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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May 09. 2022

달라진 남편

2003년과 2004년 사이 남편은 프랑스의 해외 영토인 레위니옹 섬에 1년간 긴 출장을 떠나 있었다. 물론 3개월에 한 번씩 집에 들렀지만 꽤 오래 떨어져 있었던 기간이었다. 그런데 집에 왔을 때 그의 태도나 행동이 어딘가 좀 달라진 것 같았다. 오랜만에 가족을 보는데 별로 반가운 기색도 없었고, 반대로 작은 것 하나에도 꼬투리를 잡고 시비를 걸었다. 매사에 자주 화를 냈으며 내가 하는 모든 것, 아니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눈에 거슬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그가 출장에서 완전히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점차 악화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급기야는 내가 선택한 번역가의 길에 대해서도 불평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고양이 학교 시리즈 첫 권의 번역을 맡아 시작한 단계였고 그 이외에 다른 번역 거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내 수입은 그걸로 생활하기에는 턱도 안되었고 용돈에나 겨우 보탤 정도로 빈약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껏 물심양면으로 나를 지원하고 지지해오던 그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면서 그걸로는 절대로 생활비를 벌 수가 없으니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그의 입으로 들은 날 저녁, 나는 거실에 홀로 앉아 섭섭하고 서러운 마음과 아득한 절망감에 휩싸여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그런 내게 잠이 올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새벽 3시쯤 남편이 침실에서 나오더니 수면제를 먹고서라도 잠을 좀 자라고 부드럽게 나를 달랬다. 생각은 날이 밝아서 해도 얼마든지 시간이 있으니 쓸데없이 건강을 해치지 말라고.

나는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이러한 남편이 밉고 야속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역시 나의 직업적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으니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껏 괴짜 도인의 말을 믿고 근근이 버텨오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 믿음에 벡퍼센트 내 미래를 걸 자신감은 없었다. 그때만 해도 « 고양이 학교 »시리즈의 성공과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및 여러 한국 만화의 번역 의뢰를 아직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으니, 참으로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가 아니던가.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의 달라진 행동과 태도 그리고 나의 빈약한 수입에 대한 그의 불평 등을 단지 50세를 넘긴 남자의 갱년기 현상으로만 보려고 했지 추호도 남편의 외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으니까.

나의 빈약한 수입과 관련된 남편의 핀잔이 나의 자존심을 뼛속까지 건드렸기 때문에 나는 내 직업적 진로에 대해 또 한 번 내면의 갈등과 회의의 폭풍을 겪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점점 더 심해져가는 남편의 히스테리적 행동은 나의 아픔을 더욱 가중시켰다. 나는 한 한국 친구에게 남편의 이상한 행동들을 이야기하면서 갱년기 증세로는 너무 심한 게 아닐까라고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대뜸 혹시 다른 여자가 생긴 게 아니냐라고 의문했다. 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남편의 성격을 알기에 농담이라도 그런 농담은 하지 말라고 반문했지만 그 친구는 자세히 한번 관찰해 보라고 충고를 했다.

그 순간에는 반문했지만 친구의 말이 일단 귀에 들어간 이상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남편의 사람됨을, 그의 헌신적인 사랑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 믿고 싶은 마음은 내게서 조금씩 등을 돌리는 것 같은 그를 보면서 점차 무너져 갔다. 

당시의 내 하루하루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이전에도 몇 번 지적한 적이 있었지만 그는 특히 평소에 별로 꾸미지 않는 내 옷차림과 자신에 대한 나의 무관심을 심하게 비난했다. 한 번은 차를 타고 가면서 또다시 내 옷차림에 대해 핀잔을 하기에 나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대꾸했다. « 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게 없고 늘 내 방식대로 옷을 입을 뿐이다. 변한 게 있다면 오히려 나를 보는 당신의 눈이 아니냐? »라고. 이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그는 도로 한복판에 급브레이크로 차를 세우고는 내려버렸다. 다행히 한적한 도로였기 망정이지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이 많았다면 사고라도 날 뻔했다.

갱년기와 권태기가 겹친 형태일까 아니면 친구의 말대로 정말 다른 여자가 생긴 걸까? 나는 혼자서 이리저리 고심하고 망설이다가 어느 날 저녁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른 여자가 생겼느냐고. 마음속으로 제발 아니기를 빌고 또 빌면서. 그는 좀 뜸을 들이더니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남편의 정직성을 믿었기 때문에 그의 대답에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갱년기와 권태기를 지혜롭게 넘기도록 도와야 할 텐데 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왜냐면 나 역시 결혼 생활에 권태를, 그것도 이미 꽤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관심사가 너무 달라서 함께 있으면 대화할 거리가 거의 없었다. 남편은 내게 직장 동료들과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일과 관련해서 주로 이야기를 했고 내가 그것을 들어주는 것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이었다. 처음에는 내 관심사인 인문사회과학 분야나 인간 심리 및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시도했으나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면서 나는 점차 그와 할 말을 잃어갔다. 딸에 관해서나 집안 식구들에 관한 소식과 같이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 말고는. 게다가 내 모든 정신이 나의 불확실한 직업적 미래에 붙잡혀 있다 보니 자연히 남편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졌고, 남편은 그런 나의 무관심을 절실히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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