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늘 개운하게 일어나는 편이다. 수면장애도 없을뿐더러 현재 살고 있는 집은 건물에 꼭대기 층이어서 층간 소음도 없기 때문이다. 맑은 정신에 가벼운 몸으로 기상하는 것은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만든다. 숙면이 삶의 질을 올려주는 것은 확실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침구류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거실로 나왔다. 비구름이 물러간 파란 하늘에 시선을 두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비가 내린 다음날이라서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비가 온 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하늘을 보고 있으면 몸에 있는 구멍들이 모두 열려 그곳으로 파란 정령들이 들어와 몸속을 정화시켜 주는 것 같다. 나는 한동안 눈을 감고 창틀에 기대서 푸른 바람을 맞았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는 일은 없고 주기적으로 영감을 얻기 위한 전시회와 사진전을 보러 가는 날이다. 그곳에서 앞으로의 트렌드나 부족한 스킬들을 공부하는 편이다. 평범한 하루가 될 예정이지만 왠지 특별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마음에 들뜬 기분으로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치자 공복감이 밀려와 식빵을 구워 크림치즈를 바르고 절인 오이를 얇게 썰어 올려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외출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낯선 번호이다.
"여보세요."
"박종익 씨."
"네."
"......."
3초 뒤 그쪽에서 먼저 전화가 끊겼다. 어제와 같은 목소리의 남자였다. 낮은 톤의 40대 중 후반의 음성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그 나이대의 사람들은 없었다. 그리고 장난전화라고 보기에는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다. 분명히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르는 번호. 머릿속이 번잡하게 헝클어졌다. 이틀 연속으로 예사롭지 않은 통화가 이어졌다. 나는 불길한 마음이 들었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며 겨드랑이에서 식은땀이 났다. 나는 신발을 벗고 주방으로 가서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머그잔에 물을 따르는 순간 싱크대에 구토를 했다. 방금 먹은 샌드위치가 형태를 잃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이번에도 아무런 예고가 없었다. 마치 틀기만 하면 나오는 수돗물처럼 안에 있는 것이 모두 쏟아져 나올 뿐이다. 심지어 구토를 했을 때 가슴을 죄어오는 압박감이나 식도가 따끔거리는 통증, 불결한 냄새마저 없었다. 긴 숨을 편안하게 내뱉는 것 같다. 구토를 하고 나서의 입 안에 감도는 불쾌함도 없었다. 정말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속을 비워낸 뒤 물을 한 잔 마시고 나는 다시 현관을 나섰다.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소파에 그대로 쓰러졌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저녁 8시인데도 아직 공복이었다. 구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늦은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뒤처리가 까다로운 야외에서 구토를 하게 되면 꽤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공복감을 견뎠다. 길거리를 지나다 음식냄새가 풍겨오면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때마다 위에서는 신물이 계속 올라오고 입 안에서는 단침만 계속 솟아났다. 집에 도착하면 무엇이든 배가 터지게 먹겠노라고 다짐했지만 막상 집에 도착하니 배달앱에 터치를 하는 것마저 고역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결국 라면을 먹기로 했다. 물이 끓어올랐을 때 또 한 번 전화가 왔다. 역시나 모르는 번호다. 같은 번호로 연쇄적인 전화가 오면 차단을 해도 되지만 프리랜서라는 직업상 모르는 번호로 업무 관련 전화가 잦기 때문에 받지 않거나 차단할 수는 없었다.
"여보세요."
"박종익 씨."
이번에도 같은 목소리였다. 어제부터 같은 사람이 다른 번호로 계속해서 전화를 거는 것이다.
"네. 어제부터 계속 전화하는데 누구시고 용건이 뭐예요?"
나는 상대방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되물었다.
"......."
이번에도 3초 뒤에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분한 마음에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화를 낼 힘도 없어서 빨리 라면을 먹고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라면을 다 먹고 이를 닦기 위해 욕실로 들어섰을 때 또 한 번 구토를 했다. 변기에는 하얀 실지렁이 같은 라면이 전혀 소화되지 않은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조금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