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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 Oct 23. 2021

학습 부진아

초등학교 2학년

 네 자리 숫자의 덧셈 뺄셈은 시키면 하겠지만 계산기를 쓸 것이다. 현대 문명의 발달은 인간이 짜증이 덜 나도록 해주는 것 같다. 실은 내가 쉽게 짜증 내는 인간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2학년의 나도 짜증이 조금 많았다. 왜 계산기를 두고 내가 이 복잡한 덧셈 뺄셈을 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되었다. 덤으로 선생님이 설명하시는 계산방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는 척 넘어갔다. 모른다는 게 창피했기 때문이다. 계산은 어차피 계산기로 하면 됐다. 그래서 나는 질문하지 않았다.


 나의 알량함은 엄마의 샤우팅을 불러왔다. 시험지 위에 적힌  55점은 너무 빨개서 못 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이 시험지 속 다른 활자와 구분되지 않게 제발 검은색 펜으로 점수를 적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때까지 딱히 내 교육에 간섭하지 않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였던 건지 나는 숙제도 혼자 착실히 해갔다. (잘해갔는지는 모른다.) 엄마는 그제서야 딸의 심각성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겨울방학에 학교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왜지?' 혼자 생각했다. 겨울방학에는 할머니 집에 가서 뜨뜻한 장판에 앉아 아침 드라마를 보며 맛있는 아침을 먹어야 되었다. 담임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학습 부진아라서 겨울방학에 보충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수업의 이름은 일명 '부진아반'이었다.


 부진아. 한글도 잘 모르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도 부진아라는 단어는 께름칙했나 보다. 뜻도 모르는 그 단어가 나에게 일종의 모욕감과 창피함을 주었다. 부진아라는 말이 지금보다는 작았을 심장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즉시 부진아반의 멤버를 찾았다. 나만 부진아이면 쪽팔릴 것 같았다. 뒷자리 여자애한테 물어본 결과 자기도 부진아라고 했다. 나는 안도했다.


 엄마는 자기 딸이 부진아라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엄마는 화는 내지 않고 수능만 잘 보면 된다고 어린 딸을 달랬다. 나를 달래는 방법이 조금 특이했는데 그냥 가볍게 내가 시험을 못 봤다는 사실을 가지고 놀리는 것이었다. 어떨 때는 놀림받는 게 심적으로 더 편하다. 가족들은 나를 55점이라고 불렀다. 가족이라서 그런지 나를 부진아라고 놀리진 않았다.


 매일매일 눈이 쌓인 길을 걸어 학교로 가는 길에 창피함과 자괴감을 느꼈다. 교실에서는 수학 문제 풀이가 진행되었다. 담당 선생님은 매일 따뜻한 율무차를 타 주셨다. 달고 뜨뜻한 율무차가 조금은 나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2년째 초등학교에 다닌 이주현은 주먹을 쥐고 부진아라는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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