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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Apr 09. 2024

12. 떡만두전골, 아들 부부와의 첫 명절

  K의 아내는 K와 제주도 여행 중에 아들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일주일 뒤 구정 때 양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게 맞느냐는 물음이었다. K의 아내가 어이없어하며 답신을 보냈다.

  -용돈 주면 좋은 거지.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올레길인 7번 코스를 걷고 난 뒤 K의 아내는 마음을 바꿨다.

  “한결이한테 용돈은 주지 말고 요리를 하나 해오라고 하는 게 낫겠지?”

  아내가 호주에 가 있었던 작년 추석 때 K가 아들을 맞은 방식이었다. K는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아내에게 답해주었다.     


  아들 부부는 구정 날 열 시에 오기로 했다. K는 아홉 시경 일어나 떡만두전골을 만들 준비를 했다. 아내가 소고기로 육수부터 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K는 유튜브 선생이 알려준 레시피를 고집했다. 소고기와 배추, 팽이버섯, 떡, 만두, 냉동 곰국물을 때려 넣고 한꺼번에 끓이는 방식이었다. 떡만둣국을 먹고 싶었던 K의 아내가 투덜거렸다.

  “구정에 웬 떡만두전골이야? 차라리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떡만둣국을 내가 만들고 싶다.”

  K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커다란 웍에 재료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물을 붓고 불을 올리려다가 말고 K가 말했다.

  “열 시에 예배드리고 먹을 거니까 지금부터 끓이면 안 되겠네.”

  K는 아홉 시 삼십 분경에 불을 올리기로 마음먹으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아내 말대로 소고기를 끓여 육수를 먼저 낸 뒤 아들 부부가 도착하면 재료를 넣고 끓이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고기를 포함한 재료를 웍에 다 채워 넣고 물까지 부어 놨기 때문에 이미 지나간 버스와 같은 일이었다.    

 

  아홉 시 삼십 분에 K는 불을 올리고 떡만두전골을 끓이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재료가 들어가 있어서 이십 분쯤 지난 후에야 끓기 시작했다. 전골이 끓어오를 즈음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과 통화를 하고 난 K의 아내가 말했다.

  “한결이 아침에 소고기찜 만들다가 고추씨가 눈으로 튀었대.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 와야 될 것 같다는데.”

  응급실에 갔다 오면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은 지체될 터였다. 떡만두전골을 한번 푹 끓인 후에 불을 꺼야 될 것 같았다. 아홉 시 십오 분경 서진으로부터 한결이 눈상태가 나아져서 응급실 가지 않고 집으로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아들 부부는 예정보다 삼십 분 늦게 도착했다. 서진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머님” 하며 K의 아내와 꼭 끌어안았다. K는 인덕션의 세기를 1로 줄여 놓은 후 식탁에서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이삼십 분 정도 토론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난 뒤 아들 부부와의 첫 명절 식탁을 차렸다. 아내가 만들어 놓은 간장게장과 꼬지전과 겉절이, 고사리무침, 버섯조림, K의 떡만두전골, 아들의 소고기찜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아들과 며느리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아내가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떡만두전골이 있었기에 K는 밥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아들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간장게장이 있는데 밥이 없을 수가 있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서진이 “그냥 떡만두전골 먹으면서 간장게장 먹으면 되잖아”라며 남편을 달랬다. 아들은 “엄마가 만든 간장게장을 밥 없이 먹을 수 없다”며 집 앞 편의점으로 가서 햇반을 사 왔다.


  떡만두전골은 만두가 흐물흐물해져 있었지만 맛은 괜찮았다. K의 아내와 아들은 구정엔 근본 없는 만두전골이 아니라 떡만둣국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투덜거렸다. K와 서진은 만두는 터진 게 더 맛있는 거라면서 국물을 맛있게 떠먹었다. K가 아들의 소고기찜을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그래, 내년엔 떡만둣국을 하는 게 좋겠어. 전골은 너무 퍼져서 안 좋네.”

  K의 아내가 자신이 해 먹고 싶은 대로 만들어 먹고 싶다고 다시 말했다. 명절의 메인요리만은 놓칠 수 없었던 K가 말했다.

  “내년엔 내가 근본 있는 요리연구가의 레시피로 떡만둣국 만들어 볼게.”

  다음 해 구정의 떡만둣국은 K의 아내가 사전에 검증을 한 뒤에 남편에게 요리할 자격을 주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식탁 정리를 함께 했다. 국그릇에 밥그릇을 얹으려던 서진이 K에게 말했다.

  “집에서 한결이한테 기름기 있는 국그릇에 밥그릇을 겹쳐서 개수대에 갖다 놓았다고 한소리 들었어요, 아버님.”

  “그건 한결이가 나랑 일치하네.”

  K가 국그릇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은 뒤 밥그릇을 올린 걸 며느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나도 밥그릇에 국물이 안 닿게 하려고 이렇게 담거든.”

  주방으로 가는 K를 따라가며 서진이 말했다.

  “저희 엄마는 국그릇 바닥에 밥그를 겹치는 거 상관하지 않으셨거든요.”

  주방으로 그릇을 들고 따라온 한결이 서진에게 말했다.

  “그릇 뒷면에 기름기가 묻으면 설거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서진이가 설거지를 안 해서 이런 건 잘 모른다니까.”

  K가 아들에게 말했다.

  “원래 엄마들은 국물 닿는 거 신경 안 쓰고 겹쳐서 옮겨. 네 엄마도 그랬을걸? 다 집에서 본 대로 하는 거야.”

  K가 아들에게 “너흰 식기세척기 쓰니까 상관없이 않냐?”고 물었다. 아들은 손으로 한번 씻어야 해서 기름기가 그릇에 닿는 게 싫다고 했다. 서진이 “어젠 내가 설거지했잖아”라며 남편에게 애교있게 투덜거렸다. 아들이 K에게 “어제 서진이가 설거지 두 번 해줬어”라고 말하며 웃었다. 서진도 지지 않고 남편 자랑을 했다.

  “어제 한결이가 빨래 널고 개 줬어요.”

  K는 노동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하고 있는 아들 부부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흐뭇하게 웃으며 K는 ‘그래. 사랑은 노동이다. 노동이 사랑이고’라고 혼자 생각했다.     


  K는 아들 부부와 서진의 어머니가 만들어 보낸 식혜를 따라 마셨다. 그동안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어서 K가 살짝 놀랐다. 주방으로 다가간 K가 “여보, 이따가 내가 설거지할 건데 왜 당신이 하고 있어?”라고 물었다.

  “그냥 내가 할게.”

  아들 부부가 올 때마다 설거지를 한 자신에게 아내가 미안한 마음이 있었나보다며 K는 내버려 두었다. 내심 고맙기도 했다.


  잠시 뒤 K의 아내도 합류하여 네 식구가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한결과 서진은 명절 첫날이었던 전날 하루 종일 함께 뜻깊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몇 년 전 히트했던 드라마를 몰아보다가 코스트코에 가서 양쪽 부모님들 선물을 샀고,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온 뒤 다시 드라마를 몰아봤다고 했다.

  아들 부부는 다음날인 주일엔 또래 부부 네 명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재미있게 놀 계획이라고 했다. 한결이 방어회와 해물찜을 풍성하게 대접할 예정인 듯했다. K는 제주도의 유명한 횟집에서 모둠회를 먹으면서도 아들의 참치회가 뒤지지 않는다고 느꼈었다. 아들 부부가 교회 지인들을 초대하며 섬기는 삶을 사는 것에 K는 큰 감사를 느꼈다. K 부부보다 더 베푸는 삶을 살아주는 게 무엇보다 고마웠다.


  아들 부부는 저녁엔 예정대로 서진네 부모님 댁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서진네는 명절마다 고스톱을 하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아들이 “고스톱을 해도 시간은 좀 정해놓고 했으면 좋겠어”라며 늦게까지 하게 될까 봐 은근히 걱정을 했다.

  아들 부부는 두 시간 남짓 동안 예배를 드리고 아점을 먹고 식혜를 먹고 난 뒤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떡만두전골과 소고기찜에 꼬지전, 식혜까지 실컷 먹고 배가 너무 불렀던 K는 졸음이 몰려왔다. 그래서 아들이 일어설 채비를 하는 걸 보고 내심 반가웠다.

  “그래, 집에 가서 좀 쉬다가 처가 집에 가. 고스톱도 잘하고.”


  K 아내는 간장꽃게와 제주도에서 사온 가리비젓갈을 서진 편에 친정으로 들려 보냈다. 아들 부부는 맛있게 먹고 즐겁게 대화를 나눈 뒤 행복해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K는 바로 낮잠을 자려고 안방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만하면 두 해 전 비폭력대화 연수를 듣다가 롤모델로 삼았던 ‘대장금 시어머니’의 길을 잘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K는 곧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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