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면 나았을 것들
휴양지에서 돌아오는 비행은 언제나 조용하다. 오랜만에 집을 떠나 낯선 곳을 탐험하고, 이것저것 즐겼을 법한 승객들은 대개 비행내내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때문에 나도 기내를 확인하며 둘러볼 때는 최대한 소리없이 사뿐사뿐 조용히 다니려한다. 절반쯤 둘러보았을까. 한 승객이 다소곳이 곧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다들 이리 기대고 저리 엎드려 있어 그런지 바른 자세의 승객은 한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머리를 스카프로 단정하게 가리고 있었고, 들고 탄 가방 속 살짝 비져나온 아바야(이슬람 문화, 자신의 남편에게만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아내의 온몸을 뒤덮는 검은 천)가 보였다. 아, 무슬림이구나. 그녀의 왼쪽에는 십대로 보이는 소녀가 어깨에 기댄채 새근새근 자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그녀보다 살짝 더 어려보이는 또다른 여인이 머리를 가린채 눈을 감고 있었다. 또 맞은편 자리엔 족히 서른살은 더 많아 보이는 노년의 남성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그 옆에는 초등학생 저학년 쯤으로 되어보이는 소녀가 그에게 몸을 맡긴채 꿈속을 헤메고 있었다. 이들이 이슬람 문화에선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란건 너무나 명확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편치만은 않았다. 긴 비행 잠들지 못하고 바른 자세인 여성 승객은 첫번째 부인, 왼쪽에는 자신의 딸, 그 오른쪽은 두번째 부인이며 맞은편 남편 옆에는 둘째 부인과의 딸이라는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가 해외살이를 시작하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문화차이를 존중해야 한다.'였다. 하지만 이 날은 유난히 답답했나보다. 너무나 아름답고 젊은, 언니라고 불러도 될것같은 저 여성 승객은 지금 발리에서 무엇을 보고 오는 길일까. 수많은 연인들 사이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오지랖은 돌이킬 길 없이 쭉쭉 뻗어나갔다. 문득, 나의 이웃인 한 무슬림 여성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한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요. 그 안에 있는 로맨스는 꿈만 같아요. 그건 절대 나에게 이뤄질수 없거든요."
이슬람 안에서는 결혼이 신앙의 절반을 완성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통상적으로 10대 중후반이 되면, 여성은 정혼자에게 시집을 가야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꽁꽁 감추며 평생을 검은 천 속에서 숨어살아야 한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만큼 요즘 그 문화도 많이 풀리고 바뀌었다. 그만큼 내가 만난 승객도 발리에서 조금 더 자유가 주어졌던 것 같다. 남편에게서 시커먼 아바야는 가방에 넣고, 스카프로 머리만 감싸는 정도의 너그러움을 허락 받았으니까. 허나 여행지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설령 떠나기 전에는 몰랐을지라도 이제는 세상이 얼마나 자유롭고 다양한지를 뼛속까지 느꼈을 테니까.
무엇이 좋은걸까. 분명 그녀의 남편은 휴양지로의 휴가를 결심했고, 가족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한 것인데. 과연 그녀에게도 이것이 진짜 행복이었을까. 어쩌면 예상못한 큰 실망을 만나지 않았을까. 어리숙한 내가 판단하기에 질문의 깊이는 심오했다.
도착 후, 기내의 불이 환하게 켜지고 몇 줄 앞에 앉아있던 한 젊은 영국인 커플이 일어나 내릴 준비를 했다. 진하게 태닝된 어깨에 무엇이 재밌는지 서로 연신 킥킥거렸다. 나도 모르게 미소지으며 바라보다 다시 무슬림 여성에게로 시선이 향하는데, 그녀의 시선은 그 커플에게 고정되어있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었는지 멍한 눈초리로 그저 바라만 보던 그 모습에 내 마음이 또다시 움츠러들었다.
무엇이 좋은걸까. 그녀가 다른 세상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몰랐다면 조금 더 편안했을까. 그렇다고 과연 그것의 이름은 행복일수 있을까. 극을 잡고 늘어지는 가슴 속 지도에 길 잃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