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에덴 04화

에덴

by 이한

여자 : 절 죽여주세요.


남자 : 네?


여자 : 절 죽여 달라구요.


침묵


남자 : 전 오늘 그쪽을 처음 만났는데요.


여자 : 할 수 있잖아요.


남자 : 뭘 보구요.


여자 : 힘 쎄 보이는데?


침묵

여자, 참다 웃음을 터뜨린다.


여자 : 농담이에요. 진짠 줄 알았어요?


남자 : 사람 놀라게 하는 데 재능이 있으시네요.


여자 : 만약 진짜였으면 들어줬어요?


남자 : 아니요.


여자 : 그럴 것 같았어.


남자 : 누구든 그럴 겁니다.


여자 : 그렇겠죠. 누구든. 아까부터 책을 읽고 있었죠?


남자 : 네.




여자 : 무슨 책이에요?


남자 : (책을 뒤집으며)재미없는 책이에요.


여자 : 뭔데요. 알고 싶어요.


남자 : 러시아 소설가의 책이에요.


여자 : 작가는?


남자 : 복잡해요.


여자 : 뭔데요.


남자 : 도스트예프스키.


여자 : 뭐야. 외국 사람들은 이름을 참 어렵게 지어. 이름 부르다 시간 다 가겠다.


남자 : 우리랑 다른 세계 사람이니까요.


여자 : 책은 볼 만 해요?


남자 : 나름 견딜 만합니다.


여자 : 뒤에서 얼핏 봤는데.


남자 : 훔쳐보고 있었나 보죠.


여자 : 의도한 건 아니에요. 그냥 책을 보고 있길래 무슨 이야긴가 싶어서 화장실 가는 척 하고 봤죠.


남자 : 그래서. 어떤 것 같았나요.


여자 : 나랑은 안 맞겠다.




두 사람, 웃는다.


남자 : 네, 저랑도 맞진 않아요.


여자 : 그런데 왜 보세요?


남자 : 이게 절 먹여 살리거든요.


여자 : 책이 먹여 살린다구요?


남자 : 이야기하면 복잡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여자 : 네, 뭐. 오늘은 먹을거리 찾으셨어요?


남자 : 아직요. 지난번은 찾았습니다.


여자 : 얘기해줘요.


남자 : 기억이 안나요.


여자 : 거짓말.


남자 : 정말이에요.


여자 : 그럼 기억나면 얘기해줘요.




남자 : 오늘처럼 만나게 되면요.


여자 : 제가 마음에 안 들어요?


남자 : 그런 건 아닙니다.


여자 : 남자가 뭐 이래? 여자가 직접 찾아온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남자 : 그쪽이 절 보러 왔는데 굳이 시시콜콜 제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요.


여자 : 꽤 영리하시네요.


남자 : 어떤 게요.


여자 : 밀당하는거잖아요, 지금.


남자 : 그래 보여요?


여자 : 많이요.


남자 : 미안해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여자 : 괜찮아요. 근데 조금 어이가 없긴 하네요.


남자, 밖을 본다.

너울지는 바닷가. 여자도 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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