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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Oct 29. 2024

몸과 마음에 여유를 담는 오천길

(2023.10.23.)


오천(五川) 자전거길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행촌교차로에서 세종특별자치시의 합강공원까지 연결되는 총 105km의 길이다. 오천길은 새재길과 금강 자전거길을 연결하는 내륙 자전거길로, 쌍천, 달천, 성황천, 보강천, 미호강 등 다섯 개의 천을 지난다.

연풍 정류소

새벽 일찍 오천길 시작점인 연풍으로 가기 위해서 충주 버스터미널로 갔다. 6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 시간을 겨우 맞춰 아침도 거른 채 버스에 올랐다. 한 시간 정도 달려 연풍 버스정류소에 도착했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행촌교차로 인증센터 인증으로 오천길 라이딩을 시작한다.  


쌍천과 달천


행촌교차로에서 괴강교로 가는 길은 쌍천을 따라간다. 이른 아침, 천변은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뿌연 운무 속에 갇힌 강과 들녘은 한 폭의 수묵화다. 운무에 갇힌 강과 길, 흐릿하고 몽롱한 풍광이 신비롭다. 앞에서 달리는 동료들이 수묵화 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운무 속으로 사라진다.  나도 따라 안갯속에 묻힌다. 


강 길을 조금 벗어나면서 공도가 나온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들판과 마을이 보이고, 잔잔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괴강교 인증센터에 가까워지자, 쌍천은 달천으로 이어진다. 9시 조금 지나서 괴강교에 도착하여 인증을 하고, 괴산 읍내의 올갱이국 맛집을 찾았다. 한 가지 메뉴를 몇십 년 고집해 온 할머니의 올갱이국은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그만이다. 국물을 더 달라해서 배를 든든히 채우니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다.

쌍천의 수묵화


향수(香水)와 향수(鄕愁)


백로공원을 향해 라이딩을 이어간다. 성황천을 거슬러 올라 모래재를 넘는 길은 오천길 중 가장 힘든 코스다. 완만하지만 상당히 길게 이어지는 모래재는 작은 산 하나를 넘고서야 끝이 난다.


10월 하순을 달리는 들녘가을로 가득 차 있다. 황금 벼가 물결치던 들판이 하나 둘 추수를 마치고 빈들이 되어가고,   나뭇잎은 깊어가는 가을을 노랗게, 빨갛게 노래하고 있다. 증평 백로공원에서 인증을 하고 다시 강을 따라 달린다. 마을과 함께 군데군데 우사와 양계장이 보이면서 쇠똥과 닭똥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다들 역겨운 냄새에 소리를 지른다. 나는 가끔씩 시골길에서 만나는 이런 냄새를 향수(鄕愁)라고 부른다. 비록 누구나 좋아하는 향수(香水)는 아니지만, 어릴 적 익숙하게 맡아온 뒤엄자리 냄새와 쇠똥, 닭똥 냄새는 늘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그 냄새를 벗어나려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동료들 뒤에서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오랜만에 진한 고향 냄새를 맡으며 달린다.


파란 선을 따라 달리는 길

오천 자전거길의 가을


국토종주 자전거길에는 하늘을 닮은 파란색 선이 그어져 있다. 라이더들은 푸른 선을 따라 페달을 밟고, 그 선을 따라가면 마음이 편안하다. 가야 할 길을 정확히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향 냄새 은은한 길을 달리다 보니 갑자기 파란 선이 뚝 끊긴다. 국토종주 길에 파란 선이 끊기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불규칙하고 갈래길이 많은 시골길에서 파란 선이 끊기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감으로 그냥 직진을 했는데, 강 건너 있는 무심천인증센터를 지나치고 말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길을 잘못 든 걸 확인하고 5km 정도 알바를 하고서야 인증을 할 수 있었다.


국토 종주길의 파란 선은 라이더들에게는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국토종주를 하다 보면 파란 선이 끊기는 일이 종종 발생해서 라이더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길을 찾아가는 일은 결국 라이더들의 몫이긴 하지만, 이럴 때마다 국토 종주길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좀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미호강과 합강공원


미호강은 지금까지 달려온 네 개의 천과는 달리 강폭이 제법 크다. 미호강은 금강 본류로 유입되는 지류들 가운데 유역면적이 가장 큰 하천으로, 무심천 · 천수천· 조천 등의 지류를 한데 모아 마침내 부강 서쪽에서 금강에 합류한다. 이전에는 미호천으로 불리었으나, 2019년 7월 국가 하천으로 승격되면서 미호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둔치를 따라가는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라이딩이 편안하다. 스치는 가에 미호강 푯말이 보인다. 나는 이 고장 출신은 아니지만, 어쩐지 미호강으로 바뀐 이름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늘 보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개명(改名)을 하고 나타나서, 앞으로는 바뀐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할 때의 낯설음이랄까?

 

내게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청원군 현도면이 고향인 오랜 친구가 있다.  친구 덕에 오래전 여러 번 이곳에 왔기 때문에 미호천은 나에게 익숙한 이름이었다. 미호천과 미호강. 이름은 같은데 성(姓)이 바뀐 듯 어색하다. 나만 그럴까? 이 고장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합강공원이 가까워지면서 산허리를 타고 가는 길이 다소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른 자전거길에 비해 무난한 길이 이어진다. 오천길은 그야말로 충청도 사람들의 넉넉하고 순수 마음씨를 닮았다.


미호강과 금강이 합류하는 곳에 조성된 합강공원에 도착했다. 합강공원은 금강 종주길에서도 만났던 곳이어서 눈에 익숙하다. 합강공원 인증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오천길 종주를 마무리했다. 이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세종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금강 종주길을 따라 달려 세종시와 연결되는 이응교를 5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봄에 보았던 이응교가 여름을 이겨내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한 바퀴를 돌며 잠시 쉼표를 찍는다. 해가 서서히 서녘에 걸린다. 이응교에서 만난 금강의 일몰이 지친 우리들에게 잔잔한 행복을 안긴다.

이응교에서 만난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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