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쁨’들이 생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다

이해인 「작은 기쁨」과 영화 '4등'

by 손병일


작은 기쁨


이해인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밤에 눈을 감으며


작은 기쁨을 부르고




자꾸만 부르다 보니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나의 내면을 밝히고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내 일생 동안


작은 기쁨이 지어준


비단옷을 차려입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면서


자꾸만 웃어야지












인생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큰 것들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행복이나 놀아운 유명세, 일확천금의 복권 같은 것들이 아니다. 인생을 떠받쳐 주고 있는 것은 작고 소소한 것들이다.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이해인 시인에 따르면 ‘인생은 사랑으로 가는 먼 길’이다. 그 길은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가기 수월한 길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작은 기쁨’들이 가능한 한 많이 주어져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 작은 기쁨을 부르고 / 밤에 눈을 감으며 / 작은 기쁨을 부르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작은 기쁨을 찾아 얻고, 하루 온종일 그 기쁨에 젖어 지내다가, 밤에 눈을 감으면서 다음 날의 또 다른 기쁨을 기대하는 삶. 어린아이에겐 그런 삶이 주어져야 한다.


다행히도 내겐 그런 작은 기쁨들이 쏟아져 내리는 햇빛처럼 주어진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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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지역N문화




3학년 때 다시 신중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다. 1학년 때 살았던 집으로 다시 이사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금세 친해져 신나게 놀았다.


그해 겨울방학은 길고도 짧았다. 친구들과 하루 종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가면 벌써 나와 있는 아이들이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몸을 옹송그리며 다가가 아이들과 무슨 놀이를 할까 떠들다 보면 금세 따사로운 햇살에 몸이 따듯해졌다.


아이들과 망치기를 자주 했다. 자치기도 했고 오징어가이상을 했으며, 다방구와 술래잡기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보면 배가 고파진 아이들이 하나 둘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도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겨울엔 공사장이 쉬기 때문에 부모님도 장사를 쉬고 집에서 지내셨다.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혹은 먹고 나오다가 어느 집에 늘 크게 틀어놓았던 라디오 소리를 듣곤 했다.


“안녕하세요. 임국희입니다. 오늘은 마포구 도화동에 사시는 김연주 님의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진행자의 정답고 또랑또랑한 멘트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직 하루가 반도 더 남았다는 사실에 뿌듯한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논 시간보다 놀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후의 노는 시간은 늘 쏜살같이 지나가곤 했다. 이른 저녁이 서둘러 찾아오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따라 나도 아쉬움을 한가득 가슴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실컷 놀았지만, 놀아도 놀아도 친구들과 노는 일은 질리지가 않았다.


다음 날에도 정신없이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임국희입니다”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직 놀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부르다 보니 / 작은 기쁨들은 // 이제 큰 빛이 되어 / 나의 내면을 밝히고 / 커다란 강물이 되어 / 내 혼을 적시네




정오 근처의 시간, 임국희 아나운서의 멘트를 듣던 순간의 작은 기쁨들은 내 안에서 큰 빛이 되었다. 지구는 살아갈 가치가 있고 즐거움으로 충만한 곳이었다. 그 무수한 기쁨들이 나의 내면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신의 은총과 축복이 내 영혼과 가슴을 가득 채우며 벅차게 출렁였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무한정 주어져야 할 놀이를 박탈한 지 오래다. 우리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하며 마음껏 시간을 허비하고 탕진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작은 기쁨’들은 너무 멀리에 있다. 인생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은 먼 미래에 속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미래의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오늘의 기쁨은 끝없이 유예하는 삶은 어른에게도 너무 가혹한 삶이다. 영화 <4등>은 한국 사회 부모의 가혹한 양육 방식과 무자비한 폭력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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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왓챠




<4등>의 주인공 준호는 수영을 정말 좋아하는 열두 살 아이다. 수영을 사랑하는 마음은 넘치는데 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다. 시합만 나가면 만년 4등을 하는 것이다. 극성스러운 엄마는 준호를 이렇게 질타한다.


“너 그렇게 평생 4등으로 살래?”


엄마는 준호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극약처방을 내린다. 어렵게 소개받아 알게 된 전 국가대표 코치를 찾아간다. ‘지도력이 뛰어난’ 것으로 소문난 광수 코치는 대회 1등은 물론 대학까지 골라서 가게 해주겠다고 준호 엄마에게 큰소리를 친다. 그러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연습 기간 동안 부모가 수영장으로 찾아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준호 엄마는 결연히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 이미 코치의 비기(祕技)가 ‘매’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치 광수는 “지금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라고 말하는 체벌신봉자다.


새 코치와 함께 출전한 대회에서 준호는 드디어 입상을 하게 된다. 그것도 불과 0.02초밖에 뒤지지 않은 1등 같은 2등이다. 준호가 은메달을 목에 건 날 준호네 집은 축제 분위기가 된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동생 기호가 부모님 몰래 형에게 묻는다.


“정말 맞고 하니까 잘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형?”


준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준호의 바지 속 엉덩이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멍투성이 엉덩이와 은메달을 맞바꾼 셈이었다. 얼마 뒤 아들이 맞으며 수영을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며 아내를 다그친다. 어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결연한 목소리로 말한다.


“난 준호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하지만 체벌은 준호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준호는 맞으면서라도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며 받는 스트레스를 동생을 때리는 것으로 푼다. 자기도 모르게 약한 동생에게 폭력을 대물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준호 아버지는 예전에 유명 고등학교 수영부의 폭력을 고발하기도 했던 기자이다. 폭력에 민감한 아버지는 광수 코치를 해고하고 준호가 수영을 그만두게 한다. 하지만 준호는 수영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제 준호는 혼자서 재미를 위해 수영을 즐기며 온전히 몰입한다. 비로소 수영이 준호에게 ‘작은 기쁨’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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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왓챠




내 일생 동안 / 작은 기쁨이 지어준 / 비단옷을 차려입고 / 어디든지 가고 싶어 /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어린 시절의 작은 기쁨들은 일생 동안 멋지게 차려입을 수 있는 ‘비단옷’을 만들어준다. 어디든지 가서 꿈을 펼치게 하고 누구라도 만나서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게 만드는 비단옷이다. 내가 정말로 친구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좋아하게 만들어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겨울의 사당동 골목이었다.




조상조 선생님과 함께했던 잠원초등학교 4학년 말에 사당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사당초에서의 5학년 생활을 녹록치 않았다. 5학년 싸움짱과 맞짱을 뜰 뻔하기도 했고, 6학년 짱에게 얻어맞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사당동 집 근처 골목에서만큼은 ‘우리들의 천국’같은 생활을 누렸다. 아, 그 골목…!


당시 나는 저녁마다 골목에서 동네 꼬마들과 어울려 놀았다. 지금은 어떻게 하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놀이들―다방구, 땅따먹기, 술래잡기―을 하면서 나는 시간을 잃어버린 아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논 것은 아니었다. 동네 조무래기 중에는 잘 삐치고 다투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이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5학년이 두 명이었다. 성격이 참 좋았던 여자애와 나였다. 나는 꼬맹이들의 싸움을 중재하는 일에 영 젬병이었다. 처음엔 잘 타이르다가도 반복해서 다투는 모습을 보면 속에 부아가 치밀었다. 솔직히 나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로서는 꼬마들을 수습해서 다시 규칙을 세우고 놀이를 정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여자애는 달랐다. 부드럽게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놀이에 참여시키기도 했고, 때로는 단호하게 규칙을 적용하기도 하면서 꼬마들을 잘 이끌어갔다. 그럴 때마다 그 애가 꼭 엄마 같았다. 한없이 푸근하고 자애로웠던 그 아이 덕분에 우리들의 골목 세상은 한 번도 파탄에 이르지 않은 채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정신없이 놀다 보면 골목 여기저기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났다. 구수하고 안온한 일상이 밥 냄새에 스며있었다. 그 지저분하고 좁디좁은 골목은 우리에게 천국이었다.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즈음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에덴의 목소리였다.


이젠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여자애는 천사였다. 우리 평범한 인간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와 악, 욕망과 절망 들이 그 천사가 관여하면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 즐겁다고 말하면서 / 자꾸만 웃어야지




그 골목에서 내 마음이 꼭 그랬다. 세상을 향해 ‘고마워, 고마워’, ‘즐거워, 즐거워’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자꾸만 자꾸만 웃음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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