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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언어체험센터에 가다.

영어회화는 즐겁지만...

by bony

결혼 전에 영어회화학원에 약 2년 정도 다닌 적이 있다. 그 학원에 모든 단계를 마쳤었지만,

나의 영어는 좀처럼 늘지는 않았다. 여전히 외국인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영어에 대한 나의 사랑은 꾸준했다.

아이를 정신없이 키우면서 영어회화공부를 손을 놓은 지 10여 년이 지나갔다. 그런데 무슨 일이었는지 갑자기 국제언어체험센터의 기초영어회화 강좌에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아침, 첫 강좌는 시작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문을 열었는데, 강사님이 남아공에서 오신 A라는 분이셨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려 보였다. A는 내게

"Hello! Welcome! What's your Korean name?"

나는 긴장을 풀고 자신 있게 내 이름을 말했다.

이 정도야. 풋!

그리고 누군가가 물었다.

"Can you speak Korean?"

"Sure, my wife is a Korean. "

아내가 한국사람이라니!

놀랐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가 한참 유행 중이라 A선생님을 포함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가뜩이나 잘 못 알아듣겠는데 마스크를 써서 입모양이 도대체 보이지 않았다. 또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사오정인데... 큰일 났다.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하기 시작하자 나는 느꼈다. 여기 초급반이 아니다.

해외에서 살다 온 사람, 대학원에서 영어전공하고 있는 사람, 오케스트라단장인데 영어가 유창한 사람, 주부지만 영어회화학원을 몇 년 다닌 사람 등등...


문득 전에 M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년 전, 구청에서 기초 영어회화강좌가 있어서 신청했다고 했다. 그런데 수강생들이 다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 M엄마는 자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 M엄마는 놀라 자빠졌다. 거긴 이름만 초급반이었다. 수준급의 영어를 구사해서 결국 M엄마는 하루만 나가고 다시는 가지 않았다고 했다.


M엄마가 겪었던 일이 내게도 다가왔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충 자기소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분이 자기소개를 하자 나는 안도했다. 나와 같구나. 아니 나보다 더 못한다. 행이야. 외롭지 않겠어.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열정적인 A선생님은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화면에 나온 지문을 돌아가면서 읽는데, 20대의 그분의 차례가 되었다.

"My eyes, no see, no glasses. at home."

뭐야? 심각했다. 바디랭귀지도 총 동원해서 간신히 의사소통했다. 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그래, 영어회화는 저렇게 무대보로 하는 거야! 아는 단어 총 동원해서 되던 안되던 말이지.

나도 은근히 자신감이 들었다.

놀랍게도 두 달간의 영어회화수업 동안, 그 여성분은 영어가 늘었다. 신기했다.


난 정말 수업을 열성적으로 준비해 가면서 들었다. A선생님이 내가 발표할 때 지적을 하나도 안 해주시고 엑설런트를 추임새로 계속 넣어 주실 때 왠지 모를 희열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내가 일주일 내내 준비한, 예정대로 하기로 한 수업을 하지 않았다. 망했다. 나는 내 차례가 되기 전에 머릿속으로 어떤 말을 할지 시뮬레이션을 계속 돌렸다. 다른 사람들의 발표소리가 전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경험. 발표가 재밌었는지 다들 웃는데, 나만 웃을 수 없었다. 외감을 느낄 겨를 수 없이,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른다.

"Jill, have you ever had that experience?"

모르겠다. 막 말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하루는 남들보다 수업을 일찍 가서 혼자 강의실에 있었을 때였다. A선생님은 내가 영어를 잘한다는 착각을 하신 게 분명했다.

내게 말을 시키기 시작했다.

한국애들은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워 영어를 잘한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의 수업이 어떠냐고 물었다.

난 거기까지 딱, 5분 동안은 무슨 말을 하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정말로 빠른 말로 더 얘기하는데 난 순간 또 멍해졌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보아하니 단어도 어려운 걸 쓰시는 듯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경청하는척했다.


그렇게 두 달간의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며칠 뒤,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A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영어실력은 불행히도 그 수업이 난 후에 다시 퇴행했다.

도망갈까?

피하기엔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이 너무 좁다.

하필 커다랗고 하얀 눈이 내게 레이저를 쏘듯 쳐다보았다. 이 딱 마주친 것이다.

간단한 인사말을 나눈 뒤, 서로의 아들을 소개했다.

선생님도 이 동네에 살고 계셨다.

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내게

"Bye!"

하고 가셨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직까지도 영어는 전히 즐겁지만 어렵다.


그리고 다음에 스페인어강좌에 등록했다.

꼬모 에스 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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