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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Aug 18. 2022

선물

7월 27     


 ‘또 늦겠군.’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이른 기상은 나에겐 너무도 힘든 일이다. 어쩌면 이렇게 부지런하지 못한 습관 때문에 수험생활이 실패한 것이겠지. 변변치 않은 대학을 나와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지 5년, 난 지긋지긋한 수험서들을 모두 불태우고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 지인의 회사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거의 10년을 타지에서 살다가 고향에 오니 괜스레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지만 10년 동안 만든 모든 인연을 정리하는 데도 참 힘들었다. 5년 자취하던 집부터, 스터디에서 만난 친구들, 대학 동기, 꼬박 4년하고도 2개월을 만난 여자 친구까지 모두 정리하니 내게 남은 것이라곤 먼지처럼 수북이 쌓인 나이와 어릴 적부터 써오던 베개밖에 없었다. 그들은 날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청춘이란 시험에서 처참히 낙제점을 받고 고향으로 쫓겨나듯 온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은 없다. 인간관계는 철저하게 이해관계이므로 밥 한 번 사줄 수 없는 나 따위 생각하니 더 역겹고 쪽팔린다.      


 7시 30분 엄마에게 등 떠밀려 겨우 집을 나선다. 작은 마당이 딸린 집은 부모님이 젊을 적 알뜰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집 앞엔 2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빨간 우체통도 있다. 어릴 적엔 우체통에 빛나는 돌멩이 같은 것들도 모으곤 했는데, 뭐 어린이들은 늘 자신만의 비밀을 좋아하는 법이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우체통 앞에 소포가 와 있다. 책 한권 정도 들어갈 크기의 상자다. 받는 사람 이름은 Q. 내 이름이다. 하지만 보내는 사람은 누군지 모르는 이름이다. 주소도 처음 들어보는 도시. ‘잘못 온 건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뭐 어릴 적 전학 간 친구거나 이름을 바꾼 친구일지도 모른다. 먹구름 낀 내 삶에 이런 이벤트는 반갑다. 회사까지 소포를 들고 가기로 한다.     


 회사는 별로 할 일도 없는 물류 업체이다. 아침에는 재고 확인, 점심에는 새로 들어오는 물품들을 점검하는 일밖에는 할 것이 없다. 멍하게 엑셀 표들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다 보면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부모님은 공부와 일을 병행하라고 하지만 난 이미 완전히 번 아웃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난 이 삶에 만족하고 싶다. 아까 온 소포가 기대된다. 잠깐 흔들어 보니 매우 가볍다는 점은 알겠는데 흔들리는 소리는 없다. 엄청나게 큰 휴지가 들어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혹시 러브레터라도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 탕비실에서 조용히 열어본다. 웬 작은 곰 인형이다. 봉제도 볼품없고 서른을 맞이한 남성이 가지고 놀기엔 역부족인 물건이다. 요즘은 이런 장난이 유행인가 생각이 들며 이리저리 보던 중 포스트잇이 붙은 것을 봤다.      


 “ 당신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난 내 가장 소중한 것도 줄 수 있는 게 사랑이라 생각해.”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설마 이런 곰 인형을 가지고 노는 5살짜리 여자애가 나한테 사랑을 가르치려 드는 것인가?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할 여유도 없는 질문이다. 뭐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니지만 가장 소중한 것도 줄 수 있다 라니. ‘5살치곤 철이 든 아이인가 보군’하는 생각이다.      


    

7월 30     


 아침밥으로 미역국이 나왔다. 서른이 될 동안 제대로 된 용돈도 준 적 없는 식충의 생일을 위해 미역국까지 끓여주는 사람이 내 어머니다. 미역국을 마시며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지만 어쩐지 나는 신경질이 난다. 괜히 내 인생이 이리도 피폐해진 것을 부모님 탓으로 돌리고 싶다. 어쩌면 계속 시험에 매달렸던 것도 부모님의 강요 아닌 강요였다. 어릴 적부터 공무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말하던 사람도 부모님이었다. 어쩌면 저들이 아니었다면 좀 더 도전적으로, 예컨대 창업이라도 해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점점 더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신경질적으로 그릇을 싱크대로 던지고 아직 식사를 하는 부모님에게 소리친다.


 “당신네들 속으론 날 비웃고 있지? 내가 이렇게 된 데는 당신네들 책임도 있어!”


 그들은 얼굴도 빨개지지 않는다. 그저 얼빠진 모습으로 화를 내는 한심한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모습이 날 더 부끄럽게 만든다는 것을 아는 걸까?     


 “한심한 놈. 너라는 놈은 능력도 없는데 예의까지 없는 거냐?”     


 아버지가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한다. 옆에 있는 부인은 호랑이들 사이에 낀 토끼같이 안절부절 못한다.     


 “능력은 유전인 거 몰라? 난 낳아놓은 대로 살고 있다고!”     


 대답을 듣지도 않고 도망치듯 집을 나선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난 내 능력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실패는 내 책임이라기 보단 한계라고 보는 편이 맞다. 뒤통수에 ‘그래도 우리 아들이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뒤로는 ‘쓸데없는 소리’하는 남편. 엄마는 무서울 만큼 따뜻하고 아빠는 무서울 만큼 차갑다. 그들이 밉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서는 난 살아갈 수 없다.     

 또 우체통 앞에 소포가 있다. 이번에는 전에 그것보다 더 크다. 역시 흔들리는 것은 없다. 받는 사람 이름 역시 Q. 보내는 사람은 지난번과 또 다르다. 오늘은 그래도 소포가 올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일단은 생일이기 때문이다. 예전 대학 동기나 동아리 후배 정도 되려나. 사실 얼토당토않은 추론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오늘도 역시 탕비실 행이다. 누구도 내 생일인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사무실 안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게는 10살부터 30살 많은 사람까지 있지만 다들 에너지라곤 전혀 없는 모습이다. 같이 있기만 해도 비참해지는 사람들이다. 내 미래가 저렇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이 상자 안에 돈뭉치라도 잔뜩 들어있다면 좋겠다. 이번에는 핸드백이 들어 있었다. 지하철에서 ‘3초 백’으로 불리는 것이다. 요란한 명품 무늬가 있는 갈색의 가방. 세상사람 절반에게 사랑받는 친구다. 아마 지나가는 여자 누구라도 잡고 이걸 준다면 놀라긴 하더라도 내심 기뻐할 게 분명하다. 근데 나는 서른의 남자다. 이런 것을 좋아할 리도, 받고 싶을 리도 없다.     


 ‘도대체 이딴 걸 누가 주는 거지?’     


 가방 안에는 쪽지가 하나 있다.     


 ‘생일 축하해.’     


 어쩐지 섬뜩하다. 내 생일임을 알아주었다는 기쁨 같은 건 전혀 없다. 그저 누가 내 생일을 알까? 싸이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남아있는 가장 유년부터 지금까지 아는 사람들을 모두 떠올려 본다. 아마 저런 명품가방을 준다는 것은 여자이고 부자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가방은 수려한 포장과 가격표가 붙은 것이 아니라, 분명히 누군가가 사용했던 것이다. 나는 이 미치광이 여자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섯 살짜리 꼬마의 귀여운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섬뜩한 요소가 너무도 많다. 하지만 어떻게? 경찰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나? 경찰서에 가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제게 중고 명품가방을 줬습니다.’라고 하면 그들은 ‘운수가 좋으시군요.’라고 할 듯하다. 게다가 나처럼 사회적 지위도, 돈도 없는 볼품없는 청년의 부탁이라면 심부름센터 직원이라도 거절할 게 뻔하다. 나는 어디도 기댈 곳이 없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퇴근하는 18시까지 나는 사무실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간이 사무실 안에 송장들처럼 앉아있는 직원들이 그나마 내가 기댈 곳이다. 집에 갈 때도 택시를 탔다. 음악의 볼륨을 최대치로 하고 AC/DC의 노래를 들으며 최대한 신나는 생각만 한다. 가방은 택시에 버리고 왔다. 가방 안에 위치추적기라도 있었으면 싸이코는 꽤 당황할 것이다. 게다가 여성이라면 맞닥뜨려도 내가 완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 나는 최대한 진정하면서 집까지 돌아왔다. 아빠는 밖에 나갔다. 친구와 술이라도 한잔 하러 갔나 보다. 엄마는 저녁을 준비한다.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들,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있어?”

 잔뜩 기죽은 목소리다. ‘정말 끝까지 나를 비참하게 하는 군.’ 이 나이에 부모님께 선물을 주는 것은 흔하나 생일 선물이나 받는 젊은이는 드물다. 아까 그 가방을 그냥 엄마를 줘버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지고 싶은 것은 전혀 없고 그저 성공하고 싶다. 이런 비참한 삶은 선물 몇 개로 밝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다. 


 내 목소리도 떨리고 있다. 이건 슬픔이나 화 때문에 떨리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떨리는 것이다. 아무리 날 열 달이나 품고 있던 엄마라도 내가 싸이코에 쫓겨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집은 내가 있을 수 있는 곳 중 가장 안전한 곳이다. 엄마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아 혼자가 될 일도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꽤 따뜻했던 가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풍족하지 않았지만, 외동아들이라도 잘 키워보려는 노력이 역력했던 집안이다. 뭐 그만큼 기대도 있었지만 그걸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내 잘못은 아니다. 자식은 부모를 무섭도록 닮아가므로, 샤워하고 나오니 방 침대에 봉투가 있다. 30만원. 내 자존심의 가격이다.           


8월 10          


 나는 지금 미친 듯이 떨고 있다. 택시를 타고 회사가 아닌 경찰서로 가고 있다. 택시 안에는 비린내와 오물 냄새가 가득하다. 택시기사도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창문 밖을 보고 있다. 냄새는 분명 나에게서, 내 짐에서 나는 냄새다. 근래 싸이코가 너무 조용하다 했다. 오늘도 평소처럼 출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한 곁눈질로 우체통을 확인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하지만 오늘 내 시선은 테이프로 칭칭 감긴 연갈색의 종이상자와 포개졌다. 확인하고 싶지 않지만 확인해야 한다. 정말 그 안에 염소가스라도 들어 열자마자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보고 대신 열어달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별 것도 아닐 수도 있다. 서른 살짜리 아들이 출근을 하다 말고 택배 상자를 보고 벌벌 떨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더 이상 한심하게 보이기는 죽기보다 싫다. 부모님이 취업선물로 사 준 양복에서 볼펜을 꺼낸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이 포개진 곳의 테이프를 찔렀다. 테이프가 너무 여러 겹이라 나는 마치 못을 박 듯, 어쩌면 사람을 찔러 죽이듯 테이프를 마구 찢어 열어젖혔다. 상자가 열리자마자 역겨운 냄새가 났다. 어릴 적 할아버지의 집에서 가축 정도로 키우던 개에게서 나는 냄새다. 상자 안에는 가축으로 키우는 개가 아니라 작고 여린 말티즈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티즈가 아니다. 그저 8월의 더위 속에서 부패하고 있는 짐승의 사체다. 새하얀 털은 피와 오물이 붙어 굳어있고 눈은 썩은 지 오래다. 나는 싸이코에게 나의 패배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나니 나는 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처음 가 본 경찰서는 몹시 한가해 보였다. 나는 경찰서 문 앞에 섰을 때 너무 긴장이 풀어져 그만 쓰러질 뻔 했다. 여자 순경은 내게 다가오다 악취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러섰다.      


 “ 무슨 일이신가요?”


 “ 제가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범죄가 기억나지 않았다. 살인도 아니고 딱히 협박도 없었다. 알 수 없는 택배를 보내는 것은 스토킹이 가장 가깝다.     


 “ 아 그럼 저쪽에서 진술서를 작성해 주세요.”     


 순경은 자기 자리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아무리 내가 못났어도 진술서를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내가 느끼고 있는 공포를 이들에게 공감시키고 싶었다.     


 “ 저기 이거.”     


 나는 여자 순경에게 상자를 건넸다. 그녀는 악취 나는 상자를 열어젖히곤 마치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 이게 뭐야!”


 그러자 일제히 다른 순경들이 와서 상자 안에 있는 썩어서 볼품없어진 말티즈를 봤다. 그들의 눈에는 공포보다는 불쾌함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상자 한번, 나를 한번 훑어 봤다. 평일 오전에 양복을 입고 저런 것을 들고 오는 사람은 장담컨대 없을 것이다. 나는 내 공포를 저들에게 공감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진술서를 상세히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들을 모두 기록했다. 그들은 앞서 왔던 택배들의 주소와 이름을 알려 달라 했으나 이미 상자를 다 버린 뒤였다. 그래도 죽은 강아지가 있는 상자가 있었으니 한번 조회를 해본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피해가 없어서 늦을 것 같고 지금껏 원망을 살 만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원망을 살 만한 행동을 했을까? 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를 늘 한심하게 보았고 원망할 쪽은 내 쪽이다. 이렇게 순경에게 말하니 나를 보는 그의 눈이 더욱 한심함으로 가득 찼다. ‘경찰조차 날 한심하게 생각한다.’ 난 부끄러워 더 여기에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집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최대한 조사를 빨리 마치고 모쪼록 부탁한다고 고개를 숙인다. 그들은 입으론 걱정하지 말라고 웃지만, 눈에는 ‘꺼져 한심한 녀석아’라고 말하고 있다. 택시에 올라타 집 주소를 이야기한다. 기사는 내게 면접이라도 보고 왔느냐고 묻지만 난 대답하고 싶지 않다. 다시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페인 킬러’가 귀를 때린다. 하지만 난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다.     


 집에 도착해서 옷부터 벗었다. 내 몸에 역겨운 냄새가 따라 다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어째서인지 두 분 다 없었다. 장이라도 보러 갔나? 샤워하다 보니 또 몸이 떨린다. 눈도 감지 못해 머리를 감을 수도 없다. 샤워를 마치고 문을 여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수건으로 대충 가린 채 빠르게 부엌으로 가 칼을 하나 꺼내 방으로 갔다. 방문을 잠그고 옷장이나 서랍의 문은 모두 열었다. 내 창문엔 창살도 있으므로 완전히 안전하다. 나는 침대에 앉아 나를 원망스러워 할 만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와 팀플레이 과제를 한 사람들? 물론 학교에 잘 나오지도 않던 나를 원망할 순 있어도 이건 정도를 지나쳤다. 게다가 그들이 날 기억할 리가 없다. 전 여자 친구? 꽤 설득력이 있다. 5번째 시험에서 떨어진 후 급하게 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원망을 살 짓을 한 건 아니다.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아이를 생기게 하지도 않았다. 그저 앞으로 미래를 생각했을 때 ‘서른 살이 될 동안 직장도 잡지 못한 나와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변변치 않은 벌이를 하는 너는 서로에게 짐만 될 뿐이다.’하는 생각에 이별을 고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꽤 낭만적인 경향이 있어서 ‘언젠가 또 만나겠지’하며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또 나를 원망하는 사람. ‘부모님’ 그들은 나를 누구보다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만족시켜 본 적이 없으니 그럴 것이다. 대학입시, 구직 뭐 하나 잘해 본 것이 없다. 학원비, 방세라면서 돈만 축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원망스러울 수 없다. 남들이 보면 사이좋은 노부부처럼 보이는 그들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들의 삶에 어쩌면 내가 버릴 수도 없는 애물단지일지도 모른다. 나만 없다면 둘은 아빠의 연금으로 편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나를 죽일 수는 없으니 내가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것인가? 내가 이런 극도의 공포 속에서 자살하리라 생각하고 일부러 집을 비운 거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죽고 싶을 정돈데 나처럼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사람이라면 ‘죽고 싶을 것이다.’가 아니라 ‘죽을 거다.’라고 추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노부부의 얼굴이 악마의 얼굴로 바뀐다. 용암이 흐르는 절벽에서 사람을 밀지는 않고 놀리며 겁을 주는 붉은 피부의 악마 둘이 나를 보며 웃는다. 정신이 아득하다. 조용한 방에 이가 부딪히는 소리만 들린다. 그 다음에 시계 초침이 ‘째깍째깍’ 한 칸씩 움직이는 소리가 더해진다. 또 얼마 뒤부터는 바깥에 하교시간이 되었는지 수다 떠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이 어느덧 내 옆에 앉아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 넌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쓰레기야. 그만 둘의 인생에서 사라져 주는 게 어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칼을 손에 쥔다. 이제 수많은 소리들은 뒤엉켜 내 머리에서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다. 고흐처럼 귀라도 자르고 싶은 심정이다. 그 순간, ‘삑삑삑삑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들어오더니 난 그만 정신을 잃는다. 



8월 12     


 방은 새카맣다. 달빛조차 없는 흐린 날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옆에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은 나 혼자다. 내 옆에 누운 노부부는 나를 낳고 길러준 사람들이다. 하지만 감사하진 않다. 그들은 내가 죽기를 바랐던 사람이다. 어제 오후 그들은 문을 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에 가면 그 쓰레기가 목을 매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을까? 그렇다면 난 끝까지 당신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난 이렇게 살아있고 당신들은 이렇게 누워있으니깐 말이다. 어떻게 죽였는지 생각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 손에 칼이 있었고 무의식에 나는 죽기보다 죽이기를 결정했나 보다. 죄책감도 없지는 않지만, 정당방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다 끝이다. 부모를 죽인 사람은 감옥에 가야 한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이제 세간의 사람들은 나를 한심한 사람으로 보다 못해 싸이코패스, 악마로 손가락질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악마들은 내가 칼로 죽인 이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를 낳아놓고 버릴 수 없으니 가둬놓고 자살하기를 기다린 사람들이다. 바퀴벌레를 잡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듯 나를 죽음의 수렁으로 빠뜨린 사람들이다. 나는 시체를 치울 자신도 없었다. 내일이면 어제의 말티즈에게서 나던 냄새가 날 것이다. 오물과 피가 섞인 역겨운 냄새가.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는 향수도 뿌리면서 죽으면 며칠 만에 역겨운 냄새가 난다.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니 더 악취가 날 것이다. 나는 화장실을 열어 이것들을 욕조에 넣었다. 싸이코에게서 역전승을 거뒀다. 앞으로 악마로 손가락질 받을 삶을 생각하면 패배지만 욕조에 담긴 저들과 화장실 문에 못을 박는 나를 본다면 승자는 내 쪽이다.     


 집에 불을 질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우리 집 마당 앞에서 멈추더니 이내 멀어진다. 싸이코는 이미 죽었다. 그렇다면 저것은 무엇인가? 무섭도록 천천히 뛰던 내 심장이 다시 요동친다. 나는 불길 속에 쫓기는 개처럼 뛰어 우체통으로 간다. 이번엔 퀵서비스였다. 택배 상자처럼 누가 보내고 누가 받는지 쓰여 있는 것이 아닌 하얀 스티로폼 상자가 있다. 순백의 상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이런 것일까? 열어서는 안 된다. 이미 싸이코는 내 부모님이었고 내가 처리했다. 더 이상 살아있을 리 없고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 상자를 발로 걷어차 본다. 안에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들어있다. 수박이 담긴 것일까? 여름이니 욕조 속에 갇힌 저들의 지인이 선물을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박을 퀵서비스로? 난 열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눈물이 쏟아진다. 상자를 들고 거실에 섰다. 난 악마를 죽인 칼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엔 꽁꽁 언 시커먼 수박이 들어있었다. 이리저리 돌려보니 수박에 돌기도 있고 구멍도 있고 검은 구슬도 나란히 박혀있다. 난 이 수박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검은 털을 치우니 역시 수박이 아닌 것 같다. 난 이것이 살아있을 때 본 적이 있다. ‘R의 어머니.’ 헤어진 여자 친구 R의 하나 뿐인 어머니이다. 아버지 없이 자란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어머니다. 이것이 지금 하얀 상자에 담겨 내 식탁에 올려져있다. 나는 구토를 하고 싶었다. 화장실이 못 박혀 있으니 나는 싱크대에 구토하고 말았다. 이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나는 기분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꿈인 거지? 곰인형을 받은 그 날부터인가? 아니면 강아지를 받은 날?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 싸이코는 R이다. 난 믿을 수 없다. 그녀와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어쩌면 이 꿈에서 깰 수 있는 열쇠일 것이다. 나는 택시에 올라타 그녀의 집 주소를 불렀다. 택시기사는 다른 도시까지 가면 비싼 요금이 나온다고 말한다.     


 “ 상관없습니다.”     


 난 잠에서 깨고 싶다. 꿈속에서 잠을 잘 수 있을 리 없다. 택시기사는 창문을 열고 불쾌한 표정을 보였다. 강아지 시체보다 더 역한 냄새가 나는 게 뻔하다. 하지만 난 어떤 냄새도 맡지 못했다.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키웠다. ‘Non, Je Ne Regrette Rien.' 죽기 전에 듣고 싶었던 노래이다.        


  

8월 12일 


늦은 저녁 R의 집 앞          

 R의 집은 5층짜리 빌라에 5층에 있다. 몇 번이고 와 본 곳이지만 오늘의 나는 목적이 있다. 난 잠에서 깨러 왔다. R의 전화는 꺼져있다. 나는 빌라에 들어가기 전 화단에서 돌을 하나 뽑아 들었다. R의 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은 없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장미 덩굴이라도 문에 생겨있다면 나는 꿈인 걸 알고 안심할 수 있었을 텐데.  문 안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지옥이라도 있을까? 어쩌면 R어머니의 얼굴을 닮은 수박을 R과 그녀의 어머니가 기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수박은 놀랍도록 그녀의 어머니를 닮았지만, 맛이 좋아 너도나도 사고 싶어 하고, R은 나를 좋아했기 때문에 예의상 하나 정도 택배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니 더더욱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확신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문을 잡아채니 고철 소리를 내며 열린다. 이 방에도 우리 집 악마들에게 나는 냄새가 난다. 거실에는 익숙한 풍경뿐이다. 몇 달 전에 와봤던 그대로 티브이와 탁자, 소파가 있다. 수박밭이나 장미 덩굴은 없다. 하지만 꿈이니 언제 풍경이 바뀌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거실 한구석에는 미처 비우지도 못한 강아지 사료도 있다. 아마 이곳에서 하얀 강아지는 짧은 생을 살았을 것이다. 익숙한 냄새는 R의 방 쪽에서 났다. 평소에는 여자애 특유의 포근한 냄새가 나던 곳이었다. 가볍게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방에는 R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날고 있다. 날개는 없었지만, 그녀는 분명 땅으로부터 떨어져 날고 있다. R은 악마다. 돌멩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돌멩이로 악마의 배를 때렸다. 악마는 뒤로 조금 밀려나나 싶더니 진자운동을 하는 구슬처럼 다시 내게 왔다. 혀를 길게 뺀 그것의 뒤로 줄이 보인다. 커튼을 매달아 놓는 곳에 악마가 날고 있다. 정신이 아득해 주위를 둘러봤다. 곳곳에 내 사진들이다. 사귀었을 때 찍었던 사진과 헤어지고 내가 짐을 옮기는 사진, 심지어 내가 출근하는 사진까지 온 사방에 인화된 사진이 붙어있다. 책상에는 편지가 있다. 어쩐지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없고 유서라고 쓰여 있다.     


 “ 당신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난 내 가장 소중한 것도 줄 수 있는 게 사랑이라 생각해. 난 당신을 아직도 사랑해. 내가 소중히 하는 것 모두 다 줄 수 있어. 그런데도 나에게 돌아와 주지 않네. 하지만 나에겐 아직 줄 것이 있어. 난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영혼까지 줄 수 있어. 그땐 당신이 나에게 다시 돌아와 줄까? 돌아와서 날 다시 본다면 꼭 안아줘.”     


 이제 나를 꿈에서 깨워 줄 사람은 없다. 악마는 이미 죽어있고, 나는 부모님을 죽였다.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얼른 욕조에서 그들을 구해줘야 한다. 하지만 난 자격이 있을까? 예전에 R을 만나 사랑을 시작했을 때부터 난 악마가 되어있던 게 아닐까? 그때부터 내 가슴에 죄의 씨가 심어져 지금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을 피웠다. 날 이렇게 만든 악마는 유유히 지옥으로 먼저 날아갔고 내 앞엔 그것의 껍데기만 남아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날 이렇게 만든 악마를 찾아 죽이는 것이 내 남겨진 사명인 것이다. 이번엔 누군지 확실하다. 게다가 어디에 있는지도 확실하다. R의 껍데기에 숨어있는 악마를 찾아 나는 지옥까지 따라가기로 했다. 나는 R의 방 창문을 열고 난간에 서 있다. 죽을 용기 따위는 당연히 없을 줄 알았는데 증오는 공포보다 강했다. 난 이제 지옥으로 떠난다. 내 마음속에 피어난 죄는 벌을 갈구하고, 악마를 죽임으로써 나는 벌을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낀다. 바람이 점점 뜨거워지다가 머리가 캄캄한 곳에 닿았다. 이제 눈을 뜨면 지옥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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