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지구를 품고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무엇입니까? 삶에서 단 한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고민은 무의미하다. 내게는 늘 가족이었으니까. 너무나도 사랑해서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웅크러드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 언니, 그리고 두 막내. 절대 떨어지지 않아야지. 언제든 내가 나 되어 함께 목청껏 웃을 수도, 울 수도 있어 좋았다. 그랬기에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승무원은 나에게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지구 위 방방곳곳을 누빈다는 건 정말 굉장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랬던 내가, 더 나아가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이라니. 사람일 참 모른다.
부딪힐수록 단단해진다 했던가. 우리 가족은 내가 어릴 적부터 정말 많은 고난과 역경의 산을 넘어야했다. 이 문제, 저 문제 겪어보지 않은게 없었고 그 탓에 관계가 연약해질대로 연약해져 부서질뻔도 했다. 끈끈함과 애정, 서로를 향한 무한한 희생은 바로 여기서 피어났을 것이라. 이제는 거름이 된 그 아픔을 속에 두고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짠한 마음, 사랑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들이 꽤나 굵은 가지를 많이 냈다.
그러니 좋은 곳을 가면 엄마아빠가 생각나고, 맛있는 걸 먹으면 언니와 동생이 떠오를 수 밖에. 그럴 때 함께 있는듯한 느낌이 들곤 하니까. "정말 중요한 건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인가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이제는 내 좌우명처럼 되어버렸다. 전세계 어디에 있든 한국의 금요일 저녁 8시 반이 되면 아, 지금쯤 아빠가 엄마 집에 도착했겠구나 하고 중얼댄다. 한국시간 일요일 저녁에는 밥을 먹다가도 보리랑 아빠는 조심히 도착했겠지 하며 단체 채팅방을 슬쩍 열어본다. 이건 습관을 넘어 생활, 삶이라고 해도 좋다.
오늘도 아침부터 거하게 차려먹었다며 사진을 보내는 언니의 메세지에 어울리지도 않는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대답해주는 동생의 모습에 피식한다. 몸을 일으켜 엄마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린 커피에 아빠가 즐겨보는 영상을 곁들인다. 그렇게 하루종일 가슴에 곱게 품고 있다 잠들기 전 두 손을 모으는 시간을 가진다. 부디 몸은 떨어져있지만 언제나 그랬듯 지켜달라고 속삭인다. 작은 방울들로 조각배는 멀리 흘러간다. 기도가 끝나면 그대로 꼭 끌어안고 잠을 청한다. 나의 우주에 안기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