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직업 ⅱ) 맞아. 우리 아빠 작가야.

PART Ⅰ. 존재의 퍼즐: 아빠라는 사람

by 연우

영어 학원에서 새 친구를 사귀었다. 다른 반이었지만 같이 학원에 다니고 함께 숙제도 하면서 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무심코 아버지의 직업을 물었다. 익숙한 상황을 예상하며 나는 습관처럼 ‘작가’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감정이 솟구쳤다. 친구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가 “아버지 소설 작가야? 짱 멋있다!” 하고 외쳤을 때, 나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만 해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다. 아빠는 글을 쓰는 ‘작가’는 맞았으니까. 단지 ‘소설’ 작가가 아닐 뿐이었으니까.


순간, 친구의 눈빛이 존경과 동경으로 반짝였다. ‘소설 작가’라는 단어가 지닌 힘이 친구의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생전 처음 겪는 반응이었다. 그 작은 왜곡을 통해 나는 난생처음 인정의 달콤한 맛을 보았다.


학원을 마치고 귀가한 저녁이었다. 아빠는 식탁에 앉아 홀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빠가 “왔냐?”라고 물었다. 나는 아빠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짧게 대답만 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밥을 먹는 아빠의 모습이 왠지 불쌍하고 처연해 보였다. 아빠에게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됐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세상이 정해놓은 직업의 테두리에서 소외된 아빠를, 내가 그 경계 너머로 아예 밀어버린 것만 같았다. 멀리, 아주 멀리, 되돌아오지 못할 만큼.


문틈으로 아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평소처럼 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작업에 몰입한 등을 보니 갑자기 목구멍이 메었다.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죄책감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돌이킬 수 없는 배신을 한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친구들의 관심사는 확연히 달라졌다. 부모님의 직업보다는 좋아하는 가수, 어제 방영한 드라마, 온라인 게임과 가십거리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시험 기간에는 시험 점수나 공부 이야기만이 전부였다. 그렇게 나의 ‘아빠 직업 설명하기’ 숙제는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알게 됐다. 아빠를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었던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의 이름이나 직업으로 다 담기엔, 우리는 너무 복잡하고 다층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명사로 압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기에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그날의 거짓말은 아빠가 설명되지 않는 이 이상한 세계에서, 아빠를 세상의 틀 안에 구겨 넣으려는 서툰 시도였다.


이제는 안다. 누군가를 정의하는 것은 명함에 적힌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이 무엇에 얼마만큼 시간을 쏟았는지, 얼마만큼 마음을 다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결국 단일 명사로 포획할 수 없는 복잡함이 아빠의 본질이었다. 그렇다면 아빠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본질적인 세계를 이루고 살던 셈이다.


이전 04화아빠의 직업 ⅰ) 너희 아버지 뭐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