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하게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심플하게 산다는 것.

by 기쁨



독립을 하겠다며 집을 뒤집어엎고 당당하게 나가

3개월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이미 다 갖춰진 고시원에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짐을 챙기며 집에 돌아오던 날, 깜짝 놀랐다.

뭔 놈의 짐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생겼는지.


결혼을 하고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겼을 땐 더더욱 심했다.

왜 이렇게 사는데 필요한 물건은 많고,

다이소는 매일 가도 가도 살 것들이 끝없이 생기는지.

물건 위에 물건이 쌓여 찾을 수 없어서 그 물건을 또 구매하고,
냉장고에는 도저히 뒤져볼 엄두가 안나 그 위에 신선한 재료를 계속 쌓아두었다.


이미 방 하나는 창고가 되어버렸고

매일 짐들을 들고, 옮기며 청소하는 것도 버거워져

청소시간이 점점 고통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왜 나의 알고리즘에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일본의 유명한 미니멀리스트를 보았다.

방 한 칸에 사는 남자였는데, 그 영상을 보며 나는
내가 얼마나 ‘물건의 마케팅’에 잠식된 삶을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걸 사면 네가 더 부자처럼 보일 거야.’
‘이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널 부러워할 거야.’

이런 마케팅에는 나는 절대 안 휘둘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서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 닦는 수건은 따로 써야 해.’
‘촉감 좋고 도톰한 수건이 삶의 질을 높여줄 거야.’
‘발을 닦는 수건은 당연히 따로 있어야지.’
‘주방에서 쓰는 수건은 좀 더 예쁘고, 주방과 잘 어울려야 하지 않겠어?’

‘걸레도 종류별로 주방용, 욕실용, 거실용 다 따로 써야 해.’
‘좋은 소재의 수건을 쓰는 건, 너 자신을 아끼는 거야.’

나는 수건 하나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각가지 종류의 50개도 넘는 수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영상 속 그 남자는
작은 수건 하나로 몸도 닦고, 방도 닦고,
조금 극단적이긴 했지만,

온갖 용도로 다 써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냄비도 마찬가지였다.
밀크팬, 크기가 다른 냄비 여러 개, 깊이가 각기 다른 팬들,

찜 냄비, 무쇠 냄비, 스테인리스 냄비, 손님맞이용 예쁜 냄비, 전골냄비까지.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냄비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요리도 자주 해 먹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가진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었구나’라는 자각에 놀랐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미니멀라이프 관련 책들을

찾아 읽었고,
곤도 마리에 씨의 프로그램을 보며 물건을 줄이기 시작했다.

짐을 버리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물건 하나하나를 버릴 때마다
부끄러움과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올라왔다.

나 혼자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같은 물건이 반복적으로 쏟아지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음식들이 정리도 되지 않은 채 나오는 걸 보며 마주하기 힘든 감정들이 밀려왔다.

아주 큰 쓰레기봉투에 짐을 가득 채워
한 달 동안 여러 번 버리고 나서야
질식할 것 같았던 내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내 삶은 정말 많은 게 정리가 되었다.

변화했다 보다는 정리되었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다.


첫 번째로 정리된 건 ‘나의 취향’이었다.

예전엔 그 물건이 필요하면 뭐든, 일단 눈에 보이는 싼 걸로 샀다. 그러다 보니 집 안은 필요해서 샀지만

정작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하나가 다 떨어지면 사기’,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리기’라는 원칙을 세우고 나서부터는
무언가를 살 때마다 먼저 생각하게 됐다.
정말 이걸 사고 싶은가? 이게 내 취향인가?

작은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정말 필요한가?’,
‘이것만 집에 두어도 후회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그렇게 조금씩 정리하고 고르고 남긴 물건들로
지금 내 집은 온전히 내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집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두 번째로 정리된 것은 ‘시간’이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며
내 삶에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인간관계와 일상도 점점 심플해지는 걸 느꼈다.

물건을 많이 사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시각적으로 받던 스트레스도 줄어드니
비로소 깊은 휴식과 집중이 가능해졌다.

진짜 소중한 사람들과의 연결되는 삶.

그것이 내가 정리한 두 번째 삶의 정리였다.

그 외에도 변화는 있었다.

청소가 훨씬 편해졌고, 낭비되는 돈이 줄었으며,
조금은 환경 보호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살림은 아직

“저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어요!”라고

당당히 외칠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물건에 대한 미련도 많고, 짐도 많다.

그래서 나는
‘미니멀라이프로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쪽에 더 가깝다.


그리고 내 미니멀라이프의 마지막 목표는 이것이다.
언젠간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누군가 내 짐을 정리할 때,

수고스럽지 않게

내 물건이 박스 한 개를 넘지 않도록 남기는 것.

비싼 물건이나 내가 소유한 것들이 내 인생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긴 사랑이 유산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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