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밤 Dec 11. 2023

모두 다 꽃이야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이가 즐겨 부르는 동요의 가사말입니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이의 흥얼거림에 ‘멜로디가 참 좋다’라고만 생각했는데, 가사를 곰곰 되뇌어 보니 그 의미가 참으로 굉장합니다. 산에도 들에도 길가에도 꽃은 피고, 그 꽃은 저마다의 색으로 피어나 씨를 품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게 합니다. 그러니 의미 없이 피는 꽃은 없습니다.

40년을 살아오는 동안 ‘난 어디서 핀 꽃일까’라는 막연한 의문을 품어왔습니다. 기름진 땅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화려하게 피어난 꽃들이 그저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이의 노래를 통해 위로받습니다. 내가 피어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곳이 산이든 들이든 길가든 이제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꽃이 지닌 가장 원대하고 순수한 목적인, 다음 세대를 온전히 이어가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노랫말 따라 딸아이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나길 희망합니다.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한 성장이 아닌 스스로 배우고 깨우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때로 아이가 고난을 마주할 때면 그저 곁을 묵묵히 지켜주며 내면이 단단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하루는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는데,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곁에 앉습니다. 그러고는 아빠가 읽는 책이 궁금한지 이런저런 질문을 합니다. 표지의 제목을 더듬더듬 읽으며 “장자가 뭐야?”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장자> 이야기 중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장자에는 목재로 쓸 수 없는 큰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거대한 나무는 줄기가 뒤틀리고 옹이가 가득해 목재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쓸모없는 나무라며 못난 나무로 치부합니다. 그런데 장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장자는 “그 거대한 나무는 짐짓 쓸모없어 보이지만 큰 가지는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도끼질을 당하지 않아 천수를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장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아이가 말합니다.
“맞아. 우리 가지반 친구들도 키 큰 친구, 작은 친구 있는데, 전부 다 예뻐.”

나무는 생김이 어떠하든 그저 모두가 나무입니다. 목재로 쓰이는 것을 참 쓰임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람의 기준일 뿐입니다. 나무의 본래의 쓰임은 뿌리 뻗어나가며 땅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물을 머금고 내뿜어 자연의 순환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가지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생명들에게 쉼을 주죠.

맞습니다. 어디에 자리를 잡든, 생김이 어떠하든 모두 다 꽃이고 나무입니다. 아이의 흥얼거림에 다시 집중해 봅니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순수한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아이의 음성이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랫말입니다.

당신도 저마다의 색으로 아름답게 피어난 꽃입니다.

 

이전 08화 떨어뜨린 빵 조각은 누가 먹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