인가 싶어서.


우리 눈이 좀 크긴 하지.

게다가 우린 눈을 맞추면 좀처럼 먼저 피하지 않아.

눈꺼풀을 깜빡이지도 않으니, 우리와 눈싸움을 한다면 우리가 백전백승일걸?


환한 대낮에 나가면 우리 눈동자는 깎아 놓은 손톱처럼 가느다래지고,

밤이 되면 구슬처럼 동그래지지.

털 색깔이 다양한 것처럼 우리 눈 빛깔은 또 얼마나 다채롭게?

어릴 때부터 쭉 같은 눈 색깔을 유지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크면서 달라지는 녀석들도 있어.

우리 집 치즈냥 메이 도 아깽이 시절에는 맑은 청록색이었는데 크면서는 늙은 호박색으로 바뀌었잖아.(아휴, 걔는 외모나 성질이나 자라면서 여러 모로 역변했어.)

같은 아이, 다른 눈

나름 품종묘라는 막내 녀석은 밥 달라고 할 때는 조그맣게 옹거리지만

그 외엔 주로 눈빛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집사들한테 붙잡히면 억울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밖에 나가고 싶을 땐 금세 눈물을 뚝 떨어뜨릴 것처럼 촉촉해지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 눈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당신들은 두 눈으로 어떤 세상을 보고 있는지.

우리도 우리가 볼 수 있는 동안에는 아름다운 세상만을 보면서 살고 싶다네.

사람들과 오래오래 눈 맞춤을 하면서 살고 싶어.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눈빛으로라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야.


'내 아기들 함부로 데려가지 마세요.'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마세요.'

'밥을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당신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쥐를 잡아 드릴게요.'

이런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가장 먼저 서로의 눈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한 발씩 더 가까워지면서 눈을 맞추고 눈빛을 교환하고 싶거든.

그게 서로 믿고 사랑해 가는 첫 번째 과정이니까.


자, 우린 준비되어 있으니 가까이 다가오시게나.

다가와서 내 눈을 바라보시게.

십 초만, 일 분만 고요히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확인해 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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