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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민이야기 8 - 유치원과 학교에 등록하다

아이들도 어느덧 독일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학교와 유치원에 등록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독일에서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반드시 입학해야 했고, 입학 거부 시 오히려 문제가 된다. 하지만 유치원은 얘기가 달라진다. 몇 년 전부터 유치원 공급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고, 유치원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려야 하거나 혹은 긴 대기 시간에도 불구하고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대기 리스트에 올려놓아야 된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남편이 먼저 독일에 도착해 있을 때부터 틈나는 대로 유치원을 찾아가서 등록 의사를 밝혔으나, 관계자들은 시답잖게 반응했고, 나중에 아이가 독일에 오면 다시 찾아오라는 등의 말로 거절하기가 일쑤였다. 어떤 유치원은 입구 초인종을 누르고 "등록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하면 "자리 없어요" 라며 문 앞에서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나는 이러한 전례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새로운 전략을 짰다. 일단 관청의 허가서류가 필요했다. 먼저 전입신고를 완료하고 아이를 교육부에 등록했다. 그러면 유치원 입학에 대한 허가증이 나온다. 이 서류를 받는 데에도 몇 주가 걸렸다. 그러나 이 서류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아이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이쁘게 찍은 사진도 붙이고, 아이의 성장배경과 성격, 특성, 장점들을 구구절절 나열했다. '규칙을 잘 따르고, 친구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는 아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독일어는 알파벳도 읽을 줄 몰랐지만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빌어 그럴싸한 글을 완성했다.



이제 지도를 펼쳐 들고 집에서 반경 4km 안에 있는 유치원을 모두 검색했다.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방문해서 가능성이 있는 곳이면 모두 문을 두드려 볼 생각이었다. 아이의 옷을 깨끗하게 입히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었다. 아이들의 체력과 인내심의 한계로 하루에 한 군데, 많으면 두 군데 정도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때가 5월이었는데 이상기온으로 한여름처럼 너무나 더웠다. 버스를 몇 번이나 환승하고 한참을 걸어서 유치원에 도착하면 대부분은 문전박대를 당한다. 말도 몇 마디 건네기 전에 "여기에는 자리 없어요" 라며 우리를 돌려보냈다. 그러면 "이거라도 봐주세요" 하며 정성스레 준비한 편지와 자기소개서를 들이밀어 보는 거다. 그러면 그쪽에서는 "한쪽에 놓고 가세요"라는 대답으로 정중히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 간혹 가다 "연락처를 남겨놓고 가세요" 라며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주는 곳도 있었다.



  이주 정도 돌아다녔을까, 웬만한 곳은 다 돌아보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연락이 오는 곳이 없어서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 거의 동시에 두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한 곳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한 곳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희망 1순위의 유치원이었다. 우리가 그 유치원에 서류를 내러 갔을 때, 유치원 직원이 분명 빈자리도 없고, 대기 리스트도 길어서 등록이 어렵다고 말했었는데, 어떻게 몇 주만에 자리가 생긴 걸까.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를 받아주기로 결정을 내려준 것이다. 우리가 준비해 간 자기소개서가 통했던 것일까. 우리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1순위의 유치원으로 등록했다. 나중에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서 보니 같은 반에 동양인 여자아이가 2명이 더 있었다. 한 명은 몽골에서 왔고, 다른 한 명은 중국에서 왔다. 지원한 많은 아이들 중에 트러블 없이 잘 지낼 것 같은 아이들의 조합을 만들어 입학을 허락한 것 같은 짐작이 들었다. 유치원 공급 부족으로 인해 유치원이 절대 갑의 위치에 놓였으니 전혀 허무맹랑한 추측은 아닐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불가능해 보였던 유치원 등록도 잘 해결이 되었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둘째의 유치원 입학에 비하면 비교적 어려움이 없이 잘 진행이 되었다. 주거지역에 따라 초등학교가 배정되고 따로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배정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우리가 처음에 희망했던 초등학교는 숲 속에 위치한 학교였는데 우리 행정구역이 아니었는지 다른 초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의제기를 해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고, 배정된 초등학교도 나쁘지 않아 보여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또 하나의 관문으로는 신체검사와 인지도 검사 같은 것을 통과해야 했다. 테스트를 위한 방문 날짜와 시간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오라는 시간에 맞추어 갔다. 키와 몸무게 등 신체발달 사항을 체크하고, 이해도와 의사소통기능 등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단순한 검사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신체 사이즈를 잴 때 팬티만 남겨놓고 옷을 다 벗으라고 해서 적잖은 문화충격을 받았다. 최근 늘어난 이민자 가정에서 폭력이 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해서 그런 걸 확인하려고 그랬던 걸까. 당시 짧은 독일어로 인해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왜 그랬어야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인지도 검사를 할 때는 아이가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잘 진행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결과는 정상으로 나와서 초등학교 입학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이 검사에서 유치원에 더 머물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한다고 하니, 어려움 없이 잘 통과된 것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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