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작은 더뎠다. 처음 너와 서로를 알아갈 때 묘한 익숙함을 느끼곤 했지만 깨닫게 되는 사실들은 우리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는 결론들 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때때로 숨고 싶었다.
일을 하던 때와는 다르게 하루하루 검증되던 나의 한계를 더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다섯 살이 된 첫째와 품 안의 둘째로 인해 점점 나를 잃어만 가던 때였다. 서로 멀찌거니 서서 하원 차량에서 내리는 각자의 아이들만을 받은 채로 우리는 유유히 각자의 방향으로 등을 돌리며 헤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낯가림과 경계의 어느쯤에서 서로를 오래도록 가늠해야 했다.
그러다 너에게 아이가 셋이 있다는 사실
그 아이들 모두가 아들이라는 사실
우리가 품에 안았던 막둥이들의 생일이 있는 달이 1월이었다는 사실
두 막둥이들의 생일이 겨우 이틀 차이라는 사실들을 알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시절, 네가 막내 아이의 산통을 막 끝냈을 때 나는 아마도 출산의 조짐을 느끼고 병원으로 향했으리라. 터무니없을 수도 있고 끼워 맞춰 볼 수도 있는 그 별것 아닌 사실이 나로 하여금 너를 돈독하게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막둥이가 돌이 지난 얼마 후 너는 일을 해볼까 한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육아가 버겁고 서툴렀던 그때 너는 얼마간 커 보였다.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고 결코 해낼 수 없겠다 단정 지었던 일들에 도전장을 내미는 네가 기특하고 대단해 보였다. 번번이 어린아이들에게 기운이 빠지고 화가 나니 쉽게 감정적으로 몰아치던 나와 다르게 너는 감정을 잘 다스리는 듯 보였다. 크게 화를 내지도, 스스로의 지침을 들키지도 않았다. 누구에게나 늘 조용한 미소로 응답하던 그때의 너는 참 강단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어느덧 7년이란 시간이 흐른 사이 그렇고 그런 뻔한 사실들만을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사연 하나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들이란 존재하지 않는구나 깨달았을 때 나는 너를 좀 더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난봄부터 힘든 시간을 보냈던 너는 건강으로, 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의 건강 문제로 힘든 때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었다. 그런 때여서 더욱 그랬을까. 나를 봐야겠다는 침착한 너의 한마디가 이미 내게 외침이 되어 달려들었다.
여느 때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안은 너는 지난번 만남 때 보다 확실히 수척해 보였다. 알 수 없는 긴장으로 너를 맞은 내게 너는 크게 뜸 들이지 않고 말을 시작했다. 내가 들어야 했던 너의 외침은 암 진단이었다. 너와 나는 서로 죽고 못살아서 매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 사이 너는 오랫동안 일을 하기도 했고 늘 시댁과 아이들의 육아로 나와 만나서 나눌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저냥 알만한 사이도 분명 아니었다. 그랬는데도 네가 그날 입 밖으로 내뱉던 그 외침은 내게 선고가 되어 내려졌다.
슬픔이 가늠이 되지 않고 있는데 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들이 아니고, 남편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그 말이 나는 아렸다. 왜 이럴 때까지 너는 스스로를 먼저 돌보지 못할까. 세상을 향해 원망을 하고 분노가 일었다고 해도 너를 욕할 사람은 없었다. 내가 아는 한 너는 그저 세상에 순응하며 생떼 한번 제대로 부리지 않고 착실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순간 정신이 퍼뜩 차려졌다.
아니, 나는 괜찮지 않았다.
정작 네가 나를 위로하며 괜찮다, 괜찮다 하는데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왜 그때서야 깨달았을까.
나는 실은 자주 괜찮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껏 많은 것들을 괜찮은 줄로 여기며 살아왔다. 말의 힘을 빌려 이만하면 괜찮다는 것을 주문으로 여겼다. 너의 괜찮다는 말 끝에 나는 아니라고 반기를 들고 싶었다.
‘아니 나는 괜찮지 않아.’
너를 알아가면서 어딘지 익숙하다고 느꼈던 그때 나도 모르게 어렴풋이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너도 나도 괜찮지 않은 긴 터널을 지나왔겠구나. 우리의 처음이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말하지 않고 지나가도 왜 그리 너의 뒷모습이 밟혔는지, 사람을 경계하는 내가 왜 너에게만큼은 그것을 두지 않았는지. 이토록 늦게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괜찮지 않았던 과거로 인해 불평하지 않고 참아내는 삶에 익숙했고 순응해왔는지 몰랐다. 삶의 이마저도 감사라고 생각했을 테고 때문에 시답잖은 투정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랬다. 과거에 비한다면 나의 삶은 이만하면 감사였고 이 정도면 꽤 괜찮았다. 그래서 괜찮지 않은 티는 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때때로 숨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버릇처럼 ‘아무거나’라는 말, ‘괜찮은데로 해’가 편한 말이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참아내는 삶에 익숙했던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를 이제껏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왜 늘 괜찮기만 했을까. 괜찮지 않았던 날들도 많지 않았을까...
우리는 다른 듯 참 많이도 닮아있었구나. 서로 다른 시간들을 살아왔지만 우리가 각자 견뎌야 했던 참음 들은 이렇게 서로를 알아보게 했나 보다. 뜬금없는 이 조우가 적절한 때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너와 나는 아마도 난이도가 있는 시험과제를 골몰해서 풀어가는 중이리라. 어려운 시험을 맞이한 때에 이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조우할 수 있는 것도 힘이라면 감사일까.
온전한 내 편, 제대로 된 내 편 하나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세상. 이제라도 ‘나 실은 괜찮지 않았다’, 고백할 수 있는 서로를 알아본 것만으로도 작은 쉼표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