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 비가 오네요.
여자 : 그렇네요.
남자 : 어때요?
여자 : 뭐가요?
남자 : 바다에 내리는 비. 며칠 전에도 본 적이 있었는데, 오묘하더라구요. 아무리 내려도 넘치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어요, 갑자기. 물잔은 언젠가 넘치는데 말이죠.
여자 : 가뒀으니까요.
남자 : 네?
여자 : 쟤네들은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떠나면 되죠. 막힌 곳도 없고, 방해하는 것도 없으니까. 그런데 저건(물잔을 가리키며)…….
남자, 여자를 보며 따라놓은 물을 마신다.
남자 : 전 여기 자주 와요.
여자 : 알아요. 제가 올 때마다 이 자리에 있었어요. 거의 매일 이 시간에.
남자 : 그럼 제가 여기서 뭘 했는지도 알겠네요.
여자 : 종이랑 연필을 오른쪽에 두고, 이렇게. 그리고 책을 읽던데요.
남자 : 네. 지금도 그렇죠.
여자 : 직업이 뭐예요?
남자 : 예전엔 있었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여자 : 예전엔 뭐 했는데요?
남자 : 말하기 곤란해요.
여자 : 뭐 그렇게 비밀이 많아?
남자 : 우린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요.
여자 : 아까 처음이 아니라 말씀드렸는데.
남자 : 말을 섞는 건 처음이죠.
여자 : ……알겠어요. 재미없긴 하지만 있을 만하네요. 저도 매일 이 시간에 오는 거 알고 있었죠?
남자 : ……네.
여자 : 제가 먼저 앉아 있던 것도 알고 있었죠?
남자 : 그래요.
여자 : 그쪽이 올 때까지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아세요?
남자 :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그 둘 중 하나겠죠.
여자 : 아니요.
남자 : 그러면요?
여자 : 기다렸어요. 그쪽.
남자 : 왜죠?
여자 : 커피를 마실 때도 왼손으로 마셔요. 책을 펼 때도 펜을 먼저 쥐고. 책을 펴기 전엔 냅킨을 삼각형으로 접고 포크를 그 위에 올려놔요. 그러고 나서 페이지를 넘겨요. 아, 안주머니에서 티백을 하나 꺼내 물잔 안에 넣고.
남자 : 자세히도 보셨네요.
여자 : 매일 같은 시간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게 이상했어요. 그래서 궁금했죠. 누굴까? 저 사람.
남자 : 보통 사람입니다. 보통 남자.
여자 : 혹시 게이세요?
남자 : 아닙니다.
여자 : 독신주의자?
남자 : 그것도 아니구요.
여자 : 더 서운하네요. 목소리에 긴장하는 느낌도 없고.
남자 : 사실 저도 절 지켜보고 있던 거, 알고 있었어요.
여자 : 내 눈빛이 그렇게 셌나?
남자 : 우연히 고개를 돌리면 아닌 체 했었죠? 일부러 티 내는 거 알아요. 어느 때부터 당신이 제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고 있는 것도 봤고.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저랑 똑같이 테이블이 정돈되어 있어서 제 좌석이라 착각하고 앉았던 적도 있어요.
여자 : 그럼 예의상 쪽지라도 남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남자 : 제가 왜 그래야 하는 거죠?
여자 : 당신이랑 카페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봤다면 다른 의도가 있을 텐데도 그걸 눈치를 못 채요?
남자 : 전 지금 누군가를 만날 입장이 못 됩니다.
여자 : 재수 없어. 누가 사귀어 달래요?
남자 : 솔직히 말해서 왜 절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자 : 같은 테이블에 앉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이렇게.
남자 : (다소 강하게)그럼 목표를 이뤘네요.
사이
남자 : 분위기가 이상해졌네요.
여자 : 누구 때문이겠어요.
남자 : (시계를 보더니)전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 더 있고 싶으시다면 이 자리에 계셔도 좋습니다.
여자 : 끝까지 같은 식.
남자 : 또 만날 수 있겠죠. 자세한 건 다음에…….
남자, 자리에서 가방을 들고일어난다.
그때,
여자 : 앉아.
사이
여자 : 교회 다녔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