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흉내내기/남산하늘숲길과 창덕궁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아주 오래전에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일본인 특유의 치밀함과 정치함을 장착한 그의 이야기는, 나처럼 역사에 별 흥미가 없는 인간은 고작 한번 읽은 것으로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카이사르는 어떤 일도 한 가지 목적만으로는 하지 않는 사나이였다'라는 문장이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5 중에서)
30대가 오기 전까지, 나의 삶은 절망과 실패와 어려움이 가득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카이사르란 인물은 참으로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 내내 카이사르의 '한 가지 목적으로 하지 않는' 그 모든 행동이 놀라웠다.
'한 가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그 의미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카이사르에 비교할 수 없는 미약하고 평범한 나의 일상에서도,
카이사르의 그 행동양식을 실행하려는 노력을 알게 모르게 계속했던 것 같기도.
<카이사르 흉내내기>를 조금 쉽게 설명하면,
나의 일상의 하나의 행동에도 '한 가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로 가는 나의 행동 나의 하루에도, 아이의 입시설명회를 들으러 가는 한 가지 목적만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을 엮거나 만나고 싶은 친구를 만나거나 아니면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기회를 가진다거나 하는 부수적인 목적을 엮는 것이다. 이렇게 '한 가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가 실패해도 또 다른 목적에 의해 그 행동이 만족스러워지는 것이다.
입시설명회에서 별 수확이 없어도 나는 이 가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거나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제대로 가을을 못 느껴도, 입시설명회에서 좋은 내용을 들었다거나 하는 것이다.
이런 <어설픈 카이사르 흉내내기>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에도 적용되고 무언가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할 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입시설명회 가는 길에 혼자서 가을 놀이를 하고 왔다,라는 이야기를 좀 거창하게 했다.
새로 생긴 '남산하늘숲길'이 가고 싶어서, 무궁화를 타고 덜컹거리며 서울역으로 갔다.
원수산 둘레길도 너무 좋지만, 신상 남산하늘숲길은 또 이처럼 아름답구나. 역시 서울이라 데크길도 세련되었다.
전날 들린 남산의 가을이 너무 아름다워 한번 더 서울 나들이를 욕심낸다.
날이 흐리고 비도 좀 내린다. 어제보다는 훨씬 차가운 바람이다.
무궁화는 30분을 연착하고, 비원은 매진이다. 욕심 없이 천천히 움직였으니, 허락된 만큼만 본다.
날이 좋은 가을도, 이처럼 차가운 가을도 다 좋다.
아름다운 비원의 가을을 놓쳤지만, 덕분에 벌은 약간의 시간으로 명동에 들렀다.
따뜻한 칼국수를 이름 모르는 캘리포니아에서 홀로 여행온 한 아가씨와 마주하며 먹으니( 이 식당은 혼자 온 사람들을 이렇게 합석을 시킨다),
나 홀로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간 듯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