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같은 여자
사장이 차문을 열며 인사했다.
“어려운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실 안은 따뜻했다.
내가 온다 하니 히터를 미리 더 켜둔 모양이다.
잠시 후 비서가 녹차를 내왔다.
나는 두 사장을 번갈아 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적자, 흑자 얘긴 하지 말고요.
호텔 두 곳, 각각 얼마 정도 가치가 있습니까?”
한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두 곳 합치면 대략 2,500억 원 정도로 봅니다.”
“현재 적자 상황은요?”
“매달 두 곳 합쳐 30억 정도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제가 2,500억에 인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대신 두 분은 그대로 남아서 일하셔야 합니다.”
“네, 영광입니다. 본사에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곧 법무팀이 들어와 계약이 진행됐다.
“이분이 앞으로 호텔 4개 총괄본부장입니다.
잘 협조해 주세요. 구조조정은 없습니다.”
점심은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총괄본부장과 은정은 남겨두고, 나는 호텔을 나섰다.
이제 이 섬나라의 대형 호텔 네 곳이 모두 내 손에 들어왔다.
제주도에서 내가 가장 큰 사업을 하는 여자가 되었다.
한달후에......
총괄본부장은 매일 네 개 호텔과 골프장을 은정과 함께 돌았다.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나도 합류했다.
호텔과 펜션을 묶어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모든 간판은 ‘상희호텔’로 바꿨다.
다행히 겨울인데도 예약률이 높았다.
2월의 마지막 눈이 내렸다.
이번 눈이 녹으면, 곧 파란 새싹들이 올라오겠지.
저녁이 되자 비가 내렸다.
그 비에 눈은 모두 녹아버렸다.
이제 진짜 봄이 오는구나.
그날은 팀장 부인과 함께 소주를 나눴다.
팀장은 어머니가 입원하셔서 며칠 휴가를 냈다.
우리는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사이, 그런 편한 사이였다.
그녀는 한국무용을 해서 그런지 군살이 없었다.
운동은 따로 하지 않고, 나처럼 걷는 게 전부라 했다.
그래도 몸매는 타고났다.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회장님, 외롭지 않으세요?”
그러다 팀장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 친구 중에 사별하고 아이 둘 키우는 사람이 있어요. 중학교 국어 선생이에요.”
“한번 보고 싶네요.”
“결혼 생각은…?”
“없어요. 그냥 사람으로 보고 싶어요.”
“전화해봐. 오라고 해. 술 한잔하자고.”
그녀가 전화를 걸었다.
“00씨, 나 00엄마야. 뭐해요? 우리 술 한잔할래요?”
팀장의 친구는 30분 뒤에 온다고 했다.
나는 괜히 마음이 분주해졌다.
“나 화장해야 돼?”
“회장님, 이미 예쁘세요.”
“이런 당황한 모습, 처음 봐요.”
“야, 셋이 먹긴 좀 그렇다. 경호원들 불러.”
“혹시 내가 덮칠지도 모르잖아?”
부인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경호원들에게 회랑 생고기를 더 사오라 했다.
그래도 여자인데, 립스틱을 다시 바르고 거울을 봤다.
팀장 친구라면 나보다 한참 어리겠지.
괜히 설렜다.
잠시 후, 국어 선생이 경호원들과 함께 들어왔다.
키가 크고 인상이 좋았다.
악수를 나누며 웃었다.
“반갑습니다. 이리 오실 줄 몰랐어요.”
식탁 위에는 회와 생고기가 차려졌다.
“저는 이 호텔 사장입니다. 선생님 소개 좀 해주실래요?”
“00중학교에서 국어 가르친 지 15년 됐습니다.
아이 둘 키우고 있고, 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차는요?”
“중형차요. 취미는 등산, 낚시입니다.”
“저도 낚시 좋아해요. 예전 모슬포 살 때 혼자 자주 갔어요.”
분위기는 금세 따뜻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일 저녁, 저랑 식사하실래요?”
“제가 영광입니다.”
핸드폰 번호를 건네주며 말했다.
“퇴근하고 저 데리러 오세요.”
모두 헤어지고 방에 돌아와 누웠다.
오랜만에 마음이 설렜다.
그가 근무하는 학교는 호텔에서 차로 20분 거리.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밤은, 참 행복하다.
다음날, 호텔 미팅을 마친 뒤 섬의 여러 지점을 돌았다.
카지노에 들렀다가 서귀포에서 물회를 먹었다.
오후 세 시엔 제주호텔을 들르고, 네 시가 되니 한가해졌다.
왈츠 학원에 잠시 들렀다.
여자 원장이 필라테스 복장으로 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몸의 선은 예술이었다.
함께 30분 정도 춤을 추니 온몸에 엔돌핀이 돌았다.
학원을 나서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시에 퇴근하세요?”
“5시요.”
“학교 앞에서 기다릴게요.”
교문 앞에서 기다린 지 10분쯤 지났을까,
그가 차를 몰고 나왔다.
“경호차가 따라올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네, 괜찮아요.”
그의 차를 타고 바닷가로 향했다.
조용하고 평범한 회집에 멈췄다.
“여기 20년 단골이에요.”
“그렇게 오래됐어요?”
“부모님도 자주 오세요.”
식당 사장이 인사했다.
“선생님, 오셨군요.”
“귀한 분을 모셨네요.”
사장은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청했다.
웃으며 해주었다.
모듬회를 시키고,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알아서 먹어. 기사만 술 마시지 말고.”
그와 마주 앉아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그가 회 한 점을 내게 싸주었고,
나도 그에게 한 점을 건넸다.
작은 행동 하나가 그렇게 따뜻했다.
식사 후엔 옆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간은 어느새 밤 9시.
주차장으로 나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나… 한 번만 안아줄 수 있어요?”
그가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조금만 더 있어요.”
그 품이 너무 따뜻했다.
그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오늘, 정말 행복했어요.
우리 인연이 된다면… 또 만나요.”
경호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랑이란 게,
이런 느낌이구나.
“회장님, 회 한 접시 포장해 왔습니다.”
“그래, 가서 한 잔 더 하자.”
집에 도착하니, 팀장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네 명이 둘러앉아 소주를 각자 한 병씩 나눠 마셨다.
잔이 오가며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내 마음은 점점 고요해졌다.
잠시 후,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자,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따뜻했던 손길, 조심스러웠던 눈빛,
그리고 마지막 포옹의 온기까지.
‘인연은 여기까지구나.’
그 이상은 가지 않기로 했다.
결혼할 생각도 없고,
이제는 그 사람의 마음만 다치게 할 테니까.
그때 문득 오래전 그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핸드폰 오빠가 나에게 했던 말.
“너는 마약이야.
한 번 맞으면 헤어날 수 없는,
중독성이 강한 여자야.”
그 말은 아마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식당 오빠도, 전 남편도,
모두 같은 말을 했었다.
나를 경험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도 안다.
나는 정말, 마약 같은 여자라는 것을.
그 생각을 끝으로
서서히 눈이 감겼다.
잔잔한 숨결 속에서,
오늘은 꼭… 좋은 꿈을 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