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느낌 없는 상태
아무느낌없는 상태로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니 다른날하고 틀리게 기분이 좋아졌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꾸준한 약 복용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병실 환자들의 얼굴도 보이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나서 그들의 얼굴을 숨어서 지켜보듯 보았다.
내앞에 여자는 명찰을 보니 35살이다.
가끔 두 아이와 통화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남편도 영상통화를 하는 것을 보았다.
산후 우울증 비슷한 것 같다.
다른 두여자는 39세, 41세이다.
여기는 왠지 심한 상태로 보인다.
41세 여자는 오른쪽 손목에 자해 자국이 선명하다.
그러나 특별히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여기 모두 다른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정신병원이기 때문이다.
1층에 커피숖이 있다.
가끔 혼자 내려가서 커피 마시는 것이 유일한 새로운 일이다.
5시이후에는 병원에는 일반인은 없다.
면회가 끝나는 시간이다.
일주일을 있으면서 느낀 것은 지루하거나,
따분하거나 이런거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간호사는 나와같이 산책을 3번을 해주었다.
수면주사약 때문인지 잠은 8시간 넘게 잔다.
그래도 눈을 뜨면 피곤하다.
아니 무기력하다.
2층 병동 끝에는 작은 정원같은 테라스가 있다.
하루에 커피는 두잔 마신다.
그나마 잠이 잘와서 마시는 것이다.
이리 기분이 좋아졌다가 아무일도 없는데 갑자기 기분이 내려 않는다.
이것이 내인생의 반복의 일상이였다.
오늘 처음 가방에 있던 담배 하나를 들고 1층 흡연실로 내려왔다.
남자,여자 흡연실이 따로 있다.
생각보다 깨끗하다. 아니 카페같은 느낌의 흡연실이다.
여기는 정신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 담배는 크게 제어하지는 않는다.
라이타에 불을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급 깊이 빨아들이니
연기가 내 몸속의 내장 곳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고통이다.
그렇게 3번을 들이마시고 담뱃불을 꺼다.
병실에 들어와서 이를 닦고 침대에 누우니 회진시간이다.
의사선생님 한분과 간호사 두명이 들어와왔다.
간호사 한명은 나와 산책하는 여자이다.
본인 쉬는 시간에 나와 산책해주는 것이다.
“윤세하씨 기분어때요.”
“딱히.....”
약 잘 드시고 내일 부터는 헬스장이나 독서실 산책 매일 하나씩해보셔요,
프로그램도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네”
그들이 돌아가고 커튼을 쳤다.
혼자 있고 싶었다.
9시가 되면 이제는 자연스레 잠이 온다.
그리고 5시면 눈이 떠진다.
유리창 밖으로 봄비가 내린다.
언제까지 병원에 있어야 하나.?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항상 이런식이다.
기분이 좋아 졌다가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또 우울해진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눈을 뜨니 우울하다. 전혀 행복하지가 않다.
수천,수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오늘 엄마,아빠가 면회를 오시는 날이다.
샤워를 하고 드라이로 머리카락을 말렸다.
긴생머리인데 엄마에게 가위로 잘라주라고 하였다.
9시30분에 오셨다.
봄이라 공원 벤치에 않아서 쥬스를 마시며 나를 바라보는 눈이 두분이....
그리고 단정하게 단발머리로 엄마가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다.
“우리 딸 이쁘다.”
아버지도 “세하가 제일 이쁘다.”
딱히 부모님하고 할말은 없다.
이제 병원에 입원해는데 이제와서 새삼스레 더 할말이 있을까.?
부모님은 1968년생 동갑이고 대학동기이다.
하시는 일운 두분 모두 디자인관련 일을 하신다.
엄마는 여자들옷 만드는 회사이고,
아버지는 여자 핸드백 만드는 회사이다.
부모님이 강요는 없었지만 자연스레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리고 5년을 회사에서 근무했다.
두분은 회사에서 인정 받아서,
높은 직급에 계시며 엄마가 연봉이 더 많은 걸로 알고 있다.
1-2년안에 정년을 하실예정이다.
우리 가정은 크게 금전적으로 어려움은 없었다.
두분이 돈도 잘 버시고, 시골 할아버지 유산도 아버지가 상속 받았다.
팔면 한강보이는 아파트는 살수 있다고 항상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지금도 한강보이는 아파트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전에 다니던 회사직원들도 내가 00아파트 산다고 하면 부러워 한다.
상당히 비싼 47평 아파트이다.
부모님은 회사가 각자 다르다.
그리고 해외출장이 많다.
특히 유럽 미국쪽으로 많이 가신다.
중학교,고등학교때는 방과후 활동내고 출장을 따라간일이 여러번 있다.
그래서 내가 디자인을 전공한 계기가 된것일수도 있다.
특히 프랑스를 두 번 가는데 인상적인 나라였다.
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할머니와 시골에서 살았다.
경기도 안산의 시골이였다.
차로 20분만 가면 안산시내이고, 40분이면 서울특별시이다.
할머니는 텃밭가꾸는 정도의 농사 일만 하셨다.
우리 먹을 농사만 하신 것이다.
논,밭은 전부 임대를 주었다.
부모님은 두분다 항상 일이 많으셨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나를 시골 할머니 집에서 자라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말이면 항상 나를 만나러 왔다.
옷이든 머든 항상 좋은 것으로 사주셨다.
5학년 2학기에 서울로 전학을 왔다.
지금살고 있는 한강보이는 아파트로 말이다.
17년전일이다.
내가 성인이 될 때 까지 할머니와 살았으면 좋아을것이라는 생각도 가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