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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리향 Oct 08. 2024

리셋버튼

  나의 사춘기는 늦고 독하게 찾아 왔다.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하는 기간이 사춘기라면 나는 대학을 들어가서야 사춘기에 해야 할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의 내가 만족스럽다면 사춘기는 그렇게 심하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심하게 불만스러웠기 때문에 그것은 독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약간의 수정이 아니라 재설정을 원했다. 리셋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실제로 그 버튼을 눌렀다. 내가 왜 그렇게 무모하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런 멍청한 짖을 저질렀는지는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리셋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수정 버튼을 누르는 것도 꺼려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학창 시절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실이 그렇게 무모하게 리셋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던 듯하다. 가령 이런 거다. 나는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전교에서 25등을 하고 있었다. 엄청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 형들이 공부방에서 같이 공부하자며 동네 동생들을 모았다. 나도 공책과 교과서를 들고 공부방에 참석했다. 그런데 형들은 금세 공부를 뒷전으로 밀어붙이고 카세트에 들려오는 조용필 노래에 맞춰 흥얼흥얼 거리기 시작했다.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다들 신이 나서 후끈 달아올랐다. 얼마 안 있어 공부방이 아니라 노래방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 와중에도 공책을 여기저기 들춰 보면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결과가 놀라웠다. 그 공부방 사건으로 나는 중간고사에서 전교 2등을 했다. 그러자 전교 1등하는 같은 반 애가 내 앞자리로 와서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너 임마 뭘 어떻게 한 거야?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입학할 때에도 대학에서 대학원을 입학할 때에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좀 부족하더라도 막판에 스퍼트를 올리면 못할 것이 없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나는 빠져 있었다. 그것이 리셋 버튼을 과감하게 누르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 했던 듯하다.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아니 정말로 멍청한 선택이었다. 그로 인해 30년이라는 길고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넘어지고, 깨지고, 주저앉아 눈물 흘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내가 만약 그때의 나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두 손과 두 발을 붙잡고 결사적으로 말릴 것이다.

 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난 너무 나약했다. 수줍음도 많았고, 말주변도 없었고, 그저 수학만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나의 수학 실력도 내세울 것이 전혀 못 됐다. 천재 같은 애들이 즐비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구석이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욱하는 마음으로 리셋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낙관했다.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리셋은 내 안의 혁명같은 변화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혁명은 기존 질서가 파괴되는 혼돈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파괴된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리셋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나는 변화가 정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부분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육체적 변화를 위해서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전의 원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선화동에서 권투를 시작했다. 줄넘기기와 쉐도우 복싱만 6개월을 지겹게 하고 6개월이 지나서야 꿈에 그리던 샌드백을 두드릴 수 있었다. 그때의 감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항상 매달아 놓고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맛있는 생선을 드디어 맛 볼 때의 쾌감이랄까? 사범은 내가 펀치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눈이 좋다고 했다. 나하고 잘해보자. 한번 챔피언이 되어 보자고 꼬득였다.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H 중공업에 들어가서도 회사 복지회관 내에 있는 권투 도장에서 샌드백을 치곤 했다. 샌드백을 칠 때의 맛을 쉽게 떨쳐 버리기 어려웠다. 내가 샌드백을 치면 아주 경쾌한 소리가 났다. 턱턱 둔턱한 소리가 아니라 마치 금속을 두드리는 듯한 텅텅 소리가 도장 안에 울려 퍼졌다.

  정신적인 변화를 위해서 우선 지식을 강화하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책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교과서 밖 지식이 전혀 없었다. 집은 가난했고 어려서부터 교과서 이외에 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책이라는 고기를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경험이 없으니 책 앞에서 무덤덤할 뿐이다. 고등학교 때 전주에서 누나들과 함께 자취하면서 책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누나들이 삼성 세계 문학 전집과 한국 문학 전집을 사서 떡하니 자취 집에다 들여놓았다. 누나들은 부자가 된 듯한 뿌듯함을 느끼는 듯했다. 인생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장만한 전집이었다. 그러나 그 책들에 전혀 눈이 가지 않았다. 고대 철학부터, 근대 철학, 현대 철학, 카뮈,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교과서나 보던 작가들과 철학자들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책이라는 고기를 먹어본 경험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감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그 책들 앞에서 한없이 움츠러 들었다. 어떤 책도 읽지 못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딱 하나 읽을 만한 책을 발견했다. 한국 문학 전집 속 “풀잎처럼 눕다“ 라는 책이었다.

  이렇듯 책에 대한 거부감이 극심한 내가 책을 읽기로 작정하고 문고판을 수십 권씩 사들였다. 삼성출판사 문고판의 중고 가격은 한 권에 500원이었다. 5,000원이면 10권을 살 수 있었다. 10권을 다 읽으려면 두세 달이 소요됐다. 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냥 무작정 읽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것도 심심풀이 욕구가 아니라 학업을 내팽개치고 채우려는 욕구였다. 나는 그 얼토당토않은 욕구에 휩싸여 쓰레기 같은 글을 쓰느라 2학년 1학기를 온통 날려 버렸다. 학기 말 학사 게시판에 최저 학점 취득자로 등재되어 버렸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두 번 학사 경고면 퇴학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장 글쓰기를 멈췄다. 소질도 없었다. 잘 나가는 작가는 머릿속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다는 데, 눈을 씻고 봐도 내 머릿속에서 그런 분수를 찾을 수 없었다. 쥐어짜도 찔끔찔끔 나오는 말라비틀어진 치약 정도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책을 읽을 필요는 있었다. 리셋에서 글쓰기가 하나의 외도라면 지식은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대학 도서관에는 아주 많은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대전 원도심의 헌책방 거리에 들려 문고판을 사들였다. 대학 도서관에 있는 책들 중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문고판은 친절하게 설명하게 주고 있었다.      


 ”네게 필요한 책이 있어?“

 ”그럼 내가 그 바로 엄선된 책이야!“

 ”고민할 필요 없어. 나를 선택해!“    

 

 그러니 문고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문고판 읽기는 내가 어느 정도 책을 가려 읽을 줄 아는 시점까지 계속됐다. 문고판은 학생의 처지에서 금전적 부담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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