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방황하는 사춘기 시절
5학년 여름방학에 서울로 전학을 왔다.
지금 보이는 한강 아파트를 부모님이 분양받으셨다.
부모님은 언젠가부터 아파트 분양받으면 같이 살자고 자주 말씀하셨다.
나름 상당히 부자 동네이다.
그해 무더운 7월에 서울로 와서 정착을 시작했다.
할머니도 오시고, 3일을 가족 넷이 같이 지냈다.
엄마, 아빠는 각자 일주일씩 휴가를 내서 나와 같은 생활을 하였다.
15일을 이렇게 지내니 동네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특히 예쁜 옷과 신발을 많이 사주셨다.
그리고 책가방과 학용품도 새것으로 사주시고,
내 방 안의 책상과 침대를 가장 좋은 것으로 사주셨다.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었다.
가족이 함께한다는 것은 신이 주신 축복이다.
주말이면 안산 할머니 댁에 같이 가곤 하였다.
9월, 5학년 2학기 개학이 되었다.
학교는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5학년 3반에 편입되었다.
30명 정도였는데 친구들도 잘해주고 딱히 불편함도 애로사항도 없었다.
학교 공부도 나름 잘했다.
학교가 끝나면 피아노 학원과 영어 학원 두 곳을 다녔다.
집에 들렀다가 간식 먹고 학원 끝나고 오면 저녁 7시나 되었다.
그렇게 9월도 즐겁게 지나가고 있었다.
대체로 부모님도 7시나 8시에는 귀가하셨다.
8시에는 티타임이 이루어졌다. 30분, 길게는 한 시간 동안 학교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의 내가 이야기를 하고, 부모님은 들어주시는 편이었다.
그렇게 서울 생활은 나에게 활기를 주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5학년 겨울방학이 되는 12월이 되었다.
연말이라 부모님은 나름 바쁘셨다.
두 분 다 술 드시고 오는 날이 많았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문제되지는 않았다.
할머니도 가끔 안산에서 버스 타고 오신다.
오시면 이틀 정도 나와 같이 주무시고 가신다.
12월에는 더 자주 오셨다. 부모님이 부탁하신 모양이다.
6학년 3월이 되었다.
이제는 학교도 새로 반편성을 하고 새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5학년에는 중간에 전학을 와서 반토막 같은 친구 느낌이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가 큰 편이라 친구들이 많았다.
대부분 다른 곳에서 이사 온 친구들이다.
사춘기가 오는 애들도 보이기는 하는데,
나는 특별히 아직까지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몇 달 뒤 생리가 시작되었다.
작았던 가슴이 커지고 키도 많이 자라났다.
몸이 성숙해졌다.
나는 자연스레 다 받아들였다.
6학년 2학기에는 처음으로 반 남자친구에게 프로포즈도 받았다.
남자친구와 같이 빵집도 가고 즐겁게 지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같이 살고 있다.
오다가다가 공원에서 앉아서 놀고 있으면,
남자친구 엄마가 웃으면서 손 흔들어 주고 가신다.
오래전에 여기는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엄마 혼자 강남에서 식당 사업을 크게 하신다.
점심때 나가셨다가 저녁때 아들 밥 준비해 주고 또 출근하신다.
10시나 11시쯤 귀가하신다. 술 안 드시는 날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집에서 저녁을 자주 먹었다.
부모님도 강남 식당에서 몇 번 식사를 했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그렇게 6학년 12월이 되었다.
연말이라 양쪽 부모님이 다 바쁘시다.
남자친구와는 치킨을 주문해서 먹고, 식당 가서 먹고,
강남 식당에도 가끔 가서 먹었다.
12월은 이렇게 매일 붙어 있었다.
아직 어려서 손도 잡을 줄 몰랐다.
그래도 손은 가끔 내가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일본으로 같이 일주일 출장을 떠났다.
신은 우리들의 편이었다.
남자의 엄마도 하루 여행을 간 것이다.
친구 말로는 애인하고 같이 여행 갔다고 한다.
둘이서 친구 집에서 치킨 시켜 먹고 맥주도 처음 그날 같이 마셨다.
그날 처음으로 남자와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잤다.
둘 다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안고 잠만 잤다.
키스도 할 줄 몰랐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신혼부부처럼 더 가까워졌다.
내가 밥도 해주고 국도 만들어 주었다.
다음 날 친구 엄마가 와서 나의 행동을 보더니,
“너희들 같이 자니?” 하고 물었다.
나는 쑥스러워서 “저 집에 갈게요…” 하고 말했다.
며칠은 남자친구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서 같이 놀았다.
나는 집 근처 중학교로 배정받았고,
남자친구는 차로 20분 거리의 중학교로 배정받았다.
그렇게 각자 3월에 중학교에 등교하였다.
서로가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고 두 달은 만나지 못했다.
서로 문자로만 안부를 물었다.
같은 아파트 살면서도 얼굴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연애를 할 수 있겠는가?
공원에서 보자고 문자를 했다.
직접적으로 물었다.
“너 여자친구 생겼니?”
“응.”
내가 한 번 안아주며 “그래, 잘 지내라.”
그렇게 집으로 와서 며칠을 울다가 정리를 하였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키도 더 커지고 가슴도 더 커졌다.
나이는 어리지만 몸만 여인이 된 것이다.
크게 일탈하지 않고 학교 공부도 상위권이고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던 날, 할머니가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길면 두 달”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밤새 울었다.
그렇게 내가 중학교 3학년 8월의 늦은 여름날,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한 달 가까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는 것을 알기에 받아들였다.
부모님도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환하게 기뻐하셨다.
그리고 9월과 12월에 프랑스와 미국 부모님 출장에 동행하였다.
중학생이 된 이후 다섯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지금까지의 삶은 행복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집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의
남녀 공학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