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본 하늘은 더욱 붉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고, 내가 살던 마을은 불에 타고 있었다. 나는 소풍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경주에 갔었는데 이래저래 피곤해서 집에 오는 버스에서는 모두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익숙한 풍경이 나올 때쯤부터 마을이 불에 타는 것이 보였다. 버스 안은 금세 혼비백산이 되었다. 누구는 소리를 지르고, 울고, 기분 때문인지 기사는 더욱 버스를 빨리 모는 것 같았다. 마을 변두리에 있는 비료공장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까지 닿아 하늘이 더 캄캄해졌다. 담임은 어디론가 전화를 해 아이들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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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은 점점 거세져 갔다. 저수지 근처 숲에는 불이 번져 나무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소방차들이 도착했다. 붉고 우람한 소방차들이 버스 옆을 지나갈 때는 저들이 우리를 구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건물을 집어삼키고 있는 불길 앞에선 한없이 작아 보였다. 담임은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으로 결정했다. 우리는 옆 마을의 학교에 가게 되었다. 아이들의 원성 소리가 들렸다. 울분에 찬 소리이다. 자신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가족들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부모가 대부분 비료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나의 어머니도 저기 가장 큰 불길이 치솟는 비료공장에서 일하신다.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버스에서 내리려 했다. 아무리 초등학생이라도 혼자 인솔하기엔 역부족이다. 기사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문을 열었다. 일제히 아이들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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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선 붉은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바깥에선 뿌연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매워 기침과 눈물이 자꾸 난다. 타는 냄새는 묘하게 좋았다. 숲이 타는 냄새라서 그런 듯하다. 그리고 마을 전체가 오랜만에 따뜻했다. 집에서는 자주 느껴보지 못했던 온기다. 나는 숨이 차서인지 흥분해서인지 심장이 빠르게 없이 뛰었다. 나는 엄마를 찾으러 비료공장으로 달리고 있었다. 불길이 무섭다는 생각도 영 들지 않고, 엄마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니깐 안전할 것 같다. 어쩌면 엄마도 내가 걱정되어 학교로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쉬지 않고 뛰다 보니 커다란 소독차 뒤를 따라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몇 아이들은 길을 달리던 중 부모와 만나 눈물의 포옹을 하기도 했다. 저 멀리서 소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비료공장 근처에 소를 키우는 집이 있긴 했다. 소들을 미처 풀어주지 못했나 보다. 소들이 죽기 전에 내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렸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이는 울음이다. 어쩌면 이렇게 갇혀 사느니 타 죽는 게 낫다는 체념이 담겨있었다. 슬프긴 하지만 다급함이 영 느껴지지 않는 소리. 다리에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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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공장에 도착했다. 아까 봤던 소방차들이 물을 쏘고 있다. 커다란 불길에 비해 물은 너무 얇다. 커다란 사과를 바늘로 찌르는 격이다. 비료공장에 물을 뿌리다니 식물들이 쑥쑥 크는 상상을 한다. 불길은 전혀 잡히지 않고 건물들은 무너지고 있다. 물대포가 닿은 곳은 오히려 더 빨리 무너진다. 소방관들은 다급하고 이미 자신의 안위가 보장된 사람들은 걱정 반 흥분 반으로 불구경을 한다. 분명히 이 공기 속에는 사람 타는 냄새가 섞여 있을 텐데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이 불이 왜 났는지 말하고 있었다. 비료공장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아 누가 불을 질렀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담뱃불이 튀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장은 좋은 사람이다. 엄마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없는 나를 보러 우리 집에도 자주 오고 친구가 없는 엄마와도 자주 놀아준다. 몇 번은 자고 간 적도 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니 직원들에게 월급을 안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왜인지 저 노을이 불을 지른 것 같았다. 저렇게 큰 태양이 작은 불씨 정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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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공장 옥상으로 사람이 보였다. 불길 때문에 사람은 그림자 같은 시커먼 형상으로만 보였다. 하나는 키가 꽤 큰 남자 같고 하나는 여자 같았다. 둘은 위태롭게 무너져가는 옥상에 서 있었다. 표정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옥상은 점점 좁아져 둘은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둘 다 바깥쪽에 서 있기 싫어 서로를 조금씩 밀치며 뒤로 갔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이는 아닌가 보다. 마을 사람들의 걱정 어린 탄식이 들렸다. 구경꾼들은 이미 옥상에 있는 사람이 언젠가는 떨어질 것을 알고 있지만, 눈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라도 자신들이 눈을 뗐을 때 사람이 떨어지는 좋은 구경을 놓칠까 봐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몇 분 뒤 당연하게 사람이 떨어졌다. 일제히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다. 먼저 떨어진 건 남자였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떨어져서 구경이랄 것도 못됐다. 하지만 불길에 거의 다다랐을 때 찰나의 순간 그의 얼굴은 붉게 반짝였다. 분명히 사장이었다. 좁은 이마에 튀어나온 광대뼈가 불길 때문에 명암이 강조되어 보였다. 다른 몇몇도 그렇게 보았는지 사장이 아니었냐며 수군댔다. 웅성거림 속에서 또 비명이 들렸다. 소들이 질렀던 비명보다는 훨씬 다급한 비명이었다. 분명 날카로운 소리였지만 어딘지 포근함과 친근함이 있었다. 나는 떨어지는 여자를 보았다. 전에 남자보다 훨씬 더 천천히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남자 때처럼 옥상에서는 시커멓게 보이던 사람이 불길에 거의 다다라서야 붉게 빛났다. 명암이 진해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보였다. 작은 귀에 매부리코로 나를 꼭 빼닮은 여자다. 나는 저 여자가 분명 내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방관들은 서둘러 사람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들것을 들고 불길을 헤치며 달려갔다. 소방관 옷을 입어 덩치가 더 커 보이는 그들은 꽤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랐지만 이내 어른들에게 잡혔다. 나를 끌어안고 우는 사람은 이웃집에 살던 아주머니였다. 조금 지나 소방관들은 돌아왔다. 들것에는 엄마가 아니라 숯덩이만을 잔뜩 싣고 왔다. 빨리 엄마를 찾아야겠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하지만 어쩐지 사람들은 내 주위로 점점 모여들어 나를 끌어안았다. 이제는 불길도 소방관도 보이지 않고 어른들의 다리만 보이게 되었다. 꼭 나무숲에 둘러싸인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뒤로 노을이 지듯 불길도 점점 작아지고 있는 듯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