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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믈리에 Oct 04. 2022

연애, 사랑하겠노라 내리는 결단

이번 주, 나누미 떡볶이에서 데이트 어떠세요



'사귀자!'

'우리 진지하게 만나볼까요?'

'너를 좋아해!'

'우리 무슨 사이예요?'

'나랑 사귈래요?'


<연애의 시작>

어떤 말로 청약을 하였든, 승낙과 함께 연애가 시작된다. 말로만 들어도 뭔가 떠올리게 되고 두근거리게 만드는 연애. 누군가에게는 연애가 그 자체로 인생의 전부인 반면, 누군가에겐 취미와도 같은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결혼으로 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그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든, 길게 이어지든 짧게 이어지든, 연애는 서로에 대한 어떠한 결단이다. 연애를 시작하는 두 인격체는 연인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통일체를 이루고 삶의 양식과 형태에 관하여 근본적인 결단을 내린다. 서로 참아주기로, 기다리기로, 친절하기로,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성을 내지 않고,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어 내기로, 그렇게, 사랑하기로 결단한다.


<연인이란 통일체를 만드는 이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사이렌은 지중해의 한 섬에 살면서 감미로운 노래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하여 잡아먹거나 난파시켰다. 그 옆을 항해해야 했던 오디세우스는 밀랍으로 선원들의 귀를 막고 자신의 몸을 배에 묶어 섬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두 인격체는 그 정치적 통일체 안에서 구속받을 뿐 거기서 한 발 짝만 벗어나도 자유롭다. 유혹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하지만 모든 약속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린다. 서로에게 몸을 묶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연애라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그 결단으로 만들어진 연인이라는 통일체를 조심해서 잘 가꾸어 나간다. 연애는 국가의 법률이나 가족과 지인들의 인증으로 도움을 받는 결혼과 달리 오직 두 인격체의 힘과 의지로 유지된다. 이를 위해 둘 만의--셋 이상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옛날 사람이라 지금의 논의에서는 배제한다--법률을 만든다. 정조의무라든가 부양의무를 규정한다. 그에 따르는 세세한 규칙도 만든다. 자주 연락하기로, 주 몇 회 이상은 만나기로, 어떤 사람들은 만나지 않기로, 어떤 일들은 하지 않기로 정한다. 모든 내용을 다 규정할 수 없고 모든 원칙에는 예외가 있고는 하니,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을 거쳐 법률은 수없이 제정되고 개정된다.


<연애의 종료>

연애의 종료는 어느 한쪽이 또는 양쪽이 종료를 원할 때 일어난다. 어떤 합의가 필요하지 않다. 연애 안에서는 알게 모르게 권력관계가 존재하는지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덜 사랑하는 사람보다 약자이다. 보통 덜 사랑하는 사람이 손을 놓는 순간 연애는 종료된다. 강자가 뿌리치는 손을 약자는 어찌할 수 없다. 어떤 연애는 헤어짐의 절차에 대한 합의를 해두기도 하고, 사회상규는 최소한의 종료 절차를 권하지만 이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덜 사랑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연애 안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고, 그가 종료를 결정한 순간 연애는 존속하기 어렵다. 약자가 손을 놓는다면? 이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손을 놓는 순간 그는 누구보다 더 강해지니까. 그런데 보통 이러한 연애의 종료는 '사랑하지 않음', 즉 사랑의 부존재에 기인하기보단 사랑의 부족에 기인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을 만큼 미워하고 조금도 사랑하지 않아서 연애가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율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보통 두 사람은 여전히 사랑한다. 다만 그 사랑이 연애를 더 이어나가기엔 부족하기 때문에 연애가 종료되는 것이다.


<연애를 둘러싼 환경>

누군가는 말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살기 어려워져 가니까 살아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자원고갈,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 등으로 우리 삶의 터전이 점점 척박해지는 것처럼 연애를 둘러싼 환경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위태로워진다. 이 통일체의 외부에서 내부로 침투하는 사이렌의 유혹은 점차 거세질 뿐만 아니라 통일체 내부에서도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실망, 싫증, 권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건강 등 좋게든 나쁘게든 다양한 이슈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연애는 계속해서 도전받는다. 우리의 몸을 배에 묶은 노끈은 점점 낡아가서 끊어지려 하고, 귀를 막은 밀랍은 바스러져서 조금씩 떨어진다. 안타깝게도, 연애를 위협하는 사건들은 어느 한 사람의 건강이나 금전 상황 등이 악화된다든가 하는 나쁜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지만 한 사람의 외모나 금전 상황이 개선되는 상황 역시 연애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연애를 둘러싼 환경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면 악화되지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연애의 헌법>

연애를 둘러싼 환경은 점점 더 위태로워지기에 연애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여전한 사랑으로 부족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 기존보다 더 사랑해야만 한다. 그래서 연애는 어떠한 결단이어야 한다. '지금 사랑하지만 앞으로도 사랑하겠노라! 가급적 더 사랑하겠노라! 더 존중하겠노라! 더 참고 더 배려하겠노라!' 그렇다. 연애는 지금 이 순간의 사랑만을 이유로 결단해선 아니 되고, 지금의 사랑이 영원할 것을 맹세해서도 아니 된다. 연애는 지금을 넘어 앞으로 더 사랑하겠노라 내리는 결단이다. 계속해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악화되고 우릴 흔들지라도 더 사랑해서 극복하겠다는 결단이다. 세월이 흘러 서로의 생명력이 시들어가고 객관적인 매력도 감소하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더라도 더 사랑하겠노라. 더 수행하고 단련해서 힘차고 강인하게 당신을 더 사랑하겠노라. 그래, 이게 연애가 가지는 유일하면서도 절대 흔들려서는 아니 되는 헌법이다.

'앞으로', '더', '사랑하겠노라'


<연애의 무모함과 거룩함>

연애의 시작이 어떤 것이든, 연애의 목적이 어떤 것이든 간에 연애가 지극히 행복한 일이긴 한가보다. 그래서 이런 무모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우리 삶에 이렇게 무모하고 과격한 결단이 어디 또 있나?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비할 바가 아니다. 하늘의 별도 따주겠다는 관용구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만큼 연애하자는 말은 그 자체로 충분히 무모하고 허황된 청약이다. 종교가 과학에 자리를 내주고 신비와 미지가 사라져 가는 오늘날, 연애만한 판타지가 어디 있을까. 그러니까 더 매력적이다. 오늘날 인류에게 남겨진 무모하지만 신비롭고 거룩한 도전 그것이 연애가 아닐까. 연애, 그 거룩함을 떠올리면, 어디선가 스타워즈의 메인타이틀 테마가 울려 퍼지는 듯하고, 화면 위에서 원근감 있게 내려오는 멋드러진 노란 자막이 연상되지 아니하는가.


"오존층은 얇아져가고 자외선은 심해지고 미세먼지는 몰아치고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방사능이 넘실대며 음식엔 미세 플라스틱과 환경호르몬이 빽빽하게 자리 잡은 이 풍진 세상 속에서, 나이는 먹어가고 허리는 굽어가며 주름은 깊어가고 혈관에는 계속 기름이 껴 우리 생명의 불꽃이 점점 더 작아져가는 와중에, 수많은 이성들이 나를 유혹하고 가끔은 동성들도 유혹하고 나에게 배신을 종용할지라도, 나를 대하는 당신의 짜증과 싫증이 늘어갈지라도,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방해를 받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고, 아침보다 저녁에, 오늘보다 내일에, 내일보다 모레에, 내년보다 내후년에 당신을 더 사랑하겠습니다."


<보론: 연애하자>

우리 모두 연애하자.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날리자. 이루어지지 않는 꿈에 도전하자. 그리고 가급적 꿈을 이뤄보자. 인류에게 허락된 이 역사 깊고 거룩한 판타지에 도전하자. 기혼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다른 사람 찾으란 건 아니다). 결혼과 연애 사이에 교집합이 존재하는지, 존재할 수 있는지, 존재해야만 하는지는 어려운 주제이지만, 감히 제안하거늘 가족끼리 왜 이래 하지 말고 배우자와 연애를 시작하자. 지금 사랑하지만 앞으로도 사랑하겠노라! 가급적 더 사랑하겠노라! 풋풋하게 연애를 해보자. 말 나온 김에 데이트를 신청하자. 영화는 조금 식상하다. 조금만 힘주고 약간만 클래식하게 혜화동 대학로에서 연극 한 편 관람하는 건 어떨까(아따 올드하다).


혹시 H.O.T. 세대라면 H.O.T.가 다녀가서 유명해졌던 대학로의 떡볶이 맛집을 기억하시는지? 사실 그 뉴스는 너무나 억울하다. 그들이 다녀가지 않았던들, 나누미 떡볶이가 맵지 않고 달콤 씁쓰름한 떡볶이를 구사하는 전통의 명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품질 좋은 어묵을 간에 맞게 잘 익혀내기로도 유명하고, 깔끔한 맛의 김밥은 떡볶이와 궁합이 좋다. 유쾌한 연극 한 편과 맛있는 떡볶이 한 접시라면 진지한 애정표현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번 주, 나누미 떡볶이에서 데이트 어떠신지?


머리 위로 비친 내 하늘 바라다보며

널 향한 마음을 이제는 굳혔지만

웬일인지 네게 더 다가갈수록

우린 같은 하늘 아래 서 있었지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한 채

언제나 네 옆에 있을게 이렇게 약속을 하겠어

저 하늘을 바라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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