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애초에 그것을 바라고 도망간 것이 아니기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어."라는 말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 아마, 사탐 인강으로 유명한 이지영 선생님 영상이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 하셨던 말씀을 정확히 옮기자면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였다.
현실 속 문제를 잠깐 피할 순 있어도 결국은 마주하고 겪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맞는 말씀이다. 문제를 대하는 여러 모습이 있지만 적어도 회피는 매번 선택하기에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회피는 일종의 진통제다. 통증이 너무 심할 때 잠깐 통증을 잊게 해 줘서 회복되기까지 고통스럽지 않게 해 주어 제정신을 유지하게 해 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통증의 원인을 낫게 해주진 않는다. 그러니 부담스럽고 고통스럽더라도 너무 멀지 않은 시점에 힘들었던 시점을 한 번쯤은 보고 넘어가는 건 앞으로 나아갈 때 굉장히 의미 있다.
그렇다면 도망치면 안 되는 걸까? 글쎄, 도망이야 말로 진짜 찐 실력이지 않나, 싶다. 어릴 적 읽었던 삼국지를 더듬어 떠올려보면, 후퇴는 전진보다도 더 까다로웠다. 뒤꽁무니 빼야 할 때를 알고 슬금슬금 빼던지 해야지 멋모르고 뻗대면서 전진만 했다가 퇴로가 막혀 폭망 하면 병력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니 도망을 쳐야 할 때 발을 잘 빼는 것이야 말로 최상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후퇴는 쓰리지만 일단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고 봐야 또 전력을 보강해서 돌격, 앞으로를 또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을지라도 괜찮다. 한숨 정도만 돌려도 그게 어디냔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도망의 역할은 충분하다. 뭘 또 거창하게 낙원이나 천국까지 바라? 그런 얼토당토않는 건 애당초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펴고 누군가가 날 부를 때 짜증보다는 웃으면서 대할 수 있는 여유, 주변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 정도만 갖추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감히 유의미한 도망이라고 불러보고 싶다.
또한 진짜 '도망'인지 혹은 '전환'인지, '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그 '도망' 이후에 벌어진 일로 달라진다고 본다. 했던 일로 다시 돌아오면 쉼이 될 것이고,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전환점이 될 것이고, 도망간 곳에서 그전보다 자신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전화위복이자 나아가 금의환향까지도 꿈꿔볼 수 있는 거다.
예전에, 베이징에 교환학생을 갔다가 북경대학교 유학생 H군과 같이 과제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에게, "넌 어떻게 북경으로 유학을 오게 됐어?"라고 묻자 그 친구는
"저는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적응을 잘 못해서, 그냥 도피하듯이 왔어요."
"우와, 힘들었을 텐데 멋지다."
"아, 뭐, 멋질 것까진 없고요."
그 애는 쑥스럽다는 듯 말을 급격히 줄였다.
도피해서 왔는데, 북경대학교에 입학했다니, 그때 답도 없이 한국에서 엉덩이 뭉개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물론, 그렇지 않았대도 그 아이가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너끈히 해낼 멋진 어른으로 자라날 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학에서 만났던 후배도 자퇴 후, 검정고시로 대학에 왔지만 이후 대학원도 가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학위를 따서 잘 지내고 있다.
아, 쓰다 보니 역시 내 코가 석자다. 나의 도망이 어디로 이어질지 너무 궁금하다. 그러나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행을 다녀오고, 글을 써서 올리고, 주기적으로 올리려고 노력하고 가끔 가사를 쓰고, 무엇이 나와 더 싱크를 맞출 수 있는 일인지 찾는 이 시간이 분명 유의미한 도망이 될 거란 사실이다. 조금 더 그럴싸한 용어를 써서 말하자면 갭이어 정도라고 해두자.
(*브런치에 올려본 첫 가사 - Purple night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무도 관심 없으시겠지만, 저는 이런 에세이를 주로 목요일에 올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도망간 곳에 낙원은 없다. 그러나 나를 건사하고 다시 무언가를 해볼 마음이 드는 것만으로도 도망은 충분히 의미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유의미한 도망을 쳤던 적이 있나요? 궁금해요! 있다면, 댓글로 여러분만의 도망 꿀팁도 마구마구 공유해 주세요!
(사진 출처 : 모래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