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온도의 안 착함을 유지하려 합니다
사람이니까 사람에게 착하게 대해야 한다는 착한 마음은 종종 독이 되곤 했다. 대인관계는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상관없이, 상대에게 착하게 예의를 지키곤 했다. 하지만 이 착함이라는 강박이 이상한 아재와 엮이는 상황을 만들었고, 결국 뒤에서 ‘이상한 오해를 한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남자가 잘못해서 내가 그를 손절했지만, 그는 내가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 피해망상도 정도껏 해야지 그걸 남에게까지 말해서 나한테 전화가 오게 만들었으니 영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짓을 선동하는 것에 관해 따질까 생각도 했지만, 무시로 일관했다. 요즘처럼 각종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과 엮여서 좋을 게 없으니까.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개소리)을 자주 들었다. 애석하게도 우선 나에게 착한 후에 남에게 착해야 하나고 가르쳐 주는 어른은 없었다.
얼마 전 <불안이 우울이 되지 않게>를 읽으며, 공부에 관한 압박감을 느끼는 이정은 작가의 글을 읽다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나의 ‘욕심’과 ‘당위’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나는 꼭 좋은 사람이어야 해",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아야 해"와 같은 높은 기준과 당위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난 여전히 착한 사람이 좋고,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말을 믿는다. 하지만 자신을 배려해서 착하게 행동하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오만하게 행동하는 건 싫다.
나는 누구를 위해 착하게 살고 있지?
사실 누가 뒤에서 나쁜 사람이라고 욕하든 말든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뒤에서 남에게 나쁘다고 욕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본인이 나쁜 사람일 가능성이 더 크기도 하고.
내 불안의 원인이 무엇일까 많은 고민을 했다. 바로 나의 '욕심'과 '당위'였다. "나는 꼭 성적이 좋아야 해", "몇 범 이상을 받아야만 해", "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어야만 해"와 같은 나 자신에 대한 높은 기준(욕심)과 꼭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안 되는 체력과 머리로 나름대로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부족하다고 나를 채찍질하고 다그쳤다.
-불안이 우울이 되지 않게, 이정은, 북센스,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