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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호수, 플라밍고, 그리고 백발의 브라질 언니

[5일차/칠레] 레드락 투어 2. 자연, 동물, 그리고 사람

by 도나윤

해발 4,200m 구름과 맞닿은 호수


P.M.12:10

엄마호수

레드락 투어의 두번째 목적지는 무려 해발 4,200미터에 위치한 미스칸티 호수(Laguna Miscanti). 주변에 우뚝 솟은 화산들에 둘러싸인 이 호수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흐르던 물길이 막혀 형성되었다고 한다. 카메라 화각에 한 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이 호수 바로 옆에 작은 호수가 붙어 있어서 편의상 엄마호수로 칭하도록 하겠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화되는 새파란 하늘과 그 아래 새하얀 소금이 동그랗게 테두리를 두른 청록색 호수의 조합. 그야말로 속이 뻥 뚫리는 청량한 풍경이었다.

하늘과 가까워서였을까? 해발 4,200m에 위치한 고산호수의 구름들은 화산에 닿을 듯 낮게 깔려 있었다. 한쪽 하늘에서는 뚱뚱한 구름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시시각각 변신을 하고 있었고, 반대쪽 하늘에는 솜사탕을 조각조각 찢어놓은 듯 구름들이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었다.

윈도우 바탕화면 감성의 그림 같은 풍경, 그 속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시간만 있었으면 호숫가에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 멀찍이서 호숫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하나 가까이 다가가는 이가 없었다. 다들 투어시간에 쫓겨 호숫가에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지, 애초부터 접근이 금지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람 한 마리 없었던 걸 보면 마도 오직 동물들만 입장 가능한 수질 관리 철저한 호수가 아니었을까.


P.M.12:40

아기호수

엄마호수에서 차를 타고 아주 잠깐만 이동하면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호수, 미니케 호수(Laguna Miñiques)가 등장한다. 메라 화각에 한번에 들어온다는 것만으로도 엄마호수보다 훨씬 크기가 작은 아기호수임을 알 수 있다.

원래 둘은 하나의 호수였는데 용암 분출로 인해 두 개의 호수로 갈라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청록빛 물 색깔이며 새하얀 소금 테두리 띠까지 똑 닮아 있었다. 브라질 가족 일행의 아빠들은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호수를 마구 담기 시작했다.

한편 이곳은 플라밍고 보호구역이기도 하다. 멀찍이서 호숫가에서 놀고 있는 개미만한 플라밍고들을 구경할 수도 있는데, 카메라로 줌을 최대로 당겨야 겨우 보일까 말까 수준이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차 안, 이곳 호수에서 목을 축이는 또 다른 동물들을 발견했다. 해발 4,200m,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올라가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사막 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다!


플라밍고인지 딱따구리인지


P.M.2:00

착사 호수

그림처럼 아름다운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레드락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인 착사 호수(Laguna Chaxa)를 향해 달렸다.

착사 호수는 각 잡고 플라밍고를 대량으로(?) 구경할 수 있는 전망 포인트인데, 입구에 작은 플라밍고 전시관까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가이드 A는 세 종류의 플라밍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부리 색 어쩌고, 날개 색은 저쩌고, 꼬리 색은 어떻게 다고... 뭔가 차이점이 많긴 했으나 설명을 듣는다고 그것들을 구분할 만한 경지에 오를 수는 없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 하나 없는 길을 한참 걸어가니 양 옆으로 호수가 펄쳐졌다. 오른쪽 호수에 플라밍고들이 떼거지로 모여있었다. 이곳은 플라밍고 전망 포인트라고는 하지만 플라밍고를 놀래켜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수 있다. 먼저 갔던 호수에서 개미만한 플라밍고를 보았다면 여기서는 살짝 더 가까워져서 무당벌레만 하다는 차이 정도?이곳에서는 플라밍고의 동물권이나 어찌나 철저하게 보호되는지, 가이드 A가 일러준 주의사항 중에는 플라밍고가 놀랄 수도 있으니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자제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플라밍고가 너무 작게 보인다고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꼭 필라밍고에 흥미가 없더라도 파란 하늘이 거울처럼 비치는, 태양 빛을 받아 반짝반짝거리는 착사 호수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


P.M.2:00

내가 생각한 플라밍고가 아니야...

반대편 호수에서는 좀 더 가까이서 플라밍고 몇 마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플라밍고에 대해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전시관에서 본 사진처럼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나는 플라밍고는 한 마리도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부러질 듯 가느다란 두 다리를 뽐내며 물 속을 휘적휘적 걸어 다닐뿐이었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물 위를 떠 다닐 수 있는 신체구조가 아니었다... 날갯짓은 커녕 플라밍고의 얼굴을 보는 것 마저도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아한 이미지와는 달리 현실 플라밍고는 꽤나 우스꽝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그들은 단체로 물 속에 머리를 쳐박고는 하나같이 딱따구리라도 된 마냥 정신없이 부리를 쪼아대고 있었다. 사진으로 다시 보니 꽤 아름다워 보이지만 현실 플라밍고의 현란란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플라밍고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그냥 웃기다. 특히 단체로 딱따구리에 빙의한 모습을 보면 '쟤네 왜 저래?'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도대체 호흡을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겠다만 그들은 좀처럼 수면 위로 얼굴을 드는 법이 없었다. 플라밍고가 얼굴을 들어줄 때까지 기다리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찌는 듯한 더위에 완전히 지쳐 버렸다. 그렇게 플라밍고를 관찰할 의욕을 잃어버렸을 무렵 가이드 A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으러 갑시다!"




집 떠난 지 5일 만에 혼밥 탈출


P.M.3:30

어쩌다 마을 탐방

늦은 오후, 가이드A는 기나긴 투어 일정으로 굶주린 우리를 어느 마을의 식당으로 데려갔다. 분명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는데 식당은 만석이었고 우리는 근처의 아주 작은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대기를 했다.

나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무리를 이탈하여 마을 구석구석 탐방을 떠났다(워낙 작은 마을이라 사실 구경할 것도 없었다).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거리, 그 구역의 유일한 생명체인 고양이를 관찰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와서 소리쳤다.

"우리 다른 식당에 간대요! 빨리 와요!" 호숫가에서 부터 나의 말동무가 되어 준 10대 소녀 C였다. 그 골목 구석탱이에 내가 있는 줄 어찌 알고 찾아왔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홀연히 사라져버린 철딱서니 없는 어른을 찾아 골목골목을 샅샅이 뒤지며 뛰어다녔을 것이다...


가장 저 떠오르는 장면

여행이랑 역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온기로 기억되는 법인가 보다. 지금도 레드락 투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려지는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지구별의 자연 경관이 아니라, 착사 호수 근처 어느 작은 마을의 칠레 음식점에서 낡은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던 순간이다.

가이드 A를 따라 들어간 곳은 이제 막 문을 연 듯한 텅 빈 식당이었다. 간판을 보니 아까 가려고 했던 식당의 2호점인 것 같았다. 통나무집처럼 어둑어둑한 실내를 창문을 통해 새어 든 늦은 오후의 기울어진 햇빛이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고, 우리 열두 명은 창가 옆 햇빛이 바로 드는 테이블들을 모두 점령했다. 손님이 우리뿐인 식당, 사실상 통으로 빌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나는 가이드A, 혼자 오신 칠레 할머니, 그리고 브라질 가족 무리에서 아이 셋 엄마를 담당하는 백발의 여자와 함께 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다. 메뉴는 칠레식 수프와 닭 구이 세트였다. 수프에는 감자와 고기가 들어있었는데 한국에도 있을 법한 맑은 국물이라 입맛에 딱 맞았다.

남미에 와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아타카마에서는 매일 혼밥을 했다. 늦잠 자서 조식도 혼자 먹고, 언제나 투어 집합시간에 쫓겨서 겨우 빵쪼가리로 끼니를 때우고, 투어를 마치고 늦 밤 문을 연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영업 종료 전까지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고...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었는데, 집 떠난 지 무려 5일 만에, 드디어 누군가와 함께 다운 밥을 먹는다.

백발의 브라질 언니와의 대화

그날 컬 감성이 가득한 식당에서 마치 사진이라도 찍어둔 처럼 뇌리에 선명하게 박힌 장면이 있다. 바로 내 옆 자리에 앉은 백발의 여자와 대화를 나누던 순간이다. 마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햇빛이 오직 우리만을 위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것 같았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가득찬 공간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주었다. 그녀는 아이 셋을 키우는 내과의사였는데 일과 육아를 병행 하다가 순식간에 머리가 새하얘졌다고 했다. 백발의 머리 때문에 감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는데, 내 나이보다 몇 살 더 많을 때 첫째를 낳았다고 하니 대충 계산이 되었다.

워킹맘의 삶이란 한국이나 브라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커리어의 일부를 포기였으며, 셋 중에 둘이 연년생이라 아이들 크는 동안 예쁜지도 모르고 아이들을 키웠다고. 정신없이 느라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는 그녀의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였다. "와 우리 엄마가 와서 얘기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이제 아이들이 좀 커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는데, 자신에게 남은 건 새하얘진 머리뿐이라며 마른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혼자 남미까지 와서 싸돌아다니고 있는 젊은 동양여자의 사연 궁금해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날 처음 본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낯선 여자에게 나의 인생사 털어놓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민상담소 내담자로 빙의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업무가 적성에 안 맞아 수년간 고통받고 있으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어찌어찌 새로운 학업을 시작했으나, 그거 말고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고, 요즘의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너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니?' 조용히 회사나 다라고, 제발 한 가지나 제대로 하라고, 가족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행보를 백발의 브라질 언니가 응원해주었다. 잘 하고 있는 거라고. "내 동생도 너랑 비슷한 일을 했었는데 걔도 비슷한 얘길 했었어. 걔는 말이야~" 그리고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이 얘길 들으려고 아카카마까지 오게 된걸까?'역시 나만 별난 건 아니었어!'


가이드 A와의 대화

내 앞에 앉은 가이드 A게도 자꾸 말을 걸고 싶었다. 이만큼 편안한 투어를 제공하는 숙련된 가이드를 본 적이 던가?그는 내 여행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가이드로 등극하였다. 특히 해발 4,000m 고지대를 오르내리는 투어에서 가장 걱정이 됐던 고산병, 미리 약을 먹긴 했지만 우리 일행 중 고산병 증상을 겪는 이가 한 명도 없었던 데에는 분명 그의 세심한 고도 계산, 시간 분배, 컨디션 관리 기술 등 영업 기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에게는 유일한 쉬는 시간이었을 식사 타임을 방해했음에 미안해진다... 아타카마에 동양인이 너무 없어서 주로 어느 나라에서 여행을 오느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칠레 국내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매번 같은 자연 장관을 계속 보면 무슨 기분인지도 궁금했다. 나에겐 새로움으로 가득 찬 여행이지만, 그에겐 수십수백번도 더 다녀와서 지겨울 법도 한 업무였을텐데, 그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가이들과는 좀 달랐다. 매사에 진심인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아타카마 시내로 돌아가는 길,우리 모두를 깊은 잠에 빠뜨린 그는 부드러운 운전실력 마저도 완벽했다.

아타카마 시내로 돌아가는 길

가장 먼저 브라질 가족들 숙소 앞에 도착했다.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백발 언니네와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다음으로 칠레 할머니가 내렸다. 다음 목적지인 우유니에서 다시 보자고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우리 숙소 앞에 차가 멈췄다. 가이드 A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전해주었다. "이 투어 내가 해 본 투어 중에 제일 좋았어. 너는 진짜 최고의 가이드야!"



아타카마에서의 마지막 밤


P.M.17:45

수면 보충

아타카마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내야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아타카마 시내에 돌아오니 대략 오후 6시, 일단 숙소에 돌아가서 낮잠을 한숨 잤다. 새벽 3시에 볼리비아 우유니로 향하는 야간버스를 타야하는데, 희망컨대 밤새 놀다가 버스를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이 놀 사람도 없고 딱히 계획도 없었지만, 일단 수면보충을 해두어야 기회가 생겨도 잡을 수 있을 터였다.

룸메가 들어왔다. 그녀는 벌써 잘 준비를 한다고 했다. 9시도 안 됐는데 말이다... 아타카마의 마지막 밤을 함께 불태울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그녀에게는 같이 놀자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번역기로 마지막 인사를 나다. 새벽 3시 버스를 타러 나갈 쯤이면 그녀는 한창 자고 있을 테니까. 오직 100% 번역기로 두세 차례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이지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우리는 참 많이도 웃었다. 덕분에 아타카마의 밤은 외롭지 않았다.

P.M.8:30

일몰부터 손톱달까지

아타카마의 밤은 아주 늦게 찾아온다. 낮잠을 너무 오래 자서 망했다 생각하며 급히 뛰쳐나온 아타카마의 거리, 다행히 저녁 8시반이 되도록 아직 어둠이 찾아오지 않았다. 이 거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곳 앞에 멈춰 서서 한참을 서성였다. 흐드러지게 축 늘어진 나무와 그 아래 흙벽에 아무렇게나 붙은 포스터들, 내게는 가장 아타카마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될 그 지점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 지점에서 아타카마에서의 마지막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 사람은 아타카마에 사는 현지인이었는데, 거기 말고 맞은 편이 더 멋있다며 나를 길 건너 편으로 보냈다. 대화를 몇 마디 나누게 되었는데 마그넷 기념품을 사러 가는 길이라고 하니까 이곳이 마그넷 사기에는 가장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다른 기념품 상점까지 하나 더 추천해주고 그는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그곳은 얼핏 보면 그냥 가게 입구 같지만 여러 기념품 가게들이 몰려있는 작은 시장이었다. 그 사람의 말처럼 마그넷 쇼핑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여러 군데 발품을 팔아 봤지만, 나는 이후에 다시 이곳에 돌아와서 마그넷을 샀다.

사람처럼 길거리를 활보하는 개들에게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이곳의 개들은 종종 떼를 지어 돌아다닌다. 가끔은 열댓마리가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하는데, 들개 떼들이랴말로 남미여행을 하면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아타카마의 해가 지고 있었다. 노란빛부터 보랏빛까지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으로 하늘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곳에서도 사진을 부탁하다가 꽤나 오래 대화를 나눈 이가 있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출신인데 칠레 아타카마로 일을 하러 왔다는 젊은 여자였다. 나에게는 여행지, 누군가에게는 일터.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일터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여행지겠지.

마그넷 쇼핑은 언제나 미룰 때까지 미루다가 마지막 날 도시를 떠나기 직전에야 하게 된다. 아타카마 거리에는 기념품 가게라 널려 있었지만, 나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하는 마그넷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타카마의 모든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내가 방문한 곳들이 최대한 많이 덕지덕지 붙어있어야 하고, 그 조잡한 가운데 예쁘기까지 한 마그넷을 찾는 일이란 하늘의 별 따기다.

나에게 아타카마의 낮은 시원하고 밤은 따뜻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온과는 정반대로 기억된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무더운 낮은 초록초록하게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 시원했던 것 같은 착각이 들고, 태양이 사라지자마자 확 서늘해지는 밤은 길거리를 가득 채운 노란 불빛들로 인해, 그리고 밤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로 따뜻한 기억만 남아있다. 아타카마의 밤은 활기가 넘친다. 흥 많은 이들의 노랫소리, 춤사위, 그리고 곳곳의 악기 연주까지. 그들 틈에 끼어들어 함께 춤을 춰도 좋다. 그들이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다.

'우와!' 일몰을 구경하다 손톱달을 발견했다!달이 보일랑말랑 한 어두운 밤하늘,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별보러 넘어가기 딱 좋은 날이다.

달이라면 환장하는 나는 열심히 아타카마의 손톱달을 찍어댔다. 그때 카메라 화면에 장난끼가 가득한 얼굴 두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틀 전 밤 길 위에서 함께 춤을 췄던 그 친구들이었다!그들은 나를 알아보고 카메라 렌즈를 통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이렇게 잠시 스치는 인연들이 마냥 반갑고 이런 소소한 만남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멍멍이까지 다같이 한 컷

P.M.9:00

남미여행을 떠나기 전 스스로 달성 불가한 목표를 세웠었다. 매일 그날의 여행기 쓰기. 잠 잘 시간도 부족한데 가능했을 리가 없지만, 여행 초반이었던 아타카마에서만 해도 그게 될 줄 알았다. 나는 노트북을 챙겨 그 시간에 문을 연 유일한 카페로 향했다.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이스 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앞에 주문이 밀려서 1~2분 남짓 기다리는 동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밤인데 여행기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저녁 한 끼는 먹고 가는 것이 백번 옳았다. 종업원에게 번역기를 들이댔다. '잠깐! 저 나중에 다시 올게요!!' 르게 밥을 먹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정말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다.

적당한 식당을 찾아 배회라는데 시끌시끌한 바들만 눈에 들어왔다. 이 강력한 이끌림... 아무래도 아타카마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긴 후 혼자라도 펍들을 돌면서 아타카마의 바이브를 완전히 느끼고 가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나는 호스텔에서 공짜로 하룻밤 내어 준 침대를 이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잠은 무슨. 여기 또 올 거 아니잖아!' 이 길바닥에서 유흥을 즐기다 곧바로 새벽 3시 야간버스를 타는 것이 백번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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