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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ul 24. 2024

<나이가 주는 무게감>

- 나는 37살이라고 규정하고 산다.

김미경 강사가 어느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늦은 아침 시간이었는데 제 기억에는 10시쯤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핵심을 요약하면 100세 시대, 120세 시대에는 나이를 15살 정도는 아래로 내려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방에서 화장을 하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거실에서 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자꾸 귀가 기울어집니다. 그 김미경 강사의 말을 듣고 있는 남편에게 나는

"그런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었는 것 같지 않아요?"

웃으며 남편에게 다가가서 물으니,

"당신이 늘 하던 이야기잖아, 당신은 20살 내리고. 허허."


나는 남편에게 나는 37살, 당신은 41살이에요.

지난겨울 나는 내 인생에서 다시 태어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37살로, 나는 그렇게 규정했습니다. 실제로 37살로 보여서 그런 게 아닙니다. 37살이면 충분히 앞으로 다시 시작해도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3과 7은 홀수로 다 좋은 수이다. 합하면 10이다. 뭔가 잘 풀릴 것 같고, 잘 될 것 같은 나이다, 이렇게 생각했지요. 41살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와 4살 터울이니까요. 어쩌면 진짜 37살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57살이라고 생각하면 싫었습니다. 좀 미운 나이입니다. 어정쩡한 것 같아요.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나이, 성숙하기에는 뭔가 아직 욕심이 있을 나이, 다 성장했다고 생각되어도 갱년기가 시작되는 나이, "젊음"을 규정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억지로 짜내어야 할 것 같은 나이입니다. 


그래서 나는 37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고 싶었지요. 37살이라고 하니 뭔가 근사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뭔가 다시 시작해도 괜찮겠다는 가짜즐거움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김미경 강사가 굉장히 근거 있게 멋진 포즈로 멋지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인기 있는 강사가 아닌가요. 그런 강사가 하는 말이니 얼마나 멋있고 논리적이고 굉장한 말로 들리는 지요. 


나는 이때다! 싶어 놓치지 않으려고 잘 듣고 있는 남편에게 내가 김미경보다 당신한테 먼저 말했다는 것을 확인시켜려고 남편 앞에 섰던 것입니다. 


가짜뉴스는 혼란을 주지만 가짜나이는 나한테 진짜 건강한 삶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직 젊다고 믿으니까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실제 또 가서 하다 보면 처음에는 못 따라갈 것 같고, 못 할 것 같아도 수강이 끝날 때쯤에는 얼기설기하게 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석만 잘해도 따라가게 되네요. 모나지 않게 절반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1등 안 해도 2등 안 해도 3등 안 해도 중간 정도면 잘했다, 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역시 인생은 마라톤인 것 같습니다. 출발은 동시에 같이 시작하여도 뛰는 속도는 자신의 속도에 맞추면 그래도 끝까지 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꼴찌로 들어와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만 해도 뜨거운 박수를 받으니까요.


나이를 좀 잊고 살고 싶습니다. 

오늘 31살인 아가씨와 가벼운 브런치를 했습니다. 그 아가씨의 나이는 오늘 알았습니다. 나는 나보다 한참 어린 아가씨와 취향이 많이 비슷했습니다. 

낯을 좀 가리는 것, 쉬지 않고 열심히 배우는 것, 또 나와 영상 수업 강사 선생님이 강의하는 곳만 다르고 같은 선생님한테 배우고 있다는 것, 좋아하는 영화(리틀 포레스트 일본판, 김태리가 주연한 한국판)적 취향도 같고, 소소한 일상적 삶의 가치도 같고(안정감). 나는 나이가 한참 어린 아가씨와 속 깊은 말도 하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도 이야기하고 현재의 삶도 이야기하고  지난 삶의 이야기도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한참 나이가 더 먹고 나면 취미로 글쓰기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아가씨의 말이,

"요즘에는 취향이 같으면 나이하고 상관없이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그 말이 참 듣기가 좋네요. 칭찬 같습니다. 


나는 이모티콘을 배우고 싶은데, 이모티콘 수업을 벌써 받았다고 하네요. 도서관 수업은 무료인데, 직장을 다니면 배우기 어렵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으니 안 배우면 손해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배우러 다닌다고 합니다. 나처럼 하루에 강좌가 3개나 있어서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서로 하는데 이상하게 좋더라고요. 도슨트 수업을 받을 때는 얼굴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브런치를 하면서 서로 서먹하지 않아서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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