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밤 Dec 14. 2023

떨어뜨린 빵 조각은 누가 먹을까?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는 바로 빵입니다. 식빵, 베이글, 모닝빵 등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스스로 ‘빵 순이’를 자처하며 양손에 식빵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귀엽기만 합니다.

어김없이 간식으로 빵을 먹던 아이가 창밖 놀이터를 내다보더니, 비가 그치고 날씨가 개었다며 나가자고 애교를 부립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향합니다. 아이의 다른 쪽 손에는 반쯤 남은 빵이 들려있습니다.

놀이터에 도착한 아이는 마치 자동차의 운행모드를 바꾼 것 마냥 쌩쌩 내달립니다. 그러다 얼마 안 되어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떨어뜨렸습니다. 아이의 표정을 살핍니다. 이내 아이가 말합니다.

“괜찮아, 개미랑 지렁이들한테 맛있는 빵을 준 거니까.”

<공자가어>, <여씨춘추>에는 ‘형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하루는 형나라 사람이 사냥 중에 활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활은 찾지 않고 이런 말을 합니다.

“형나라 사람 누군가가 주울 것이니 괜찮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공자가 말했습니다.
“형나라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다. 허나 ‘형나라’라는 말을 빼는 것이 옳다.”

공자의 말을 전해 들은 노자가 말했습니다.
“공자의 말은 참으로 현명하다. 허나 ‘사람’이라는 말을 빼는 것이 옳다.”

형나라 사람은 자신이 잃어버린 활을 ‘형나라에 사는 사람’ 누군가가 주울 것이니 괜찮다고 말합니다. 자기 나라 사람을 위하는 그 마음은 개인의 사리사욕에 집착하는 사람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열린 자세입니다. 그런데 이에 더 나아가 공자는 ‘형나라’를 빼고 ‘사람’이면 괜찮다고 말합니다. 한 나라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하는 그 마음은 과연 세계 4대 성인의 위대한 가르침이라 할만합니다. 마지막으로 노자는 ‘사람’이라는 말을 빼라고 말합니다. 즉. 잃어버린 활을 사람이든 자연이든 그 어떤 것들이 취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무위자연’의 삶을 강조했던 노자의 가르침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는 떨어뜨린 빵 조각을 개미와 지렁이에게 선뜻 나눠 주었습니다. 그렇게 빵을 좋아하는 ‘빵 순이’가 말이죠. 물론 마침 배가 조금 불러왔을지도, 땅바닥에 떨어진 빵을 주워 먹기가 싫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의 그 마음이 옛 성현들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줍니다.

“채원아, 너무 멋진 생각인걸. 개미랑 지렁이가 배불리 먹어야 우리 사람도 잘 살아갈 수 있어.”

“응? 지렁이가 배부른데 우리가 왜 잘 살아?” 아이가 되묻습니다.

“개미랑 지렁이가 많이 먹고 열심히 일해야 땅이 건강해지고, 땅이 건강해져야 벼랑 양파, 오이 같은 채소가 잘 자라거든. 채원이 채소 많이 먹어야 건강해지는 거 알지?”

아이는 채소 이야기에 조금 시무룩해졌지만 이내 미끄럼틀로 뛰어갑니다.

그런데 출근길에 들고 나갔던 우산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름 모를 그 누군가 혹은 그 무엇이 사용할 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아내의 한소리는 각오해야겠습니다.

이전 07화 꽃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