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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 Oct 23. 2021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빛나는

중학교 1학년

 지겨운 6년의 초딩 생활을 청산하고 중딩 되다!


 인천에서의 6년의 초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나는 부천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한다. 서열 1위에서 꼴찌로 하강했다. 엄마 아빠는 학군과 학원을 고려해 이사를 결정한다. 부모님은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대입과 가까워진 만큼 학업적으로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려고 하셨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간 첫 날을 잊지 못한다. 이사간 곳의 집값이 원래 살던 곳보다 비싸서 원래 살던 곳보다는 낡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동생과 나는 눈을 아프게 하는 체리 몰딩 집에 충격을 받고 철없이 엄마 아빠에게 화를 내었다. 모진 말을 뱉은 우리에게 서운함을 느끼던 부모님의 모습이 생생하다.   

  

 부천에는 아무 연고가 없었던 나는 중학교 첫 날을 두려워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친해진다. 나는 첫날 앉은자리에서 앞 뒤 옆 자리에 앉은 여자 아이들과 친해졌다. 운명적인 자리배치에 감사함을 느낀다. 친해진 우리는 사진관에 가서 증명사진도 찍고 떡볶이도 먹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들을 같이 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친구들과의 어울림은 가족들 간에 느낄 수 있었던 감정과는 또 다른 감정을 주었다. 우리는 매일 노래방에 갔다가 카페에 갔다. 이게 새로운 루틴이었다. 노래 실력은 이때 쌓은 것 같다. 외모에도 신경을 썼다. 쥐 잡아먹은듯한 물틴트도 바르고 얼굴이 허예질 때까지 선크림도 발랐다. 사춘기 소녀는 XY 염색체를 가진 사람에 눈을 떴다. 우리 반 친구들은 점심시간에 창가에 모여 축구하는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매일매일 친구들과 놀았지만 공부는 나쁘지 않게 했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학원도 다녔다.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적극적이니 선생님들은 나를 좋게 보셨다. 중학교 때는 정말 적당히(실은 많이) 놀고 적당히 공부해도 괜찮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공라밸(공부와 라이프 밸런스)이 좋았던 것 같다.      


 심리학자 VS 임상 병리사     


  임신하셨던 담임선생님을 대신해서 2학기에는 우리 반을 한문 선생님이 맡으셨다. 1학년 생활 기록부를 최종 점검하는 날이었는데, 한문 선생님이 나를 불러 내셨다. “왜 생활기록부 직업 희망란에 패션 디자이너를 적었니?”

 

 선생님도 나의 뜬금없는 직업 희망에 놀라셨을 것이다. 나는 미술을 정말 못해서 과목 중에서 가장 안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한 번도 나의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선생님은 내 성적을 보니 중학교 3학년이 돼서 특목고를 진학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하셨다. 그래서 특목고에 대비할 때 생활기록부 활동과 연관 지을 수 있도록 희망 직업을 바꾸어 놓으라고 하셨다.  

    

 실은 그때까지 특목고가 뭔지 잘 몰라서 직업을 바꾸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다. 그래도 어처구니없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진짜 내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나의 꿈 월드컵 결승전에는 심리학자와 임상 병리사가 있었다. 왜 하필 그 두 개였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아마 이름만 보고 멋있어 보여서 택한 것 같다. (가운을 입어서 그런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한문 선생님은 심리학자를 우승하게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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