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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민이야기 9 - 이웃과의 분쟁

완벽한 곳은 없어

우리가 정착한 곳은 도시의 중심가를 벗어난 약간은 한적한 동네였다. 그래도 중심으로의 연결성이 나쁘지 않고 숲과 강이 근처에 있어, 우리는 주거지에 대한 만족도가 컸다. 이 동네의 분위기나 주변 인프라 같은걸 잘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파트 구하기를 수없이 시도한 끝에 우리를 세입자로 선택해준 곳이 여기였기 때문에 이사를 온 것이다. 그런데 이사 와서 지내다 보니 참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경 500미터 안에 큰 슈퍼마켓이 4개나 있었고, 한국의 다이소 같은 생활용품점과 약국도 가까이에 있어서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유치원도 가까이에 있어 모든 것이 계획적으로 끼워 맞춘 듯 아주 만족스러웠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한국 기준에서는 다세대 주택에 가까운 형태인데, 4층 건물에 8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4층 꼭대기에 살았고, 남향이라 볕도 잘 들어오고 전망도 좋았다.


그런데 이사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과의 문제가 생겼다. 소음 관련 문제였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그렇게 소란스럽게 생활한 것 같지 않았는데, 아랫집과 옆집에서 자주 항의가 들어왔다. 원래 독일에서는 아이들로 인해 발생되는 소음은 허용해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알고 봤더니 두 집 모두 밤에 일하고 낮에 자야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거주했던 거였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반응했었던 거였다. 어떨 때는 내가 종종걸음으로 걷기만 해도 주의를 받았다. 우리와 이웃의 생활방식의 차이도 문제였지만, 아파트 자체도 소음에 너무 취약하게 설계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독일이 통일하면서 갑자기 주거지가 많이 필요해지자, 급하게 건물을 올리면서 부실하게 지어진 집들이 많다고 했는데, 이 집도 그런 집들 중에 하나였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꼭 실내화를 신거나, 까치발로 걸어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대화할 때는 '쉬, 쉬' 하며 "작은 소리로 얘기해야 해" 하고 항상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게 되었다. 안 그래도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해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서 집에서까지 맘 놓고 편하게 얘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수많은 장점 가운데 단 하나의 불편한 점이니 불평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예절이라 생각하고 감내하기로 했다.


한번 정착하고 나니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어렵게 겨우 구한 것이었고, 1-2년 지나는 사이에 집 값도 점점 올라서 우리가 구했던 가격으로는 비슷한 조건의 집을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떻게는 이곳에서 살아내야 했다. 독일에서는 세입자 보호법 같은 것이 있어서 이사 와서 2년 정도를 살면, 별 다른 예외사항이 있지 않는 한 세입자는 영구 거주권을 얻게 된다. 처음 계약했던 월세가 계속 유지되는 경우도 있고, 시세에 따라서 약간 오르기도 하지만 일정 퍼센트 이상으로 오르지 않기 때문에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경제적인 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실제로 20-30년 이상 한 아파트에서 월세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 현재 같은 조건의 아파트의 월세보다 훨씬 저렴한 월세를, 심지어는 반값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도 이 아파트에서 최소 2년을 버텨야 했다. 그전에 이웃과의 분쟁으로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온 가족이 갈 데가 없어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최대한 이웃들에게 불편함이 가지 않도록 조심히 생활했다. 이렇게 조심해서 살다 보니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렸고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이 아파트에서 4년이 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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