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환 Nov 05. 2024

푸른 내음과 해안 절경을 품은 동해안 길 5

('24.4.27.~4.28)


맛집 기행으로 시작하는 아침


속초의 아침이 붉은 태양과 함께 밝았다. 어제 분위기에 취해 조금 많이 달렸기 때문에 아침은 얼큰한 국물이 필요했다. 열이 형이 인터넷 조회를 하더니 대포항 앞에 있 곰치탕 맛집을 추천한다. ‘새벽 6시에 오픈하여 오후 2시면 문을 닫는다’고 소개되고 있다. 셋이서 만장일치로 대포항을 향했다.


동해의 뜨는 해를 마주하며 곰치탕집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허름하고 자그마한 집이다. 메뉴도 곰치탕과 생태탕, 딱 둘 뿐이다. 맛집은 메뉴가 단출하다. 가끔씩 인터넷을 믿고 찾았으나 기대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커다란 양푼에 가득 담겨온 곰치탕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후 두시면 문을 닫는 맛집은 뭐가 달라도 랐다. 얼큰하게 속을 풀고 나니 오늘 하루가 편하게 열리는 느낌이다. 두 바퀴 여행으로 만난 또 하나의 맛 집. 오늘 아침, 우리의 선택은 행복이다.

대포항 맛집


고독한 파도와 나눈 커피 한 잔


4월도 마지막을 치닫고 있고, 봄이 완연한 계절. 하늘은 더 이상 맑을 수 없을 정도로 구름 한 점 없지만, 어제와는 전혀 다른 날씨다. 아침부터 날이 쌀쌀하고 바람조차 거칠다. 대포항에서 설악항을 거쳐 동호해변 인증센터까지 달렸다. 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이 시리다. 하조대 해변 넓은 백사장  끝자락에 커피숍이 보인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보통 라이딩 도중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오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창가에 앉아 시리도록 눈부신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본다. 거친 바람이 몰고 온 파도가 하얀 포말을 품고 밀려와 부서진다. 싸늘한 날씨 때문인지 백사장은 썰렁하고, 인적 드문 해변가엔 파도만이 고독하게 울어댄다.

파도의 고독을 한 스푼 담아 커피 한 모금 마신다. 행복 한 모금을 마신다.

하조대의 쉼표


주문진 항, 홍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담고 페달을 밟는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종착점인 경포해변 인증센터까지 약 40km 밖에 안 남았다. 시간이 넉넉하다. 마음에 여유를 싣고 3·8선을 지나 지경공원에서 인증을 마치고, 주문진항을 향해 달린다.


주문진은 홍게로 유명하다. 나는 주문진항에 홍게 무한리필 음식점이 있다는 걸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얼마 전 다녀왔는데 가성비가 최고였다 했다. 바다 생물 중  종류를 특히 좋아하는 나는 은근히 홍게를 실컷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안고 달렸다. 주문진항에 들어서니 홍게 음식점들이 나를 유혹한다. 무한리필 홍게점도 보인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무참히 스러지고 말았다. 나의 강력한 욕구는 열이 형과 청이 아우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나 보다. 몇 번을 얘기해도 "홍게는 살이 별로 없고, 맛이 없다!" 들은 척을 안 한다. 결국, 늦은 점심은 내가 간절히 원하던 홍게에서 생선구이로 바뀌었다. 생선구이도 맛은 있었지만 끝내 아쉬움이 남는다.


"형! 그리고 아우야! 다음에는 홍게 좀 실컷 먹어보자!"


주문진항과 인근 해변


라이더들의 여신, 인증센터


이제 우리는 동해안 마지막 인증센터인 경포해변으로 간다.

국토 대종주 길에는 내륙에 76개, 제주도에 10개 등 총 86개의 인증센터가 있다. 우리 열혈청춘이 ‘22. 11월 말 정서진 인증센터에서 대장정의 첫 인증을 시작한 지  벌써 1년 5개월이 흘렀다. 이제 제주도를 제외한 내륙의 인증센터 76개 중 단 1개만 남았다.


국토대장정을 하는 라이더들은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 '인증센터'를 반드시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만남은 어찌 보면 라이더들의 운명이다. 그 운명적 만남 없이는 국토대장정을 마무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난 그녀를 '라이더들의 여신'이라 부른다.


제일 먼저, 그녀는 행복의 여신이다.


라이더들이 힘들어 지칠만 하면 반드시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를 만나면 라이더들은 너 나 없이 늘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녀가 입고 있는 빨간 드레스가 그리 예쁠 수 없다. 그 예쁜 드레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녀는 짜릿한 성취감의 여신이다.


라이더들은 그녀를 만날 때마다 짜릿한 성취감을 맛본다. 그녀의 품에 안겨 인증 도장을 찍을 때 느끼는 그 성취감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인증 도장을 찍는 일은 그녀와의 짜릿한 입맞춤이다.


그녀는 쉼표의 여신이다.


그녀는 지친 라이더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그녀는 힘들게 달려간 라이더들에게 조금도 짜증 내는 법이 없다. 환하게 웃으며 인증사진을 함께 찍어 주고, 편안히 앉아 쉬면서 호흡을 고르게 하는 쉼터의 역할을 한다. 바쁜 삶의 여정에 쉼표가 필요하 듯, 그녀 힘차게 달려가는 라이더들의 쉼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보급의 여신이다.


인증센터는 또다시 길을 떠나는 라이더들에게 때론 물을 제공하고, 간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인증센터의 지리적 한계로 인해 보급처가 없는 곳도 지만, 그녀는 라이더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라이더들의 여신, 인증센터


내륙의 마지막 인증


우리 열혈청춘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76번째 인증센터인 경포해변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빨간 드레스를 곱게 입은 그녀는 오늘따라 입술에 붉은 립스틱까지 바르고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아준다. 우리도 반갑게 그녀의 품에 안겨 기쁨의 포옹을 했다.


한강(아라뱃길, 남·북한강) 16개, 낙동강 12개, 섬진강 8개, 영산강 7개, 금강 6개, 새재오천길 10개, 그리고 동해안길 17개의 인증을 마쳤다. 예쁜 그녀들의 입술에 76번의 짜릿한 입맞춤을 마쳤다.


이제 우리 열혈청춘은 곧 제주도 환상길로 마지막 여정을 떠날 것이다. 그날을 기약하며 행복을 싣고 강릉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서울로 가는 발길이 유난히도 가볍다.


내륙의 마지막 인증을 마치고...


이전 23화 푸른 내음과 해안 절경을 품은 동해안 길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