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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Oct 25. 2024

짜릿한 성취감을 주는 새재길 2

('23.10.22.~10.23.)

산중의 아침은 싸늘하다. 어느새 한기가 느껴질 만큼 계절은 가을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다. 또다시 부산한 아침을 맞는다.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고, 게스트 하우스 식당에서 아직 덜 깬 속을 달래기 위해 국물에 밥을 말아 몇 숟갈 욱여넣었다.


7시가 조금 넘어서 열이 형과 춘이 아우는 지난번 낙동강 종주 시 놓쳤던 상주보 인증을 위해 일찍 출발했다. 이미 지난 낙동강종주 때 인증을 마친 청이 아우와 나는 상풍교로 바로 가기로 하고 조금은 느긋한 출발을 했다. 9시경 상풍교에서 넷이 다시 만났다.


문경탄전의 애환과 숨결,  불정역


문경 불정역으로 가는 길은 가을이 물씬 익어가고 있다. 논길과 산길, 마을을 지나면서 가을로 가득 찬 길을 따라 페달을 밟는다.


불정역은 자연석으로 만든 간이역이다. 오석 자갈을 이용해 외벽을 두르고, 역사 하부는 화강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재로 만들어진 외관은 얼핏 역사라기보다는 멋들어진 산장 같은 느낌을 준다.


문경불정역은 한때는 문경 사람들의 삶과 함께한 역사이다. 문경탄전의 석탄이 전국으로 실려 나가던 1954년 개통되어 1993년  마지막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광원과 그 가족들의 애환이 서린 간이역이었다. 역이 문을 닫은 후 철거될 위기에서도 역사적 의미를 안고 있는 불정역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 2007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고, 온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불정역이 지나는 여행객에게 쉼터가 되고 있다.


불정역 인증을 하고 한잔의 여유를 즐긴 후 문경 읍내로 향한다. 이미 시간은 정오를 넘어가고 있다. 아침을 대충 때웠더니 뱃속이 허전하다. 문경 읍내에서 약돌 김치찌개로 배를 든든히 채웠다. 이제부터 그 악명 높다는 이화령과 조령고개를 넘어야 한다. 심호흡 크게 한 번 하고 두 바퀴에 몸을 싣는다..


불정역의 가을


백두대간 이화령과 소조령


이화령은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백두대간 조령산과 백화산 사이에 위치해 있다. 나는 새도 넘기 힘들다는 고개, 문경새재와 연결된다. 영남대로의 중추인 문경새재는 추풍령, 죽령과 함께 경상도와 한양을 잇는 가장 중요한 경로였다. 문경새재의 험준함은 예로부터 유명해서, 신라 초기에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을 막는 국경선이었다고 한다. 그 옛날, 과거를 보러 가는 경상도의 선비들은 죽령으로 향하면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데 반해, 문경새재를 넘으면 말 그대로 경사를 전해 듣고(聞慶), 새처럼 비상하리라는 미신이 있어 험한 이 길을 넘었다고 한다.


이화령을 넘는 이 길은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매우 붐비는 도로였지만, 지금은 국토종주 자전거 길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길이다. 국토종주 라이더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이 길은 정상까지 내리막 한번 없이 5km에 달하는 길을 오르고 올라야 한다.


미리 겁을 너무 많이 먹어서였을까? 점심을 너무 배불리 먹어서였을까? 시작부터 서서히 시작되는 오르막이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선두를 달리는 열이 형과 두 아우는 아랑곳없이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뒤쳐진 나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헉헉 내지르며 페달을 밟았다. 500m도 못 가서 쉬어야 했다. 비 맞은 듯 땀에 젖은 몸을 쉬며, 발아래 까마득히 펼쳐지는 세상을 본다. 그 누구의 범접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첩첩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다. 그 침묵을 깨는 도로 하나가 산허리를 뚫고 길게 그어져 있고, 길 위로는 개미 만한 차량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땀을 식히고 다시 출발을 다. 이미 다른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국도였던 이 길은 근래 만들어지는 도로에 비해 그나마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천천히 내 페이스 대로 페달을 밟으니 끌바의 굴욕 없이 오를 만하다. 중간쯤에 있는 쉼터에 도달하니 두 아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의기투합하여 의리도 없이 달려간 맏형을 뒤쫓았다.


이화령 정상에 도착했다. ‘백두대간 이화령’이라고 새겨진 관문이 보인다. 해냈다는 짜릿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인증 도장을 찍는 열혈청춘의 손에 행복이 스민다. 


정상에 있는 휴게소가 나그네의 발길을 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깊은 산중 휴게소 치고는 꽤 규모가 크다. 휴게소가 내어주는 차 한 잔으로 가쁜 숨을 돌렸다.


내리막의 시원한 바람이 힘들게 올랐던 오르막에 대한 보상을 다. 연풍을 지나 소조령 조금 못 미쳐서 마애불상이 잠시 쉼을 준다.  


또다시 오르막으로 치닫는 소조령 고갯길. 그래도 이화령을 넘은 자신감이 소조령의 부담을 조금은 덜어준다. 아직은 남은 힘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소조령 고갯길을 넘는다.



왕의 온천, 수안보


어느덧 해는 서쪽에 걸렸다. 이화령과 소조령을 넘느라 지쳐있는 열혈청춘의 눈에 익숙한 수안보 연수원 사인이 보인다. 이곳은 우리가 몸 담았던 직장의 연수원이 있어 여러 번 왔던 곳이다.

수안보 입구

 수안보는 태조 이성계가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찾았고, 숙종이 휴양을 위해 자주 찾았다 해서 "왕의 온천"이라 불릴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자주 찾았을 때만 해도 수안보는 늘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기억은 어디 가고 사뭇 한산하기 그지없다. 옛 영화를 찾으려는 듯 중심가에는 이런저런 시설물들이 보이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을씨년스럽다. 썰렁한 길을 한 바퀴 돌아 인증센더에서 잠시 옛 기억들을 나눴다.


어둠이 질 무렵, 새재길의 종착점인 탄금대에 도착했다. 탄금대는 지난 남한강 종주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새재길 종주를 마쳤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내일 오천길 라이딩을 위해서는 충주버스터미널까지 가야 한다. 도심을 가로질러 조금은 위험한 야간 라이딩을 할 수밖에 없다. 몇 개의 모텔을 전전한 끝에 밤 8시가 넘어서 겨우 숙소를 잡았다. 삼겹살과 막걸리로 힘들었을 몸에게 보상을 하고, 악명 높은 새재길 종주를 마친 행복을 끌어안고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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