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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Oct 20. 2022

복지카드와 장님 모자


저 집을 지켜본 지도 몇 달이 지났다. 뭐 그만큼 내가 거리에 나앉은 지도 몇 달이 지났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나에게도 불행이 찾아올지는 몰랐다. 몇 달 전 나는 작은 건설업체에서 일하며, 혼자 벌어 혼자 사는 평범한 젊은이였다. 부모님도 나처럼 색깔 없는 삶을 살아서 집에 남은 재산이라곤 시골에 있는 집뿐. 그래도 그들은 양심이 있었는지 자식은 나 하나밖에 낳지 않았다. 일찍이 그런 집구석에 정을 붙일 수 없어 도시로 나왔고, 대학도 나오지 못한 나는 막일 꾼에서 그나마 관리직 직원으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금세 부동산경기는 안 좋아졌고 나처럼 경력도, 내세울 만한 학력도 없는 사람은 떨어져 나갔다. 빌딩 숲에 낙엽이 떨어지듯 실직자들이 바닥에 쌓였고, 웃기는 얘기지만 말 그대로 떨어져 자살한 사람들도 더러 생겼다. 낙엽같이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은 모두 억울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나 같은 능력 있는 사람이 길거리에 내몰렸다.’, ‘마누라는 벌써 새 남편을 찾았더라’, ‘대통령이 잘 못 해서 이런 것이다.’ 대부분 울분에 찬 푸념들이다. 이렇게 푸념하기를 지나면 낙엽으로 살다가 썩는 사람. 새로 일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 도둑질이나 하며 버티는 사람 등으로 길이 정해진다. 나는 가장 처음 썩는 사람에 가깝다. 말 그대로 깡통을 차고 구걸하는 삶이다. 슬퍼 보이지만 몇 달 전엔 일감을 구걸하다가 지금은 조금 다이렉트로 돈을 구걸할 뿐이다. 구걸하는 삶을 사는 건 빌딩에 사는 사람들이나 나나 같다. 개똥철학이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면 아마 나도 빌딩 위에서 떨어져 바닥에 찌그러진 시신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푸념과는 멀지만 나 역시 꽤 노력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입에 풀칠도 못 하게 생겼으니,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순 없다. 그런 나에게 저 모자는 어쩌면 동정의 대상이기보단 보통의 사람이고 이따금 부러워지기도 한 사람들이었다.

 

저 모자는 매우 특이하다.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함박눈처럼 쏟아지면 저렇게 될까? 엄마는 눈이 보이지 않고, 아들은 귀가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모두 아주 중증이라 서로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은 말도 하지 못한다. 아마 듣지를 못하니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그는 그저 끙끙대는 대형견 같은 소리만 낼 줄 안다. 그래도 감정에 따라 목소리가 선명하게 달라지는데, 짜증을 낼 때는 목이 턱 막힐 때까지 소리를 지른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소리 지르는 쪽이 더 힘들어 보이지만 말이다. 엄마의 경우도 대단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눈을 가만히 감고만 있지 않다. 선글라스 같은 것도 끼지 않는다.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주 눈꺼풀을 움직이고 그럴 때마다 선명한 흰자들이 문득문득 보인다. 그 선명한 흰자와 눈이 마주칠 때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운명의 장난처럼 눈이 안 보이는 엄마와 귀가 안 들리는 아들은 앞서 말했듯 서로 의지하고 지낼 수밖에 없다. 그들 간엔 모성이나 효심보다 더 짙은 생존의 끈끈이가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편의점에 출몰한다. 나는 남겨놓은 예금 조금과 이따금 구걸받는 돈으로 그날의 먹을거리들을 살 수 있다. 먹을거리래 봐야 라면과 우유뿐이고, 그마저도 하루에 한 번 살까 말까 한 정도이다. 하지만 저들은 아침, 저녁으로 이곳에 들른다. 아들은 꽤 장성해서 내 또래처럼 보이지만 늘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음료수가 먹고 싶어 오고, 엄마는 담배를 산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복지카드로 계산된다. 복지카드는 국가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어준 것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저들에게 지원해준다. 저들은 꽤 중증이고 둘 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적당히 먹고살기 충분한 돈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이따금 술도 사 가는 것을 보니 나 같은 거지들이 보기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편이다.

 

“뭔 장애인 놈들은 먹고사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배곯고 있으니 나라가 개판이지. 안 그래요?”

 

어제 처음 만난 걸인이 저들을 쏘아보며 말한다. 이자는 뭣하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직 깡통 속에 자존심이 조금 남아있는 부류인 듯하다.

 

“뭐…. 그렇긴 하네요. 별수 있겠습니까”

 

“저 복지카든지 뭔지 슬쩍해버릴까요?”

 

“네…? 아이 그래도 좀….”

 

샌님 같기는. 걸인은 저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사실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곤 있다. 남의 돈을 슬쩍하는 건 어려워 보여도 저들은 몸도 불편하니 대충 집어서 도망치면 결코 날 잡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마음속엔 일말의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가 남아있어 도둑질을 시도해 본 적은 없다. 게다가 장애인의 것은 더더욱 후일로 미루는 편이 좋았다.

 

깡통은 나날이 비어 간다. 날씨도 제법 쌀쌀해지는 게 겨울이 다가옴이 느껴지고 있다. 길바닥에서 맞이하는 겨울은 처음이라 걱정이 된다. 몇 년 일찍 거지가 된 사람들은 서둘러 헌 옷들을 모은다. 너무 많이 모아 쌓아두면 구청직원이 볼 수 있으므로 야금야금 비밀스럽게 숨겨둔다. 누구는 다리 밑, 누구는 폐가. 이래저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것을 보면 썩 바퀴벌레 같다. 이제 모아둔 돈도 바닥을 보인다. 20만 원쯤이 겨우 남은 처지다. 막노동을 하고 싶어도 풀리지 않는 부동산경기 때문에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고, 매일매일 중개소에 갈 힘을 잃었다. 하지만 조만간 정말 일을 안 하면 라면도 못 사 먹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게 나를 다급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도 역시 장애인 모자가 온다. 아들이 엄마를 질질 끌며 다니고 후욱 후욱 큰 숨소리를 낸다. 엄마 쪽도 허공에 팔을 휘두르며 가끔 번뜩이는 눈알이 허공을 응시한다. 아들이 내는 대형견 같은 소리는 마치 시각장애인이 데리고 다니는 안내견 같은 인상을 준다. 그들은 오늘 담배 두 갑과 햇반, 라면, 어린이 음료와 과자들을 잔뜩 사 갔다. 나는 그들이 가게 될 포근한 집에 대해 생각한다.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포근한 잠자리에 누워 담배를 태우고, 과자를 먹을 것이다. 기분이 좋아지면 술도 마실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단잠에 들 수도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본 기억이 없다. 게다가 배가 비면 바람은 더욱 살갗에 가까워져 웅크리지 않고선 잠시도 있지 못하게 된다. 가끔 보이는 뉴스엔 지난 몇십 년간 쌓인 고령화 문제와 세계적인 경제 위기, 뭐 이런저런 악재들로 사회는 그야말로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걸인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에 더해 아사자들까지 곳곳에서 나오고, 편의점 강도 같은 생계형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내 옆에서 종일 습관적으로 대통령 욕을 하던 걸인도 며칠 전부터는 죽은 자기 아내가 보인다는 소리만 중얼거리고 있는 것으로 봐선 굶어 죽든, 얼어 죽든 할 것 같다. 나 역시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될 것이다. 편의점 강도 사건 이후 편의점들은 낮에만 문을 열기로 했다. 어떻게 소식을 접했는지는 모르지만, 장애인 모자도 그 시간에 맞춰 편의점에 도착했다. 생필품 한 무더기와 담배, 술, 어린이용 음료를 구매했다. 그의 아들도 추운지 연신 몸을 떨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옆에서 중얼거리던 걸인이 문득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열심히 산 놈이 살아야지, 왜 저런….”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복지카드가 저들을 살리고 우리를 죽인다. 직접 죽이는 것은 아니지만 죽게 내버려 둔다. 나나 옆에 걸인은 어떻게든 살려고 중개소를 들락거려도 밥 한 끼 먹지 못하는데 저들은 왜 굶지 않는가.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다는 생각은 그동안 굳게 얼어있던 죄책감을 쉽게 녹여 없앤다. 나는 그들 곁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아들이 꽤 멀리 뒤처졌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복지카드로 산 물품들을 소매치기해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갑작스럽게 틀어졌다. 노모는 누군가 발걸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자기 아들을 찾았다. 그리고 그 아들의 손목이 있어야 할 곳에 내가 있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괴성을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나는 몸이 얼어붙어 어색하게 그녀를 따라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아들은 상황을 파악하는 데 오래 걸렸지만, 저 멀리서 이내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은 짐승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둘 사이에 끼어버린 나는 내 신체 조건과는 무관하게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걸인이 뛰어들어 아들을 넘어뜨렸다. 그리고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한 손으로는 남자의 입을 막고 한 손으로는 연신 얼굴을 내리치고 있었고, 어미 잃은 짐승과 모든 것을 잃은 짐승이 바닥에 엉켜 있는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그녀에게 납치되듯 끌려갔다.

 

그녀에게 손목을 잡힌 채로 그녀의 집 앞까지 와 버렸다. 페인트칠이 거의 다 벗겨진 빌라에 공동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집이었다. 계단을 오르기 어려운 그녀를 위한 배려였을 지도 모른다. 열쇠 구멍을 겨우겨우 찾아 문을 열며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내 손목을 놓았다. 나는 도망을 쳐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집안까지 들어가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지고 나와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더는 죄책감은 없었다. 집의 거실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이상한 것은 알 수 없는 오물 냄새가 가득했다는 것이다. 노모는 구매한 비닐을 바닥에 두고 다시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집안에 방은 밖에서 잠글 수 있는 구조이다. 방문이 열리고 나는 방안에 던져진다. 안에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굼벵이처럼 이불을 칭칭 감고 누워있다. 자는지 죽었는지 모를 사람들과 겨우 눈만 뜨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물 냄새가 나는 곳은 이 방이었다. 눈만 겨우 뜬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우…우우…리 형 아니야!”

 

소리를 듣고 노모의 흰 자가 또다시 번뜩인다.

 

“너..너..누구야!”

 

손을 허우적거리며 나를 찾는다. 누워있는 사람들은 고함에도 일어나지 않고, 고함을 치는 사람도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한다. 나는 허우적대는 손을 뿌리치고 방을 나와 문을 잠갔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공포영화에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차분해야 한다. 어차피 저 여자는 날 못 봤으니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을 것이고, 쓰러져 있는 남자도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럼 옆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은 죽은 걸까?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돈이라도 찾아 챙겨서 나가야 한다. 제일 먼저 거실 서랍을 뒤졌다. 오래된 청구서들만 잔뜩이다. 밑 서랍을 뒤진다. 복지카드가 여러 개 보인다. 어라. 이름이 모두 다른 복지카드가 여러 개다. 분명 한 사람당 하나만 지급될 텐데. 복지카드에 있는 사진 속에는 아까 나를 향해 소리친 남자가 있다. 몇 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모두 정신적으로 중증 장애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 그녀는 이것을 위해 저렇게 많은 사람을 가둬두고 있었다. 복지카드를 얻으려 납치, 감금, 살인이라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벌벌 떨리고 잠시라도 정신을 놓치면 혼절할 것 같다. 방안에서는 열어 달라고 소리치는 노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살기 위해 내가 범죄를 저지르려 했던 것처럼 그녀도 그랬으리라. 하지만 방안에 그녀를 나와 같은 사람 취급하기엔 그녀는 너무 섬뜩하고 무섭고, 참혹하다. 문을 부수려 몸을 문에 부딪혀대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저 작은 체구로는 문을 부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조금도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다. 내가 더는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그녀를 심판할 정도로 정의롭지도 않고, 사실 그녀의 죄책감이 사라지는 과정을 이해한다. 그야말로 생계형 범죄니깐.


집 밖으로 뛰쳐나온다. 빌라 밖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노인이 보인다. 하교하는 학생, 가게를 연 사람, 도로에 지나가는 차. 불 켜진 미용실, 배달 오토바이. 불과 몇 미터밖에 있는 집엔 죽은 채로 누워있던 사람도 있었지만, 세상은 당연한 듯 굴러간다. 이 사실은 내가 들어갔던 집이 마치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곳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옷에 밴 오물 냄새가 아니면 잠깐 악몽을 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봄이 오면 경제도 좀 풀리고 일거리도 생길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털어내고 일어날 테고, 꽃구경도 다닐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계형 범죄도 계속 일어날 테고, 죄책감을 잃어가는 사람도 생겨날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방금 나온 빌라 방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선 사람 몇 명이 더 죽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금방 발견되어 살 수도 있겠지만 노모가 계속 사람들을 감금할 수 있던 것을 보면 발견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죄책감은 없다. 생계형 범죄를 하나 저질렀을 뿐이니깐.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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