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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눕 Dec 20. 2022

집에서 애만 보기 아까운 사람은 누구인가?

지나친 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그래, 엄마가 키우면 좋지.
근데 다니던 직장은 아예 그만둔 거야?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놓고선
집에서 애만 보기는 너무 아깝다 그치?


아이를 안고 있는 나에게 

그저 쉽게 내뱉던 사람들의 말


정말 수없이 많이도 들었던 말이다. 살림과 육아를 풀타임으로 하는 전업맘들은 공부도 일도 아깝지 않을 만큼 적당히 대충 하다가 집에 들어앉는 것이 가성비 측면에서 효율적이란 말인가? 


도통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대차게 반박하고 싶다가도, 힘들게 공부시켜 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머릿속 한켠에 자리 잡은 미안함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약한 입덧으로 일상생활이 불가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퇴사를 결정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구토와 24시간 동안 지속되는 숙취 + 배멀미를 버틸 재간이 없었다.  휴직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여기저기 눈치 보며 아쉬운 소리 해야 하는게 그 당시엔 편치 않았다.


당연한 권리도 눈치 보며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몹시 불편했던 예비엄마는 그렇게 퇴사를 선택하였다. (그땐 몰라도 너무 몰랐지. 출산 후 복귀 할 수 있는 직장이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출산 후 경단맘이 재취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였다.)




누군가 결혼과 육아에 대해 묻는다면, 결혼은 물론 하면 좋긴 하지만 사실 안 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 같지만 엄마로서의 삶은 놓치기 아까운 꽤 괜찮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생애 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이니 그 새로운 행복이 궁금한 사람들은 꼭 한번 경험 해 보라고 덧붙인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를 처음 만난 날이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젖을 물리고 교감할 때의 그 감격은 지금도 너무나 벅찬 순간으로 남아있다.  품에 그리고 옆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 아이가 내가 낳은 아이가 맞는지, 자꾸 들여다보며 신기해했다.  갓난쟁이가 조금씩 커 가고, 갖가지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는 덕에 참 많이 행복했다.  고됐지만 그 고됨이 보상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귀하고 행복한 고됨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출근하는 동안, 이런 행복감을 내 허락 없이 때때로 저 깊은 불안 속으로 처박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말과 시선 그리고 오지랖 넓은 참견이었다.


태생이 주변을 많이 의식하는 피곤한 스타일이다.  내가 올리는 글과 사진 하나하나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두렵고 골치 아파 SNS도 기피하는 인간이다. (실명으로 브런치에 글을 썼다면, 애초에 시작도 못했을 거다.)  


20대 때에는 누가 불편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왜 랬을까?라고 그 말과 행동의 숨은 뜻을 찾기 위해 밤새 이불속에서 고군분투했던 소심한 아가씨였다.




출산 후 조금은 어른이 되었나 싶었지만, 여전히 별 뜻 없이 쉽게 던져지는 말들과 참견 하나하나에도 내 마음은 몹시도 쉽게 휘둘렸다.  어떤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여도 표현 못할 만큼 최고로 중요한 미션을 수행하는 중이라고 자위해 봐도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참견 한마디에 곧바로 무너졌다.  행복했다가도 금새 불안해지는 감정의 널뛰기를 하루에도 수차례 경험했다.  양쪽 귓가에 행복과 불안의 꽃을 꽂은 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 부단히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감정의 널뛰기를 경험하는 여인

행복과 불안뿐만 아니라, 어떤 날은 분노와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친구:  여보, 내 친구 (누구) 알지? 걔도 지금 나처럼 집에서 애만 키우잖아.
친구 남편: 실컷 공부해도 다 소용없네. 결국은  집에서 애 키우고 밥 솥뚜껑 운전하는 건 다 똑같구먼.


'너 유학까지 가서 실컷 공부하고 지금 나처럼 똑같이 집에서 육아하고 살림하는 거잖아.' 친구는 이말이 하고 싶었나 보다.  왠지 모르게 우쭐대는 말투와 표정으로 남편과의 대화를 친절하게 전하는 그녀였다.


실컷 공부하고 전업으로 집에 있는 나는 실패한 인생인가?

그들의 입방아에 쉽게 오르내리는 한없이 가벼운 존재가 되버린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괴감은 이내 분노와 모멸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내가 믿는 신에게 따져 물었다.  설거지를 핑계 삼아 성난 감정을 애먼 그릇에 잔뜩 실어 내뱉으며 말했다.


지금 저 사람들이 나를 저렇게
비웃고 있는데,
왜 그냥 보고만 있는 거예요?  
내 아이가 누군가의 비웃음 거리가 된다면,
난 절대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거라고요.



그 시절, 이제 막 엄마가 된 나는 사람들의 말들로 참 많이 아팠다.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니, 눈물 날 만큼 아깝고 후회 스러운 순간들이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의 내 행복을 오롯이 만끽하지 못했던 것을, 누군가의 의미 없는 말들로 낭비되었던 나의 감정들이 말이다. 


전업맘 또는 워킹맘을 결정하는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고 그 누구도 내 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없어야 했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과 더 행복한 일을 선택함에 있어, 온전한 주체자가 되지 못했음에 서글픈 후회가 밀려왔다.




남의 편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늘도 아기랑 인조이 하라고 인사하고 나갈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남의 편이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아이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즐거운 추억도 많이 만들라고 조언해 줄 때마다, 참으로 맘 편한 소리 한다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땐 왜 그러지 못했을까? 정말 충분히 즐기고 행복해도 됐었을 거 같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불안한 말들과 지나친 참견으로 인해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누군가 지금 혹여나 비슷한 시기를 겪어 내고 있다면, 나는 감히 조금은 더 즐겁고 여유롭게 그 시간을 당당하게 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의 쓸데없는 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조금씩 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하고, 아무리 대단한 커리어가 있었을지라도, 집에서 애만 보기 아까운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가끔은 이렇게 거꾸로 모든걸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길


Photo by Pixabay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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