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하게 구석구석 한국 전통미를 은근히 들어내는 서까래와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물고기풍경,
아침이면 창문을 활짝 열고, 마당과 거실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이곳에서
서울에 살고 있는 나와, 서울에 방문한 이방인들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너무나 다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하지만, 우린 이상하게도 닮아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혼자 여행온 사람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도미토리 숙소에 주로 모이는 젊고 사교적이며 밤새 술잔을 짠하며 공용공간에서 파티를 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미토리 치고 개인 공간이 조금 더 보장되는 만큼, 가격대가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방문자는 직장인이었다.
특히,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리모트 워커.
특이한 점은 이렇게 혼자 온 손님이 많은 공간에
테이블이 다 둘러둘러 같이 앉아야 하는 큰 테이블이라는 점이었다.
직장이 많은 지역의 스타벅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문 앞 또는 벽을 마주 본, 한 줄로 길게 늘어뜨린 1인석 자리를 포기하고, 둥근 테이블과 소파, 그리고 4인 이상이 앉는 긴 작업 테이블을 두었다.
그리고 숙소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을 때가 되면
이 큰 테이블을 한 명씩 차지하기 시작한다.
9시쯤이 되어, 뒤늦게 내려온 늦잠쟁이들이 두리번두리번 자리를 찾으면,
유난히 얼굴이 평온하고 친근해 보이는 어머니가 옆자리 의자를 꺼내며 여기 앉아도 된다고 한다.
내가 먼저 큰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먹고 있으면,
중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금발머리 여자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귀찮게 해서 미안한데, 같이 앉아도 되겠냐고 한다.
등뒤에 가방 대신 기타를 맨 키 큰 덴마크 남자가 어제 작은 가게에서 산 복슬복슬한 곰돌이 키링을 보여주며 귀엽지 않냐고 자랑한다.
그렇다고 해서, 같이 하루를 보내거나, 여행을 가지 않지만,
한 테이블을 공유하며 얕기도 깊기도 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한 번쯤 밥을 같이 먹기도 한다.
난 담에 머무르면서, 내가 높이 쌓아 올렸던 담을 넘어, 이 이방인들에게 갈매기살을 구워주었고, 김치전에 청하를 축였으며, 그리고 오늘 마지막 날에는 지난 일주일 내내 "tourist"로 한국의 경복궁, 남산타워를 돌았던 그 금발머리 여자 대학원생과 함께 진짜 한국인들이 가는 역삼 포스코타워의 테라로사를 간다.
그리고 그렇게 유사한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점점 커진 브랜드는
그다음 챌린지를 맞닥 뜨리게 된다.
타깃군이 확장되어도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내가 혼자 비밀리에 좋아하던 맛집이, 어느 순간 유명해져서 다시 방문하니 그 맛과 그 분위기 나지 않았던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단골손님을 잃게 되고, 그 단골손님들이 쌓아준 유명세도 결국 잃게 된다.
난 이번 6월에 막 오픈한 한옥호텔 담이 이 챌린지를 잘 넘어가길 바란다.
더 다양한 연령대, 국적의,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 담 안에서 머물러도
담 답게, 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그리고 담 밖에서는 다소 달랐던 사람들도, 이 안에서 만큼은, 한옥호텔 담이 추구하는 가치들로 쌓아올린 이 테두리 안에서,안온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