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본 곳은 강릉의 해변이었다. 날이 우중충하고 파도가 높게 치는 날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날이 제법 쌀쌀해지는 10월 정도였다. 전역한 나는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여행을 다녔다. 해외 여행할 돈은 없어 국내로 이곳저곳 쏘다니면서 지냈는데, 여행지를 가는 것도 귀찮아서 바다가 있는 도시에 자주 다녔다. 강릉은 그곳 중 하나였다.
다시 강릉의 해변으로 돌아와, 그곳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평일이기도 하고, 방학도 아니라 해변에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나는 잿빛의 구름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며, 묘한 긴장감과 침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중 멀리서 들리는 악기의 소리에 시선이 돌아갔다. 악기는 우쿨렐레처럼 보였다. 기타보다는 높고 경쾌한 소리, 굉장히 단조로운, 잘 치지도 못하는 연주였다. 노래가 아니라 몇 개의 코드를 그저 이은 노래. 노숙자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낮게 나는 갈매기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노래를 들으러 모이는 것인지, 적으로 생각해 모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꽥꽥’대는 소리로 울며 모였다. 나는 그런 동화 같은 장면을 하염없이 봤다. 걸인과 모여드는 새떼라. 누구라도 조금 낭만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걸인은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았다. 우쿨렐레를 내려놓은 걸인은 주머니에서 새총을 꺼내 갈매기를 잡았다. 쇠구슬을 꺼내 한 마리씩 갈매기를 떨어뜨렸다. 갈매기들은 더 큰소리를 내며 도망가고, 걸인은 헐레벌떡 일어나 도망가는 갈매기들에게도 쇠구슬을 쐈다. 정말 정신이 나가는 장면이었다. 마치 선사시대 수렵을 하는 원주민을 보는듯한, 전처럼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지는 장면. 걸인은 아직 움직이는 갈매기들은 움켜쥐고 저쪽 해변으로 걸어갔다.
살육이 끝난 해변에는 침묵만 남았다. 갈매기들도 언제 그랬냐는 둥 해변을 평화롭게 거닐었고, 파도는 여전히 높게 쳤다. 같은 리듬으로. 잿빛 구름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비가 올 것 같아 예약해둔 모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오전에 사둔 회를 안주로 술을 마셨다. 빈방에 혼자 앉아 조용하게 술을 마신다. 이것은 꽤 운치 있는 일, 아니 운치 있게 느껴지는 일, 남이 운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 아무래도 상관없다. 홀로 바다에 와, 홀로 회를 먹는 일은 나에게 우월감과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만 중요하다. 바다는 창문으로 보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회는 살이 아주 흰 광어. 피는 없다. 피처럼 새빨간 초장뿐. 내가 먹는 음식엔 피가 없다. 좀 전에 본 노인은 갈매기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가져간 것을 보니 단순히 재미로 그런 것은 아닐 거다. 그렇지만 갈매기를 먹는다는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광어도 먹는데 갈매기라고 못 먹을 것은 무언가. 잡념은 회 몇 점과 사라지고, 술을 한 병 비우니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온다.
밤바다가 보고 싶었다. 날은 쌀쌀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놓치고 가긴 아깝다. 옷을 대충 챙겨 모텔을 나선다. 밤바다는 더욱 사람이 없다.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았다. 새카만 바다에는 간간이 하얀 거품만 보인다. 거품은 빠르게 다가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하지만 내 발까지는 닿지 못한다. 그것을 약 올리고 싶어 파도가 닿을 듯한 곳을 따라 해변을 거닐던 중이었다. 부서지는 파도소리 속에, 아주 작은 소리로, 또다시 들리고 있었다. 우쿨렐레 연주는 전에 것보다, 더 구슬픈 소리였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더 슬픈 코드가 아닐까 싶다. 인적이 거의 없는 해변에 모닥불이 있다. 역시 동화 같은 풍경이다. 한밤중에 해변에서 우쿨렐레를 치는 걸인, 그리고 그는 모닥불에 갈매기를 굽고 있다. 누구라도 나와 같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 모습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걸인은 날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이 허공을 응시하며, 줄을 튕긴다. 갈매기가 검게 그을리고 꽤나 맛있는 냄새가 난다. 옆에는 아직 굽지 않은, 털이 나 있는 갈매기가 놓여있다. 우쿨렐레 연주가 끝나고 걸인은 숯처럼 검게 그을린 갈매기를 손에 잡는다. 거칠게 내리치니 검게 탄 털과 피부가 떨어져 나가고, 새하얀 살이 보였다. 그것은 전에 먹었던, 광어, 수산시장에서 3만 원을 주고 산 광어와 다를 게 없다. 접시도 젓가락도 없이 걸인은 갈매기를 맛있게 먹었다.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레 먹었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하지만 그 모습은 전혀 추해 보이지도, 야만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본인이 잡은 갈매기를 본인이 조리해서 먹는 것, 인류가 잃어버린 본능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식사라고 할 만하다. 내가 먹은 광어는 남이 잡아, 남이 요리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어느 부분도 담당하지 않았고, 내가 먹은 광어엔 피도 없었다. 피가 없는 생물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물로서의 광어가 아니라 광어의 사체, 광어의 인형을 먹은 것이다. 광어뿐 아니라 어떤 것도, 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먹은 적이 없다.
걸인은 술도 마시지 않고, 갈매기를 모두 먹어치운 후 잠을 자려 누웠다. 역시 나는 보이지도 않는 듯, 말도 한번 걸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겨우 문을 닫지 않은 낚시가게를 찾았다. 주인은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손님은 없고, 멀리서 파도 소리는 들리고, 하지만 넓은 파도보다 주인은 조그마한 티브이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다. 주인을 불러 낚시가 하고 싶다고 하니 진열된 낚시 장비들을 이것저것 꺼내 보여준다. 복잡한 도르래가 잔뜩 달린 낚싯대를 들고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티브이 소리는 여전히 시끄럽고, 설명은 파도 소리 만큼이나 아득하다. 나는 피곤을 느껴 가장 싼 것을 달라고 했다. 미끼도, 낚싯대도 가장 싼 것으로 챙겨 나와 방파제에 앉았다. 해변보다 더 큰 파도가 방파제에 부서지고 나는 사방에서 튀는 바닷물을 맞으며 낚시를 시작했다. 동이 틀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미끼를 갈고, 기다리고, 엉킨 줄을 끊어내고 기다렸다. 동이 거의 틀 무렵, 하염없이 넓은 수평선 위로, 해가 반쯤 얼굴을 내밀었을 때, 물고기가 낚아 올려졌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물고기가 바보같이 낚여 올라왔다. 물고기의 입에는 낚싯바늘이 단단히 박혀있고, 껌뻑거리는 아가미 옆으로 선명한 피가 흘러내렸다. 떠오르는 해처럼 선명하게 붉은 피. 내 손에서 작은 몸으로 바둥대는 생명이 느껴졌다. 움켜쥔 것을 입에 넣고 씹는다. 내 입안에서도 끝없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명백하게 살아있는 것의 고동소리가 파도보다도 큰 소리로 귀에 울린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