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다. 병사들은 외출을 꺼렸고, 너무 추워 눈조차 오지 않았다. 겨울 방학을 맞은 부대는 고요하게, 세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존재했고, 이곳에 있는 병사들 역시 하염없이 겨울바람이 자신의 뺨 옆으로 스쳐 가는 것만 느끼고 있었다. 겨울에는 먹이가 떨어진 산짐승들이 내려오곤 한다. 가을에 몇 번씩 야생동물 수렵작전이 펼쳐져 인간의 총탄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겨우 부지한 목숨은 자연이 다시 뺏으려 한다. 먹이가 부족해도 나갈 곳이 없다. 그들의 집은 그들 모르게 울타리에 쌓여있고, 그 안에서 가축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던 적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음식을 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김새가 귀여운 고양이들은 인간들이 오히려 머리를 조아린다. 참으로 웃긴 일이다. 하는 일이라곤 온종일 누울 곳만 찾는 게으른 짐승들은 배불리 먹고, 끊임없이 언 땅을 파헤치느라 발굽이 다 닳아버린 짐승은 배를 곪는다. 자연은 이토록 뜻이 없이 비극적인 면이 있다.
다시 겨울로 돌아와서 그해는 유독 추웠고, 유독 동물들이 많이 내려왔고, 유독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병사들의 자살이 연달아 일어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병사가 숲에 들어가 목을 매어 죽는 일이 일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부대 안에 있는 개울에 얼굴을 처박고 죽는 일이 일어났다. 둘 다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사건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죽을 거면 화장실이나 생활관 내에서 죽는 경우가 많다. 무슨 자살 명소처럼 숲에서 목을 달아 죽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뒤의 경우는 더욱 이상하다. 접싯물에 코를 박고 죽는다는 속담처럼 개울물에 코를 박고 죽은 것이다. 부대는 타살을 의심했다. 증거는 찾을 수 없었지만, 타살로 확신하고 범인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날 밤 사슴을 봤다. 부대 안에 있는 교회 뒤에서 말이다. 이곳을 청소하는 게 군종병인 나의 주요 일과 중 하나인데 여기에는 교회에서 먹은 음식물들을 처리하는 짬통이 있어 산짐승들이 자주 모이는 편이다. 사슴을 마주하는 것은 두려운 일도 아니며 오히려 고양이 쪽이 어지럽히지 사슴들은 얌전한 편이다. 그날 밤도 짬통을 치우고 호스로 닦고 있을 때였다. 가까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이내 사슴들의 발소리가 들렸고 얼핏얼핏 빛나는 눈이 보였다. 작은 사슴이었다. 귀엽기도 하고 가엽기도 해서 빤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시야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사슴 떼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뒤에 더 많은 사슴이 있었다. 점점 오싹해져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는 희열 때문일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때 사슴들 사이로 뿔이 정말 크고 털이 검은 것이 얼핏 보였다. 그리고 그것과 눈을 마주쳤을 때 이것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을 떴을 때는 목사님과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나를 간호하고 있었다. 나는 칼을 찾고 있었다고 했다.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말이다. 결국, 제지당했지만 혼자 있었다면 분명 어딘가에서 칼을 찾고 손목을 그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을 찾은 것이다.
난 이 사실을 대대장에게 말했다. 당연히 장난으로 여길 것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진술했는데 역시 이곳은 이 말이 장난이든 사실이든 찜찜하니 조치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해가 갈 때쯤 부대에 있는 사슴을 모두 죽였다. 겨우내 총소리가 났고 구슬프게 우는 짐승들의 소리가 났다. 나는 밀고자가 된 것처럼 수십 마리의 사슴들의 시신을 찬찬히 살펴봐야 했다. 내가 밀고한 그 검은 것은 거기에 누워있지 않았다. 뿔이 큰 수놈들은 많았지만, 그때 봤던 시커먼 털을 가진 것은 없었다. 이 많은 것들이 다 내가 밀고한 탓에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산을 보기만 해도 어디선가 사슴들이 달려 나올 것 같았고, 수풀에서 소리만 나도 실내로 도망치곤 했다. 이런 내 편의를 봐주어 짬통 청소는 다른 병사가 하기로 했다. 밤에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사슴 소리가 언제나 내 귀에 들리곤 했다. ‘이곳에 더 이상 사슴은 없다.’ 어느 날 화장실에 가는 길에 그 사슴을 마주쳤다. 그 사슴은 태연하게 화장실 가는 길에 서 있었다.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말이다. 눈썹이 짙고 눈이 큰 남자 얼굴이었다. 나는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빌었다. 당연히 사슴은 아무 말도 없었다. 얼마 뒤 그것이 내 옆으로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나는 4시간이나 밖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상나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사슴은 시도 때도 없이 보였다. 사무실에 있을 때도 내 옆에 서 있었고 밥 먹을 때, 잠을 잘 때, 늘 내 옆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바뀌어 있었다. 이번에는 꽤 예쁘장하게 생긴 미남의 얼굴이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고, 부대 정문에는 자신의 아들이 자살로 위장되었다. 부대는 사고를 은폐하려 한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어머니 둘이 시위를 시작했다. 내 아들을 살려달라 라고 하는 어머니의 손에는 아들의 사진이 붙은 피켓이 있었다. 짙은 눈썹에 큰 눈을 가진 남자와 미남형의 얼굴. 이 사슴은 사람을 죽이는 사슴이다. 내 옆에 있는 사슴은 이제 귀 옆에 딱 붙어서 소리를 질러 대었다. 그때 나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사슴을 만났을 때 이미 나는 죽기로 약속되어있는 것이었다.
해가 가고 부대 안에서는 또 한차례 야생동물 소탕 작전이 벌어졌다. 멧돼지가 모두 죽었다. 큰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는 작업도 진행되었다. 산은 며칠 새 수백 년을 길러온 숲을 잃었다. 이제 철조망 속에는 사람만 살아가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매년 여름 풀도 베어냈다. 베고, 베고 또 베어도 자꾸 자라나 이제는 독한 고엽제를 뿌리고 뿌리까지 죽여버렸다. 수천, 수만의 생물들이 죽어간 그해와 그 이듬해 세 명의 병사가 죽었다. 한 명은 여자친구와의 문제로 인한 자살. 한 명은 부서 회식 후 만취한 상태로 물가에서 동사했고, 마지막 한 명은 원인 불명의 자살이었다. 갑작스럽게 칼로 손목을 그었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사슴과 관련 있다는 소문만 나돌았다. 하지만 죽일 사슴은 부대에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