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탈출기>를 읽으면서 "이건 뭐야?" 싶은 게 있었다.
첫째, 파라오가 야훼의 명령을 아홉 번이나 거부한 건 파라오가 진짜 고집불통이라서가 아니었다. 야훼가 직접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어 놓은 거였다. 하! 이건 뭐, 약속대련이라도 한 거야?
둘째, 모세는 파라오한테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 사흘 동안만 나가서 야훼님한테 제사 좀 드리고 올게"라고 하면서 슬쩍 속이려 했다. 야훼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거짓말부터 했다.
셋째, 야훼는 "내가 유일신!"이라고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위해 이집트 애들이 죄다 고생하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맏아들들까지 몽땅 죽었다. 이게 뭐야, 자기 이름 알리려고 어린아이들을 죽였다.
'유일신'이라는 개념은 이때부터 생겼다. <창세기>에서는 그런 말이 아예 없었다. 거기서는 신이 "우리"라고 한다. '엘로힘'이라는 또 다른 신도 등장하고 말이다. 근데 <탈출기>에 와서 야훼가 "오직 나뿐!"이라고 외친 거다.
여기서 프로이트 아저씨가 등장한다. 이 유대인 정신분석 창시자가 쓴 <종교의 기원>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은 이집트에서 빌려왔단다. 이집트의 파라오 아케나톤이 아텐이라는 태양신을 유일신으로 높여서 아텐교를 만들었는데, 그게 유일신교의 시작이란다.
아케나톤은 기원전 1375년경, "우리 이집트는 유일신 아텐만 섬길 거야!" 하고 왕국의 신전들을 다 닫고, 신전 재산을 국고로 빼돌렸다. 심지어 "아텐 신의 형상도 금지!"라면서 완전 추상적인 신을 밀어붙였다. 근데 그의 통치가 너무 짧아서, 그가 죽고 나서는 이집트가 혼란에 빠졌고, 아텐교도 망했다.
모세가 바로 이 아텐교 신봉자였다는 게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고센 지방에 살던 셈족(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했다는 거다. 열 가지 재앙 같은 건 없었고, 그냥 슬쩍 빠져나간 거다. 당시 이집트가 혼란스러워서 그들을 막을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세는 셈족 말이 서툴러서 통역으로 아론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근데 <탈출기>에서 모세가 "나 말주변 없어요!"라고 하는 건 솔직히 믿기 힘들다. 모세의 대화를 보면 말솜씨가 아주 끝내주기 때문이다.
결국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텐교를 강요했고, 이 압제를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살해했다는 설도 있다. <신명기>에서 모세가 야훼와 함께 있다가 어디선가 죽었다고 하는데, 아무도 그의 무덤을 모른단다. 흠, 수상하다!
모세가 이집트인이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꽤 그럴듯하다. 왜냐면 첫째, 모세는 <창세기> 족장들보다 다르게 생겨 먹었고,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탈출 후에도 모세를 계속 원망했기 때문이고, 셋째, 대제사장 아론은 다신교적인 행동을 보였는데, 모세는 끝까지 유일신을 밀어붙였다.
본론으로 돌아가 모세의 성장 과정과 열 가지 재앙을 살펴보자.
야곱의 가족이 70여 명으로 이집트 땅 고센에 정착한 이후 400년이 흐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왕성하게 번식했고, 마침내 온 땅에 가득 차게 된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위기의식을 느낀다. “이놈들, 숫자가 너무 많아! 전쟁이라도 나면 적과 합세해서 우리를 치고 도망갈지 몰라!” 그래서 파라오는 계략을 쓴다.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만들고, 그들에게 국고성을 지으라고 시킨 거다. 그러나 그들은 학대받으면 받을수록 더 번성했다. 파라오는 독을 품는다. 히브리 남자애들은 태어나자마자 나일강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한 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등장한다. 모세의 엄마는 아이를 갈대 상자에 넣어서 나일강 갈대밭 사이에 둔다. 그런데 이걸 발견한 사람이 하필 파라오의 딸! “이거 귀엽잖아? 내가 건져냈으니까 너 이름은 모세야!” 이렇게 해서 모세는 공주의 양자가 된다.
어느 날 모세가 히브리인이 이집트인에게 맞는 걸 목격한다. 화가 난 그는 그 이집트인을 죽여버린다. 그러나 이 시건이 발각되자, 그는 쏜살같이 미디안으로 도망간다. 거기서 그는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고 평화롭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떨기나무에서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는 장면을 보고 어리둥절한다. 그런 모세 앞에 야훼가 나타난다. “모세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발 벗어라!”하며 말이다. 야훼는 “히브리인들이 고생하는 걸 봤다. 이제 내가 그들을 구출할 거니까 네가 가서 파라오한테 말해. 그리고 내 백성을 이끌어 내!”라고 한다. 모세는 “그들이 당신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죠?”라고 물었고, 야훼는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라는 뭔가 심오한 답을 준다.
여기서 이상한 게 하나 출현한다. 야훼는 모세한테 “파라오에게 3일만 광야로 나가 제사를 드리게 해달라고 하라"는 속임수를 가르쳐 준 거다. "하지만 사실 그건 핑계고, 너희가 이집트 여자들의 금은보화를 빼앗아 오게 할 거야.” 하, 이건 또 뭔가? 강탈은 그렇다 쳐도, 속임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때부터 이어져 오는 유구한 전통인가 보다.
파라오는 야훼의 메시지를 듣고 콧방귀도 안 뀐다. 그래서 야훼는 “좋아, 이집트를 좀 혼쭐 내볼까?”라는 듯 재앙을 차례차례 내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재앙, 나일강을 피로 물들인다. 파라오는 꿈쩍도 안 한다. 다음엔 개구리 떼가, 그다음엔 이가 온 땅을 뒤덮었지만, 파라오는 여전히 ‘쿨’하다.
네 번째 재앙부터는 강도가 세진다. 파리 떼가 이집트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악질과 독종이 퍼진다. 그래도 파라오는 꿈쩍 안 하는데, 왜냐면 야훼가 그의 마음을 ‘완전히 돌처럼’ 굳게 만들었으니까! "아니, 그럼 애초에 왜 재앙을 내린 거야?" 싶겠지만, 야훼의 심뽀가 원래 그렇다.
일곱 번째에는 우박이 온 이집트를 강타하고, 여덟 번째에는 메뚜기 떼가 식량을 쓸어가고, 아홉 번째에는 온 이집트에 3일간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때는 파라오도 “좋아, 그만 보내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야훼가 또 그의 마음을 굳게 만든다. “보내긴 뭘 보내, 아직 재앙이 하나 남았어!” 하! 참 고약한 심뽀다.
마침내 열 번째 재앙이 내려진다. 그건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을 죽이는 거다. 파라오부터 죄 없는 농민, 감옥에 갇힌 사람의 자식까지, 모두가 죽임을 당한다. 그때서야 파라오는 “야, 너희 가! 제발 나가서 너희 신을 섬기고, 나도 좀 축복해 줘!”라며 항복한다.
기독교지도자들은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 신들을 심판한 거라고 주장한다. 개구리 떼 출몰은 개구리 모습을 한 풍요의 신 헤케트를 심판한 거고, 어둠의 재앙은 태양신 라에 대한 심판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열 가지 재앙이 과연 이집트 사람들에게만 유일신 야훼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그건 분명히 아니다.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끊임없이 기적을 보여주고, 만나를 내려주고, 홍해를 가르고, 샘물도 터뜨려 주었기 때문이다. 열 가지 재앙은 야훼를 새로 알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신이 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열 가지 재앙은 야훼가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보여준 꼴이 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