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작두를 대령하라~~~~!!!
어젯밤 늦게 잔 아들이 늦잠을 자고 있었다. 방학이라 그냥 자게 놔뒀다. 그런데 10시 넘어서까지 자길래 깨울까 하다가 이틈에 도서관이나 가서 책도 빌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영화 2편도 빌릴 의향으로 대충 아무거나 걸쳐 입고 밖을 나왔다. 그런데, 아파트 주차장에 왠지 낯익은 차가 한 대 보였다. 설마 왕언니차는 아니겠지?
언니가 운전석에서 손을 흔들었다.
"앗, 언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뭐야, 자기 우리 오늘 만나기로 했잖아?"
"네에?"
"카톡을 띄엄띄엄 보는구나! 뭐 그럴 수 있지."
"아하~~ 만나기로 한 날이구나!"
"그런데, 어디가?"
"아, 저 책 빌리러 OO도서관 갈려고요."
"그래? 우리 11시 넘어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남아서 그냥 일찍 김포에서 넘어왔어. 어차피 여기서 유튜브나 하고 기다릴 참이었는데 잘됐다. 야! 타! 도서관에 데려다줄게!"
언니가 도서관에 데려다주어서 다행히도 이 뜨거운 날씨에 무거운 책가방을 들지 않아도 되었다. 언니는 참 운전을 잘한다. 늘 언니는 말한다. 내가 대리를 뛰었으면 돈을 많이 벌었다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언니는 차에 올라서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언니에게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게 하는 운전이야말로 언니의 행복이라면서...
도서관에서 언니가 밖에서 기다리므로, 정말 빨리 책을 열 권 정도 빌리고 DVD를 빌리려고 하는데, 아들이 좋아하는 쥐라기공원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빠른 스캔능력을 발휘해 DVD코너를 두 번 훑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그냥 대충 빌리고 나왔다.
"지금 J엄마가 데리러 오라네... 나 냉동실에 넣어 둔 빵 주기로 했잖아!"
우리는 근처에 있는 J엄마의 아파트로 출발했다. 곧 J엄마가 빵을 한 보따리 가지고 나왔다.
빵무더기가 언니의 뒷좌석의 한 자리에 우뚝 솟아있었다. 빵산 인줄...
잠깐 아이에게 들려서 밥을 차려 준 후 다시 나와 H엄마, J엄마, Z엄마(왕언니)와 함께 커피숍에서 잠깐 우린 수다를 떨었다.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을까? 내가 조급해졌다. 주섬주섬 가방을 메고, 모자를 쓰고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 언니 갈려고?"
"전 이제 가볼게요! 아이 공부를 좀 시켜야 해서요."
"어머, 이 언니 봐라! 아까 전에는 많이 내려놨다면서 거짓말도 잘해! 알아서 공부하라고 하고 우리 이제 영종도로 넘어가자! 진짜 OO언니가 김포에서 오랜만에 왔는데 어딜 가! 이제 중학생이니까 알아서 할 거야!"
나는 납치를 당한 듯 섬인 영종도로 끌려갔다. 아차! M엄마가 영종국제도시라고 하라고 하랬지.
우리는 갑자기 오늘 휴무인 T엄마의 집으로 급습을 했다. T는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갔고, T의 동생인 있는 듯 없는 듯 바람 같은 E가 조용히 우리를 맞아 주었다. 곧 M엄마가 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T엄마는 급하게 집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린 더러워도 괜찮다고 하는데 T엄마는 계속 걸레질을 했다. 그리고 Grumpy, angry라고 쓰여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뭐야? 혹시 이 티셔츠 입고 애한테 화낸 거 아니야? "
"어머, 어떻게 알았어, 언니? 나 어제 T를 새벽 1시까지 못한 숙제시키고 화냈잖아? 이 옷 입고..."
그러면서 T엄마는 노트한 켠에 있는 각서를 보여 주었다.
"내가 T가 좋아하는 자전거 천만 원짜리 사준다고 했어. 그리고 간섭도 안 하고 잔소리도 안 하고, 학원은 두 군데 보내주고 밥 해주고... 그 대신 T 보고 알아서 공부해서 대학가라고 했다. 여기 봐봐. 각서를 이렇게 만들었어."
"그래서 사인했어?"
"아니, 안 하더라고"
"... 그랬구나."
그때, M엄마가,
"난 어제 M친구들을 차에 태워서 학교에 데려다줬잖아. 세 명이 뒤에 쪼르륵 앉아 있는데 아주 가관이더라고. 화장을 어찌나 떡칠을 했는지... 그거 뭐야? 얼굴에 분칠을 너무 하얗게 해 가지고 가부키화장 있잖아? 그걸 했더라고! 내가 한 마디 했잖아. '얘들아, 지금 너희들이 한 화장이 설마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옆에 친구들의 얼굴을 봐봐. 예쁜지? 얼굴이 동동 떠다니고 있어. 달걀귀신들 같아! 적당히 하자!' "
"그랬더니 뭐래?"
"지들끼리 웃지 뭐! 성격은 어찌나 좋은지 몰라!"
"진짜 얘들 착하네."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섭게 나는,
"OO 머리를 직접 이발기로 깎아줬는데, 여름이어서 뒷머리는 엄청 짧게 깎았어. 그리고 가위손으로 빙의해서 숱가위로 앞머릿속에 있는 머리를 신나게 깎다 보니 심하게 짧게 깎았더라고.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머리가 흐트러지기라도 하면 땜빵이 큰 게 보이더라고, 그냥 혼자 킥킥대고 웃었어. 그런데 OO도 느낌이 있었는지 학원 갈 때 머리를 너무 짧게 깎아놓아서 도토리 같다며 모자 쓰고 가더라고!"
"하하하 언니, 이제는 제발 미용실 가자. OO가 착하니까 언니 봐주는 거야! 우리 애 같았으면 난리 난다! 그나저나 우리 H는 수학진도가 느려서 큰일났어. 아직도 2학기선행도 못했으니... 곧 방학 끝나는데... 어쩌냐?"
H엄마가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때 H가 송도의 OO수학영재학원을 작년에 혼자 그 어려운 레벨테스트합격했을 때 다녔어야 했어!" M엄마가 안타까운 듯 대꾸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M엄마와 H엄마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니, 애가 안 다닌다는데 내가 억지로 어떻게 보내. 고집이 황소고집인데."
"그래도 보냈어야지. 그 고집을 어렸을 때 꺾었어야지."
"아 안되더라고... 맹모삼천지교라고 했는데 우리 H가 송도에서 학교를 다녔으면 자연스럽게 OO수학영재학원에 갔을 텐데..."
"그러니까 언니 그때 풍림아파트로 우리랑 같이 집 보러 갔을 때 이사를 갔었어야지."
"뭐야, M엄마, 역시 판관 포청천이야. 딱 판결을 내려주네... 하하하하"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익숙하다. 오늘은 M엄마의 이성의 뇌가 확실히 작동을 잘하고 있는 듯했다.
그때, T엄마가 갑자기 가만히 혼자 놀고 있던 E에게 판관 포청천의 이마에 있는 달이 필요하다며 종이에 달을 그려서 오려달라고 했다. 설마? E가 조그마한 노란색 달을 가져왔다!!! T엄마가 그 달모양의 종이를 M엄마의 이마에 붙여주었다. 그리고 집에 있는 가장 멋진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나는 개작두가 필요하다고 T엄마에게 명령했다. T엄마는 개작두가 될 만한 것을 열심히 찾더니,
"개작두될 만한 것은 없고, 이건 있다. 등긁개!"
T엄마는 등긁개를 들어 M엄마의 뒷머리에 비녀처럼 놓았다. 판관 포청천의 모자의 뒤쪽 장식처럼 보였다.
"그런데 얼굴이 좀 검해야 하는데.."
"아니야. 지금도 충분히 검해. Y물놀이하는데 뙤약볕에 4시간씩 있어서."
"하하하~~빨리 사진 찍어~~!!!" 우린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런데, 달이 너무 작은 것 같지 않아?"
조용히 얌전히 어디선가 큭큭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E가 아까보다는 조금 더 큰 달을 그려 T엄마에게 주었다. M엄마는
"우리 E는 우리 집에 다시는 놀러 오지 말아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